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버리고 간 아저씨 vs. 나를 구해주신 사범님

by 박대노

연격

검도에서 일차 공격이 실패했을 때 다시 공격해서 득점하는 공격 기술을 말한다.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응용 기법이 있지만, 머리 치기의 경우에는 일족일도거리에서 정면 머리를 치고 몸 받음 하면서 크게 치켜올려 좌우 머리를 4회 친 뒤 물러나면서 5회 친다. 칠 때는 어깨에서 힘을 빼고 허리 힘을 칼 끝으로 전달하는 기분으로 친다. (두산백과)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나는 몸치이다.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되어서까지 앉아서 하는 일 밖에 하지 않았고, 또 앉아서 하는 일을 제일 잘하다 보니 몸을 쓸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어떤 운동을 배울 때도 몸의 움직임을 익히는 게 쉽지 않았고, 말을 곧이곧대로 고지식하게 흡수하다 보니 큰 흐름 속에서 자세를 유연하게 배우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젊을 땐 악으로 깡으로 하루에 몇 시간씩 이 악물고 연습하기라도 했다만, 나이가 들어서인지 동작 하나 배울 때마다 몸 여기저기가 삐걱거리고 아팠다. 악으로 깡으로 하려다가 방아쇠 수지 증후군이 찾아왔고, 발목을 삐는 일도 생겨 이런저런 이유로 딸과 남편이 진도를 나갈 때 나는 가볍게 기본 동작 연습만 하는 날이 많아졌다.


남편과 딸은 진작 연격을 배우고 사부님들과 대련도 몇 차례 해봤지만, 부상으로 진도가 늦은 나는 연격이 처음이었는데, 그날따라 검도 대회 일정으로 관장님이 자리를 비우신 탓에 모두들 내가 남편, 딸과 마찬가지로 연격을 배웠다고 생각하신 듯하다.

얼떨결에 상대를 바꿔가며 연격 훈련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는데, 내 첫 상대는 자주 뵙던 사부님들이 아니라 어쩌다 한번 방문(?)하는 아저씨였다. 그 아저씨는 도장에 들어서면서부터 큰 목청으로 시끄럽게 떠들고(관장님의 호령이 들리지 않을 정도이다), 기본 운동할 때도 딴짓하면서 방해가 되기도 해서 이전부터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왜 하필 첫 짝꿍으로 자리를 잡은 건지......

평소에 하던 대로 사부님의 지휘로 각자의 짝꿍과 대련을 시작했고, 옆으로 자리를 옮겨 짝꿍을 바꿔가며 대련해야 하는데, 내가 아무것도 몰라 어버버하고 있자 급기야 선두의 사부님께서는 대련 전에 숙련자들이 연격 기술을 설명하고 시작하자고 하셨다. 사부님, 한 번 설명으로 될게 아닙니다! 전, 남편과 딸과는 달리 처음이란 말입니다!

어찌 됐든, 내 앞의 아저씨가 크게 머리치고 좌우 머리 치기 4회, 돌아가면서 5회 하라고 말씀해 주셔서 어설프게 공격을 했는데, 공격도 제대로 못했지만 내 순서가 끝나고 상대가 다시 나를 상대로 연격을 들어와야 하는데 나는 받아주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었다! 답답했던 그 아저씨는 급기야 자리를 떠났고, 난 그렇게 상대 없이 혼자 뻘쭘하게 서 있어야 했다. 2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두줄로 나란히 마주보고 서서 훈련하던 중, 중간에 이가 빠진 것처럼 내 앞자리가 비었고, 상대가 없어진 나는 남들 훈련하는 걸 쳐다보며 어찌할 줄 모르고 서 있어야만 했다.

그런데 그때! 조금 늦게 오신 A 사부님이 내 앞에 서 주셨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훈련을 시작하자는 말에 나를 도장 모퉁이로 데려가 연격의 기본 동작을 차분히, 자세히, 반복하여 설명해 주셨다. A 사부님은 우리 가족의 교육을 관장님 다음으로 가장 많이 담당해주시면서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시던 분이었기에 더욱 감사하고 감사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을 붙들고 눈물 콧물을 쏟았고, 남편은 이런 일로 울기까지 하는 나를 어이없어했지만 나는 얼마나 무안했던지 그 자리에서 울지 않은 것만해도 다행이라고 외쳤다.

"검도(劍道)가 뭐야? 검술(劍術)로 몸과 마음을 단련(鍛鍊)하여 인격(人格)의 수양(修養)을 도모(圖謀)하는 일이라며! 근데 검도를 그렇게 오래했다는 그 아저씨는 인격 수양을 그만큼이나 하셨다는 분이 나한테 무례한 행동을 한거잖아! 인격 수양같은 소리하고 있네. 개뿔이다! 남들 훈련하는데 내 앞자리는 비어있고, 나 혼자 어찌해야 할지 몰랐단 말이야. 엉엉엉"




명절을 맞아 관장님과 이사장님께 드릴 작은 선물을 준비하면서, A 사부님 것도 챙겼다. 관장님께 선물을 전해받은 A 사부님은 사부님이 훈련하러 오신 것도 아니면서 우리가 검도장에 가는 날 일부러 도장에 들러 고맙다는 인사를 하셨다.

"아니 뭘, 내 것까지 선물을 챙기셨어요. 고맙습니다."

"사부님이 저를 구해주셨잖아요!"

내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큰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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