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위로는 말보다 곁에 있는 것

— 대사 없는 장면에서 피어나는 위로의 문화

by Jin Yang

외국인 친구와 함께 《나의 해방일지》를 보던 날이었다.

긴 침묵이 흐르는 장면에서 그 친구가 물었다.

“왜 아무 말도 안 해? 지금 위로해야 되는 거 아니야?”

그 장면에선, 주인공 염미정이 벤치에 앉아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고

곁에 있던 구씨는 조용히 옆에 앉을 뿐, 단 한 마디 대사도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장면은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주었다.

한국 드라마에서는 위로를 말보다 ‘곁에 있는 것’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힘든 일을 겪은 사람에게

“괜찮아?”, “힘들지?”라고 묻기보다

그저 옆에 앉아 밥을 먹거나, 같이 술을 마시거나,

무언가를 함께 하며 조용히 시간을 나눈다.

이러한 무언의 위로가 한국 특유의 정서다.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혜리)이 실망감에 젖어 있을 때,

정환(류준열)은 특별한 위로나 조언을 하지 않는다.

그저 평소처럼 행동하며, 도시락을 슬쩍 건네고

“많이 먹어”라고 말할 뿐이다.

시청자들은 그 짧은 말과 행동에서

정환의 진심과 따뜻함을 느낀다.

진심은 거창한 말이 아니라

밥 한 끼, 시선 하나, 조용한 존재로도 전해진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다.


《괜찮아, 사랑이야》에서도

주인공들은 서로의 상처를 치유할 때

분석이나 조언보다는, 곁에 있어주는 방식으로 마음을 나눈다.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 침묵 속에서 함께 있어주는 장면은

말보다 더 깊은 감정을 전한다.

특히 정신적 고통을 겪는 인물을 향한 배려는

설명보다 함께 있음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러한 위로의 방식은

‘말로 위로하려는’ 서구식 문화와는 조금 다르다.

한국에서는 ‘말보다 마음’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용된다.

말 대신 따뜻한 밥 한 끼, 슬쩍 건네는 술잔,

혹은 그저 침묵을 함께 견디는 것.

이 모든 것이 위로의 언어다.


《나의 아저씨》의 주인공 박동훈(이선균)과 이지안(아이유)은

서로에게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고통의 순간에

서로 곁에 머물러 있는 장면들은

관계의 본질을 보여준다.

침묵은 단절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신뢰의 표현이다.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서로를 위로할 수 있다는 걸 드라마는 말 없이 보여준다.


외국인 친구는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왜 그냥 솔직하게 말하지 않아?”라고 했던 그가

몇 편의 드라마를 본 후에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 말 없이 곁에 있어주는 거, 그게 더 따뜻하구나.”

말 대신 존재로 건네는 위로.

그건 실수하지 않는 감정의 언어다.


한국 드라마 속 위로는 정답을 말해주지 않는다.

대신 함께 울고, 함께 침묵하고,

같은 공간에서 같은 감정을 나눈다.

사람을 바꾸기보다,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태도.

그게 한국 드라마 속 인물들이 전하는 위로의 방식이다.


잘못된 말 한마디는 상처가 되기도 하지만

말없이 곁에 있는 위로는 부담을 주지 않는다.

말보다는 눈빛, 따뜻한 손길, 작은 행동.

그런 무언의 위로가 오히려 더 깊이 닿는다.


다음에 한국 드라마를 보다가

누군가가 아무 말 없이 옆에 앉아 있는 장면이 나오면

이제는 알게 될 것이다.


그건 방치가 아니라, 조심스럽고 섬세한 위로라는 것을.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그렇게

‘존재’로 감정을 전하는 법을 알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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