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신앙의 뿌리는 어디인가
30여 년 인생 중 북유럽 끝에 있는 노르웨이에 네 번을 다녀왔다.
애굽에서의 고기냄새를 맡았던 때를 그리워하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나는 그렇게 그들의 삶을 동경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줄곧 노르웨이로 돌아갈 생각만을 했다. 하나님을 찾지 않고 그의 나라를 구하지 않고, 나의 나라만을 찾았다.
노르웨이가 왜 이렇게 좋았냐고 물으신다면, 우리 집 같은 편안함이 있었다.
예전에 mbc every1에서 방영하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생각해 보면 내 인생에서 나도 그런 프로그램의 주인공이었던 것 같다.
2014년 겨울 미국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마치고 돌아가야 할 계획을 짜던 시점, 나의 사랑하는 노르웨이 친구들은 흔쾌히 노르웨이의 크리스마스로 초대해 주었다. 이제 너무 오래된 옛날이야기, 꿈속에서 그리던 새하얀 눈밭이 그곳에 있었다.
나는 늘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고 싶었다.
그리고 그 선구자 정신에는 나의 짧고 굵은 역마살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 역마살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생각해 보면 아마 100여 년 전 아마도 내가 아는 범위에서 최초의 신앙생활을 시작하신 외할머니의 친정아버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분을 나는 한 번도 뵌 적이 없고 엄마의 외할아버지니까 엄마의 기억 속에는 나보다 더 생생하고 또렷한 기억이 담겨있을지 모르겠다. 오늘날 우리 가족 중 특히 외가 친척들이 전 세계에 뻗어진 디아스포라가 된 것에 큰 영향을 끼치시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파친코에 등장하는 Sunja, 그리고 Yangjin. 외할머니 성함과 내 이름의 일부가 담겨있다. 그래서 나는 파친코라는 소설이 참 좋았다. 어쩌면 역마살 나의 인생을 설명하는 열쇠인 것처럼 보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40여 년의 광야의 길 끝에 드디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도착한다.
나에게 출애굽은 늘 노량진을 탈출하는 것이라고, 북쪽으로 가는 길(NORWAY)을 택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애굽은 노르웨이라는 사실임을 깨달았다. 끝없는 어둠이 가득한 터널을 지났던 노량진 그 시절, 나는 조금이라도 더 익숙하고 편안했던 그 시절을 떠올렸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나은 삶에 대한 기대와 희망보다는 예전의 영화와 영광을 회상하며 하루하루를 살았다. 과연 예수님을 믿는다는 신앙인의 태도라고 보기가 어려웠다.
예수님은 내게 이제 매일 말씀하신다.
늘 나와 함께하신다고. 어제나, 오늘도, 날마다 함께하신다고.
나는 혼자가 아니니,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신다.
넘어지고 좌절된 순간에도, '나는 왜 이러지' 무너지는 순간에도 늘 항상 함께하신다.
그리고 그 값없이 받은 사랑과 은혜와 경험들을 오늘도 무료로 나눔한다.
값 없이 받은 사랑을 동료들과 아이들에게 아낌없이 나누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