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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대노 Jul 08. 2022

딱딱이 귀신

지난여름에, 강아지들 모기 물리지 말라고 아주 커다랗고 성능 좋은 해충퇴치기를 장만했다. 크기가 큰 만큼 데크로 들어온 벌레들을 다 잡아주길 기대하면서. 그런데......

성능 테스트를 해보려고 전원을 켠 지 30분이 되지 않아, 우리는 저 커다랗고 성능 좋은 해충퇴치기를 치워버려야 했다.


남편이 데크 위에서 해충퇴치기 성능 테스트를 하는 동안, 나는 데크와 통창으로 연결된 거실에서 무엇인가 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해충퇴치기 성능에 대해 내게 보고하기 위해 문을 열었을 때, 남편을 밀치고 마루가 내 무릎 위로 날라들어와 안겼다. 얼마나 단숨에 튀어 들어왔는지, 그 무거운 아이를 막을 새도 없이 나는 내 무릎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무서워 죽겠다고, 자기를 떼어놓지 말라고 말하는 것처럼 고개를 파묻은, 덩치만 크고 겁 많은 마루가 귀여웠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마루를 위해서 한 행동이 마루를 그렇게나 무섭게 만들었다니 마루에게 미안해졌다.


해충퇴치기는 벌레가 죽을 때 나는 소리가 딱딱 거리는 데다가 마루가 너무 무서워하는 탓에 딱딱이 귀신이라는 이름을 붙여 줬는데, 성능 테스트를 한 이후 마루는 데크에 있는 것을 무서워했다. 마당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데크를 거쳐야 하는데, 거실에서 마당으로 단숨에 뛰어나갔고, 집에 들어올 때도 머뭇거리다가 문이 활짝 열려 있을 때 단숨에 뛰어들어왔다. 그래서 우리의 커다랗고 성능 좋은 해충퇴치기는 그렇게 성능만 확인한 채로 창고에 보관되어 있다가 필요로 하는 이웃에게 무료 나눔 하였다. 


마루가 훈련소에 다녀왔을 때, 훈련사님이 마루를 컨트롤할 수 있는 방법으로 페트병에 동전을 넣어 흔들라고 알려주셨다. 처음엔 훈련사님이 알려주신 대로 마루가 과도하게 흥분했을 때마다 동전이 든 페트병을 흔들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마루가 너무너무 무서워하는 거였다. 마루는 어떤 시간을 겪었길래 저 페트병이 무섭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까? 내가 보지 못했던, 알지 못했던 마루의 시간을 생각해보게 되었고, 훈련소에 보냈던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읽은 글인데, '나의 반려견이 딱 한마디만 할 수 있다면 듣고 싶은 말은? '이라는 질문에 어떤 네티즌의 대답이 떠올랐다. "제발 아플 때 아프다고만 해줘!"

 나의 배려가 불편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말 못 하는 내 아이를 더욱 세심하게 배려하고 살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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