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일어난 일을 기억으로 만들어 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괜찮아요
이번 어버이날은 짤막한 전화 한 통으로 넘겼다. 다음달에 외숙모와 함께 여행가실 때 두둑하게 챙겨드리겠다는 생색과 함께. 그리고 일주일가량이 지난 오늘, 오전 내내 이런저런 생각을 들게 했던 쿵이의 피드.
#우리할매 #어버이날
방금 일어난 일을 기억으로 만들어 내지 못하는 우리 할매는 막딩이가 삐뚤빼뚤한 글씨로 쓴 어버이날 카드를 다섯 번이고, 열 번이고 읽으셨다. 카드에 적힌 손주들의 이름을 한 자 한 자 읽으며, 그것을 도돌이럼처럼 계속 반복해서 읽으면서 연신 눈물을 글썽이시면서. 일 분 전에 자신이 카드를 읽었다는 사실은 기억 못하는 할머니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보고 반가워하고, 짧은 편지에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그녀의 마음과 머릿속 깊은 곳에 우리를 아끼고 사랑했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기억 덕분에, 그녀는 작은 카드 하나를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다시 읽으며 열 번이고 백 번이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나이가 드는 것, 내가 나를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미래를 맞는 것은 누구에게나 너무 두려운 일이지만, 한편으로 자꾸만 사라지는 기억 덕분에 더 자주 행복할 수 있는 할머니가 된다는 건 정말 귀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할매처럼 귀여운 할머니가 되려면, 내 기억 기능이 온전할 때 최대한 많이 사랑하고, 즐거운 기억을 많이 저장해 두어야 하겠다. 미워하고 화가 나는 기억 대신!
#사라지지않는분한마음을다스리기위한월요일기
#할매보고싶어 #이번주도화이팅 #그러고보니생일주간 #깨알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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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바쁜 일이 없어도 마음이 다급할 수밖에 없는 월요일 아침나절. 디자이너가 보내온 시안을 확인하고 피드백 메일을 보낸 다음 습관적으로 SNS에 들어갔다. 방금 업데이트한 친구 '쿵'의 피드. 나는 그녀에게 후다닥 메시지를 남겼다. 이른 시간부터 '인터뷰 중'이라는 그녀의 대답에도 '끝나고 읽어'하고는 다소 긴 메시지를 보냈다.
며칠 전 엄마가 요양원에서 원장 신부님께서 '성모성월(그니까 이 기간에는 성모 마리아를 위해 특별히 갱/장/히 많이 기도를 드려. 그녀를 기리는 달이라고나 할까)'을 맞이하여 어머니께 드리는 글을 쓰라고 했대. 근데 딸내미가 작가라는 이유로 주금희 여사가 당첨. 엄마가 "우야꼬 우야꼬" 하면서 연락이 왔더라. 그러면서 "한바탕 울었다" 길래 "왜?"라고 물었더니 "나도 우리 엄마 보고 싶으니까 그라체" 그래서 "그럼 엄마가 생각하는 엄마의 엄마와 성모님에 대해서 함 써봐. 글 쓴다 생각 말고 얘기한다고 생각하면서. 술술 말로 해봐. 그걸 적어봐"라고 했더니 이틀 후엔가 이렇게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왔어.
그러면서도 저렇게 단 두 줄 아빠 얘기하는 부분을 표시해 두고 "아빠 얘기는 뺄까?"라고 하는데 아빠 얘기를 (아무렇지 않진 않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면서 털어내는 나와 달리 엄마에게는 아빠의 존재와 기억이 남에게 책잡히기 싫은 무엇이기도 하고 여전히 조심스러운 부분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면서 기분이 좀 이상하더라. 그 와중에 글을 요래조래 윤문 해 드렸더니 돌아오는 우리 엄마의 대답 "역시, 작가님이시네요" 그래서 빵 터진 지난 한 주의 기억이 다시 살아났.
우리 외할매. 정말 조선 팔도에 그런 여장부가 없었는데 말년에는 치매로 그 좋아하던 '진년이(우리 할머니는 나를 평생 진년아~~라고 부르셨)'도 잊어버리셨다지. 나는 제주도에 있다는 핑계로 할머니 문병 한 번 제대로 못 갔고. 할머니가 유독 좋아했던 손자 정규 오빠(이 문디자슥은 그때 인도에 있었나, 무튼 지금은 뉴질랜드로 이민가셨)랑 나는 그렇게 외할매를 보냈다는 사실에 조금은 기가 차기도 하고. 일하는 막내 외숙모를 대신해 주유리*혜리*나리 세 자매를 다 키우셨던 우리 외할매. 나도 우리 외할매 보고싶.
할매 자주 찾아뵙지는 못하겠지만 니 글에서 할매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ㅋ 다음에 가면 친구 진년이라는 애가 있는데 "할머니 참 고우세요"라는 말 대신 전해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잘 다듬어죠 봐. 근데 성모님과 예수님이 잘 어필 안 되서ᆢ" 이렇게 보내온 엄마의 톡에 "응" 그리고 내가 윤문한 엄마의 글
나의 두 어머니
따뜻한 봄, 5월이 되면 저는 어머니가 몹시 보고싶고 그리워집니다. 우리 어머니들이 다 그러셨지만 저의 어머니 역시 그 많은 칠남매를 손 한 번 대는 일 없이 그저 애지중지 키우셨습니다. 인물 좋고 인심 좋기로 소문난 분이었는데 이런 저런 일로 형편이 기울고, 노년에는 몸도 많이 상하면서 결국에는 허망하게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요양보호사의 길로 접어든 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분이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는 치매로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당시 남편도 많이 아팠던 터라 어머니를 모실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는 종일 성모당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기도를 했는데, 결국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속상한 마음에 눈물을 찍어냈던 기억이 납니다.
성가원 어르신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생활하는 요즈음입니다. 어르신들이 이렇게 저렇게 요구하시는 일이 많은데, 마음 같아서야 원하시는 대로 다 해드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과 이곳에서의 규칙이 있습니다. 가끔은 속이 상하고 힘이 빠지는 일도 생기지요. 그럴 때마다 저는 제 가슴 깊은 곳에 잠들어 계신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곳 어르신들이 바로 우리 어머니와 같은 분들이다 곱씹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한 분의 어머니를 떠올려 봅니다. 저에겐 또 우리에겐 어머니가 한 분 더 계시지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되자 그 곁에서 기꺼이 고통을 나누었던 우리 어머니 성모 마리아. 성모님께서 어떤 마음으로 고통받는 예수님을 보듬어 주셨을지 상상해 봅니다. 감히 따라할 수 없을 만큼 티 없는 사랑일 테지만 성모님을 본받아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사랑을 나누어야 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제 어머니에게 못다 드린 사랑까지 담아 매일 새로이 보속하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 제 곁에 없지만 제 안에 늘 살아 숨 쉬는 두 어머니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모성월을 맞이하겠습니다.
2016년 5월, 주금희 엘지바 올림
손자 손녀를 하나씩 두었으니 우리 엄마는 본인 의지와 전혀 관계없이 '할머니'가 되어버렸다. 엄마의 엄마, 나의 외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원체 '소녀 감성'이시라 본의 아니게 가족 내에서 '귀여운 할머니' 캐릭터를 담당하고 있달까. 나도 그녀들처럼 오롯이 나이들 수 있을까?
지금 막 쿵이에게서 답이 왔다.
[쿵] 저거 손글씨 엄마가 쓴거야??
[seo] 응. 저걸 내가 윤문해 드렸. 지난주에. 너님의 글을 보고. 그냥 이야기 해주고 싶었.
[쿵] 뭔가 ㅋㅋㅋ 우리모드 은혜로웠네 ㅋㅋㅋㅋ
[seo]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가정의달이다
[쿵] 아아 ㅋㅋㅋㅋㅋ 내가 너의 답글을 읽으며 ㅋㅋㅋㅋ 내 옆에 있는애한테 ㅋㅋ 내친구가 진짜 작가님은 작가님이다 라고 깨알 자랑 ㅋㅋㅋㅋㅋ
[seo]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쩐지 오늘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것 같다. 아니, 솔직히 말해 일 하기가 싫소. 그치만 어느새 퇴근 시간이 다가오네. (이 글은 점심 시간에 짬 내서 쓴 것이므로 난 모범일꾼 ㅋ) 만나면 또 투닥거리겠지만 엄마랑 효목시장에 호박죽 사먹으러 가고픈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