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기 성숙, 경쟁, 소비문화 속의 청소년
외국인 친구는 넷플릭스에서 《인간수업》을 보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이게 진짜 고등학생이야?”
범죄에 연루된 주인공,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가는 아이들,
그리고 어른보다 더 어른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모습.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한국 청소년들은 왜 이렇게 빨리 어른이 돼?”
한국 드라마 속 10대들은 종종 너무 일찍 철이 든다.
웃고 떠드는 장면보다는, 무언가를 참거나 짊어지는 모습이 더 자주 등장한다.
그건 단순한 드라마적 장치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은 보호 대상이자 동시에 경쟁의 주체로 살아간다.
《인간수업》의 주인공 지수는 고등학생이지만,
불법 성매매 알선이라는 무거운 범죄에 손을 댄다.
겉으로는 모범생이지만,
실제로는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범죄의 세계에 발을 들인다.
이 드라마는 ‘청소년답지 않은 선택’을 강요받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태원 클라쓰》의 박새로이는
고등학생 시절 아버지를 잃고 복수를 결심한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웃음보다는 분노와 책임감이 먼저였다.
그는 철들었다기보단, 철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린 것이다.
한국에서 ‘청소년’이라는 단어는
보호보다는 준비된 어른에 더 가깝게 느껴질 때가 많다.
초등학생 때부터 학원과 시험, 자기계발이라는 단어가 익숙하고,
중학생 무렵이면 이미 미래 계획을 짜야 한다.
놀기엔 늦었고, 책임지기엔 이른—이 어정쩡한 시간은 너무 일찍 무거워진다.
《열여덟의 순간》의 고등학생들은
불안한 성적, 불안정한 인간관계, 그리고 불투명한 미래 속에서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삼키는 쪽을 선택한다.
그 모습은 많은 시청자에게 익숙하고 안타깝게 다가왔다.
한국 사회는 10대에게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책임을 부여한다.
“네가 하고 싶다며 했잖아.”
“그 나이면 알아서 해야지.”
아이들은 선택의 기회를 받기도 전에, 그 결과의 무게부터 짊어진다.
소비의 세계도 그들을 일찍 어른으로 만든다.
《우리들의 블루스》에서는 10대 커플이 임신이라는 현실을 마주한다.
감정은 뜨겁지만, 감당은 현실적이다.
알바로 돈을 모으고, 입시를 고민하며, 부모와 갈등을 조율하는 그들의 모습은
단순한 드라마 설정이 아니라, 실제 많은 10대들의 현실이기도 하다.
SNS와 유튜브의 시대, 청소년은 가장 빠르고 강력한 소비자로 떠올랐다.
드라마 속 10대들은 취향을 분명히 드러내고,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그 자유로운 선택 뒤에는 ‘경제적 자립’이라는 부담이 따라붙는다.
《청춘시대》의 대학생들은 학자금 대출, 생활비, 취업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10대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미 ‘현실’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더는 보호받는 나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자립한 존재도 아닌 모순된 상태.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선
중학생이 집안 살림을 걱정하고, 초등학생이 가족의 경제 상황을 이해한다.
코미디로 포장되었지만, 현실은 씁쓸하다.
웃긴 설정이지만, 많은 아이들이 실제로 그렇게 살아간다.
그럼에도 한국 드라마는 청소년을 단순한 희생자로만 그리지는 않는다.
그들은 때때로 어른보다 더 예리하고,
더 감정에 충실하며,
더 정확하게 세상을 바라본다.
《눈이 부시게》는 청소년 드라마는 아니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얻은 20대 청춘이
인생의 선택과 후회를 돌아보는 이야기를 통해
‘일찍 철들어야 했던 세대’의 고민을 담아낸다.
이 드라마는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이 삶이 정말 네가 선택한 것이냐”고.
한국 사회는 청소년에게 성적, 인성, 태도, 꿈, 인간관계, 자기관리까지 요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잘 자라야 한다”는 막연한 압박을 건넨다.
그래서 어른 같은 10대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다.
한국 드라마는 이 잔혹한 구조 속에서도
그들의 웃음, 눈물, 고통, 그리고 용기를 정직하게 포착해낸다.
그 속에서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이 시대의 청소년은 정말 자율적인 존재인가?
아니면 과잉 책임을 부여받은 작은 어른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