— SKY, 수능, 학원으로 압축되는 청소년기
외국인 친구가 《SKY 캐슬》을 본 뒤 물었다.
“이게 진짜야? 한국 학생들은 정말 이렇게까지 공부해?”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과장이 섞였지만, 완전히 허구는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입시는 단순한 시험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이다.
그리고 동시에, 모든 청소년이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다.
이 시험 하나가 사람의 진로, 직업, 사회적 위치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이 현실을 다각도로 비춘다.
《SKY 캐슬》은 그 대표적인 예다.
고급 아파트 단지에 사는 상류층 부모들이
자녀를 명문대, 특히 의대에 보내기 위해
입시 코디네이터를 고용하고,
학교 진로교사를 압박하며,
심지어 친구 사이까지 조정한다.
이 모든 설정이 과장처럼 보이지만,
한국 시청자들은 그 안에서 현실의 파편들을 본다.
특히 자사고, 외고, 의대 진학을 둘러싼 경쟁과 정보전,
부모의 정보력과 경제력이 그대로 성적에 반영되는 구조는
단지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니다.
그건 실제 한국 교육 현실의 한 단면이다.
《열여덟의 순간》과 같은 학원물 드라마에서는
조용하고 예민한 감정선 속에
입시 스트레스로 무너져가는 10대들의 내면이 담긴다.
부모의 기대, 친구와의 비교,
“공부가 전부야”라는 분위기 속에서
자신을 잃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입시가 성장이 아니라 압박으로 작동하는 현실을 드러낸다.
입시를 둘러싼 가족의 태도도 중요한 서사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서는
가족 구성원들이 모두 재정적 어려움과 입시 스트레스 속에 살며,
공부가 ‘살기 위한 수단’이 되어버린 현실을 유쾌하게 풍자한다.
《응답하라 1988》은 또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서울대에 가는 것이 동네의 자랑이고,
시험 전날 도시락에 제사급 정성이 들어가는 분위기를 그리지만,
결국 중요한 건 사람 간의 정과 위로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입시는 단지 ‘학생의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입시가 가족 단위의 프로젝트가 되기 쉽다.
아이보다 부모가 더 긴장하고,
입시 일정에 맞춰 가족 여행이 취소되며,
입시가 끝나야만 집안의 평화가 돌아오는 구조.
드라마는 이런 구조를 날카롭게 포착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학벌 중심 사회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서울대 법대를 수석 졸업한 우영우는 ‘천재’로 인정받지만,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이유로 편견과 벽에 부딪힌다.
이 드라마는 단지 학벌이 사회적 인정의 티켓이라는 사실과 동시에,
그 학벌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현실도 보여준다.
학원 문화도 빼놓을 수 없다.
《공부의 신》은 실존하는 입시 사교육 시스템을 소재로 한다.
학생들은 새벽에 일어나 학교에 가고,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학원, 과외, 스터디까지 이어진다.
하루 15시간 이상 공부하는 모습은
시청자에게 경외감과 동시에 피로감을 안긴다.
하지만 학생들에게는 이것이 ‘정상’으로 여겨진다.
입시는 때로 정체성과 직결된다.
“어느 대학 나왔어요?”라는 질문은
그 사람의 능력, 성격, 가능성까지
암묵적으로 평가하는 수단이 된다.
그래서 드라마 속 인물들은
자신의 대학을 숨기기도, 자랑하기도 한다.
그건 곧, 한국 사회가 사람을 판단하는 방식의 축소판이다.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한 엄마는 말한다.
“우리 애가 잘됐으면 좋겠지만, 행복하게 살았으면 더 좋겠어.”
입시를 이겨낸 아이보다,
입시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은 아이가
더 소중하다는 메시지는 많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입시를 긍정적으로 그리는 드라마도 있다.
《나의 아저씨》에서는 공부가 삶을 바꾸는 희망으로 묘사되기도 하고,
《응답하라 1988》에서는 입시가 아닌 사람 간의 관계가
더 큰 가치로 자리 잡는다.
하지만 이 역시 과거의 이야기이고,
지금의 한국 청소년들은 여전히 무거운 가방을 메고
시험지를 삶의 지도처럼 따라가고 있다.
입시는 한국 사회가 사람을 분류하는 방식이자,
10대가 가장 먼저 마주하는 거대한 사회 구조다.
한국 드라마는 그 구조 속에서
울고, 견디고, 살아가는 인물들을 통해
‘입시’가 단순한 교육의 과정이 아니라
한국 사회 그 자체임을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