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회식은 왜 퇴근 후에 또 시작될까?

— 직장 문화, 술 문화, 위계의 연장선

by Jin Yang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일한 사람들에게

“오늘 회식이야”라는 말은 단순한 일정이 아니다.

그건 업무의 연장이자, 인간관계의 테스트이며,

사회적 생존 기술이 요구되는 무대다.


외국인 친구가 물었다.

“왜 일을 마쳤는데 또 모여서 술을 마셔? 그것도 상사랑?”

그 물음은 한국 드라마를 처음 보는 이들이

자주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한국 드라마에서 회식 장면은 빈번하게 등장한다.


《미생》에서 장그래는 하루 종일 긴장하며 일한 뒤,

퇴근 후 차장, 대리와 함께 고깃집에 앉는다.

그곳에서도 그는 여전히 긴장을 풀지 못한다.

말 실수는 없는지, 고기 뒤집는 타이밍은 적절한지,

술을 따르는 손의 각도까지 신경을 곤두세운다.

회식 자리에서도 ‘일’이 끝난 게 아니다.

오히려 더 복잡한 ‘관계의 기술’이 필요한 시간이다.

회식은 단순한 음주 자리가 아니다.

그건 조직 내 위계와 유대감을 확인하는 일종의 의식이다.

상사의 농담에 웃고, 술잔을 먼저 들고,

자리를 바꾸며 분위기를 맞추는 건

개인의 성격이 아니라 직장 내 생존 전략이다.


《내일 그대와》, 《로스쿨》 등의 드라마에서도

회식은 인간관계의 진폭을 드러내는 계기가 된다.

누군가는 상사에게 과도하게 들이대고,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잔을 비우다 결국 감정을 터뜨린다.

억눌려 있던 감정이 회식이라는 공간에서

술기운을 타고 흘러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회식이 항상 부정적인 공간은 아니다.


《나의 아저씨》에서는 박동훈이

후배들과 회식을 하며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말없이 고기를 구워주고,

회사에서는 말하지 못했던 고민을 털어놓기도 한다.

이 장면은 회식이 단지 업무의 연장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열리는 장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시청자에겐

이 모든 과정이 때로 이상하고 고단해 보인다.


“왜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해?”,

“개인 시간은 없는 거야?”

그 질문은 타당하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집단주의 문화 속에서

개인의 시간을 조직에 내어주는 걸 충성이나 예의로 여겨왔다.

그래서 회식도 자연스럽게

‘참석이 선택이 아닌’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특히 상사와 함께하는 회식은 자유롭지 않다.

술잔을 들고 건배사에 맞장구치고,

술을 따르고 받을 때 예절을 지키는 등

정해진 룰이 존재한다.


이때 자주 등장하는 것이 바로 ‘원샷 문화’다.

한 잔을 단숨에 마시는 이 문화는

친밀감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포장되지만,

실제로는 강요받는 사람에게 스트레스와 압박으로 작용한다.

최근 한국 드라마는 이러한 회식 문화를

비판하거나 성찰하는 장면을 자주 담는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는

우영우가 회식 자리에 동석하되,

음주를 피하고 조용히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 나온다.

그 누구도 그녀에게 술을 강요하지 않고,

각자의 방식으로 자리를 채운다.

이 장면은 과거와 달리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사회화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조용히 거부하는 새로운 감수성을 보여준다.


또한 《나의 해방일지》에서는

출퇴근으로 지친 인물들이 회식에 무기력하거나 회피적인 태도를 보인다.

“나는 그냥 집에 가서 쉬고 싶어.”

그 짧은 한마디는

수많은 시청자들의 진심을 대변했다.

회식이 관계의 기회가 아니라

오히려 소모적인 의무로 느껴지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장면이었다.

물론 최근 한국 사회는 변하고 있다.

예전처럼 강제적인 회식은 줄어들고,

‘1차만 하고 끝내자’, ‘술 대신 커피’, ‘점심 회식’ 같은

새로운 문화적 트렌드가 생겨났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드라마에서는

회식을 조직 속 위계와 감정의 축소판으로 그린다.

그 안에는 감춰진 눈치, 암묵적 서열,

그리고 말로 하지 못한 감정들이 스며 있다.


한국 드라마 속 회식 장면은

단순한 술자리 묘사가 아니다.

그건 조직문화, 위계질서, 인간관계의 감정 코드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술을 따르는 손짓 하나,

말없이 잔을 비우는 눈빛 하나가

그 사람의 태도와 위치를 말해준다.


그건 단순한 연출이 아니라,

한국 직장문화의 본질을 포착한 리얼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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