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학원에도 존재하는 정규분포

아, 나는 저 끝쪽이구나

by Briony

나름 성실히 공부했던 지난 세월 동안 누구에게 뒤처진다는 생각을 한 적이 별로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아마 중학교까지, 아니 고1까지 나는 빛이 나는 학생이었다. 눈동자도, 성적도 모두.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 성적은 정말 말도 안 되게 곤두박질치고 내 인생이 곧 내 성적표에 나와있는 등급처럼, 소고기 등급 매기듯 매겨지는 그 암울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성적에 맞추어 대학을 갔고, 그때도 역시 나와는 그다지 상관없는 전공을 성적에 맞춰서 소신지원했고 여유 있게 합격했다. 그러나 그 여유 있는 합격은 4년간의 대학생활에 그다지 좋은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대학 생활을 하며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전공공부 외에 다른 일을 할 때였다. 이를 테면, 취미 발레 배우기, 도서관 르포르타주 코너에서 에세이 읽기(특히, 발레 무용 관련된 거라면 너무 좋았다), 연애하기, 해외경험 쌓기! 이 모든 경험들이 헛되지 않았고, 여전히 현재를 살아가는 내게 밑거름이 되어주었고 오늘도 잘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이 대견하고 자랑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은 80분간의 발레학원에서 정규분포의 하위 끝자락에 머물며 느꼈던 나의 감정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내가 다니고 있는 발레학원은 성인 전용(정확히 표현하자면 성인 여자만) 다닐 수 있는 학원이다. 어린이, 전공생들도 없고 오직 성인반만 있다. 얼마나 인기 있는 학원인지 나는 이 지역 토박이가 아니라 잘은 모르겠다. 그런데 하나뿐인 그룹레슨실에 거의 매시간 15명 이상의 인원이 꽉꽉 다 차는 것을 보면, 내가 발레를 좋아하는 정도는 딱 보통이구나를 느낀다. 예전에 국립발레단 취미반을 다녔을 때도 마찬가지지만, 발레라는 이 독특한 장르에는 꽤나 제법 깊은 마니아층이 존재한다. 그리고 국립발레단을 비롯하여 팬클럽이 있고 지지해 주는 층이 매우 매우 두껍다. 국립발레단에서 지나치게 과분한 환대를 받아서인지, 그 이후 어느 학원에 가서도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고 레벨업 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한다. 교회를 30여 년동안 겉돌았던 것처럼(이제는 교회 안으로 깊게 들어왔어요!^0^) 발레도 만년 Lv 1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방학을 앞두고 학교는 정말 무지무지 바쁜데, 그 핑계를 덧붙여 발레학원을 거의 한 달 만에(?) 간 것 같다. 그리고 우리 학원의 특성상 어플로 수업 예약을 하는데, 당연히 레벨 1 수업은 수업이 열리자마자 마감된다. 이제부터 8월 말까지 수강권이 남았는데 나는 매일매일 가더라도 수강권을 다 소진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이번 달은 어쩔 수 없이(?) 발레학원에 매일 가고자 한다. 그리고 레벨도 1.25로 올려보았다.


오늘 내가 들은 수업은 열정 높은 원장님 수업. 아침에 늦잠을 자지 않았더라면 오전 11시 다른 선생님의 수업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어젯밤도 깊이 잠들지 못하고 각종 걱정에 걱정을 더하여 해가 뜨는 것을 보고 잠이 든 것 같다. 눈을 뜨니 10시 반, 아 11시 수업은 틀렸다...


그렇게 1.25 레벨 수업을 신청했다. 겨우 0.25 레벨이 높다고 만만히 보면 안 된다. 원장님은 정말 열정적으로 가르치신다. 시간을 항상 초과하여 늦게 마쳐주신다. 어느 연수, 강의를 가더라도 명강사는 시간보다 일찍 마치는 강사라는데, 취미 발레에서는 예외다. 다들 좋아서 하는 운동이기에, 주어진 시간보다 더 늦게 마쳐주시면 수강생들은 더욱 이득인 셈.


예상했던 것처럼 나는 순서도 잘 못 외우고, 가끔씩 내가 생각해도 괜찮은 손 포즈 정도로만 만족하며 80분의 수업을 마무리했다. 나름 교육학 석사로 교단에 서는 나 자신이 열등생이라니... 열등생이었던 시절이 분명 길었기에 이 또한 낯설지 않다. 그래도 선생님께서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내가 발레를 그만둘 수 없는 것은, 이 열등생, 정규분포의 하위권에 있는 학생들의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교실 앞에 서게 되면, 적어도 수업에 열중하고 집중하는, 소위 말하며 예쁜 아이들만 쳐다보게 된다. 아이들도 재밌어하는 그 모습에 나도 신이 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분명 내 수업의 장면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딴짓하는 아이가 있을 거란 말이지. 그 아이들은 어떤 기분일까? 나는 발레 시간 속 나와 같은 그들을 외면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것은 나의 다짐!


누구에게 뒤처지지 않으려고 취미 부자였던 시절이 있다. 피겨스케이팅, 수영, 발레 모두 내가 취미로 하던 것이다. 내가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늘 주님을 찾아야 했다. 중학교 학생들이 마주하는 각 교과수업도, 학습도 이러할 것이다. 조금 재능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선생님이 나를 포기할 수도 있고, 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


이 시기가 불분명하지만 나는 최근 주님을 뜨겁게 만난 게 분명하다.

예배시간만 되면 뜨거운 눈물이 나오기 때문이다. 내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주님과 더욱 가까이 동행하면서 당당해지기를 소망한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왜 이렇게 주눅 들고, 자신 없었을까? 학벌 때문에? 학점, 취업, 결혼 등 풀리지 않는 내 인생의 문제 때문에 나는 많이 좌절하고 낙담하고 스스로에게 참 실망했다. 그런데 이제는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있어도 주눅 들지 않으려고 한다.


대한민국 교사로서 우리 교육이 가진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이 부각되는 게 현실을 마주한다. 그리고 사실이기에 부정할 수 없다. 서열식, 엘리트주의 교육이 나의 학창 시절을 행복하게 했느냐고 물으신다면, 단연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시절 그 치열함을 통해 내 인생에서 변하지 않는 하나의 진리를 발견했다면 그것은 하나님은 살아계시다는 것이다. 내가 지나온 수없이 많은 고난과 눈물 속에서 하나님은 나와 늘 함께하시고 동행하셨다는 것이다. 이 복음,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은 주님께서 부르시는 그날까지 내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I love to dance like a ballerina.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극장 한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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