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칸트가 산책하는 시간만큼 정확하게 시간을 맞추는 개가 있다. 바로 루루가 그 주인공인데......
루루는 사람을 귀찮게 하는 개는 아니다. 다른 개들보다 잠이 많아 자기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착하고 얌전한 개지만 그렇다고 자기 의견이 없는 개는 아니다.
내가 집안일을 하고 있으면 다른 개들은 내가 언제쯤 자기들과 놀아줄 수 있을지 내 움직임을 주시하며 눈치를 보는 동안 루루는 내내 잠을 잔다. 그러다 내가 잠시 짬이 나서 자리에 앉으면 다른 개들은 지금 놀아달라고 해도 되는지 나를 살피는데, 루루는 자다 일어나 나에게 다가와 자기를 안으라고 한다. 안아달라는 루루를 들어 올리면 그때서야 다른 개들은 내 주변으로 다가오고. 내내 잠만 자던 녀석이 놀아주기를 바라며 눈치 보던 녀석들을 제치고 제일 먼저 안기는 상황이 되니 다른 개들은 조금 억울할 만도 하다.
다른 개들이 흥분하는 상황에서도 루루는 크게 흥분하거나 화를 내는 적이 거의 없는데, 루루가 유일하게 화를 내는 순간은 물그릇에 물이 없을 때이다. 덩치 큰 마루가 워낙 물을 많이 먹어서 커다란 스테인리스 그릇에 물을 담아주는데, 그럼에도 물그릇이 가끔 비는 상황이 되면 루루는 물그릇을 있는 힘껏 발로 긁는 행패를 부린다. 발로 벅벅 긁는 소리에 더해 물그릇 자리를 옮겨 버리는 만행을 저지르니 이런 루루 덕에 물이 없는 것을 모를 수가 없다.
이렇게 쓰고 보니 루루가 무척 의뭉스러워 보이지만, 사실 루루는 우리 집 개 중에서 가장 얌전하고 착하다. 너무 순하고 착해 손해 보는 개. 예민한 코코는 무서운 게 많아 목욕할 때는 머리 위로 물이 뿌려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털을 빗을 때도 아프지 않게 살살하는데 루루는 언제나 제일 잘 참아주니 빠르게 목욕시키고, 빠르게 털을 빗기느라 조금 거칠게 대할 때가 있다. 까칠한 코코나 나이 많은 마루보다 덜 안아준 적도 있다. 그래서 그런 루루를 보며 '착하면 손해 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의식적으로 루루가 손해보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는 중이다.
아참! 루루가 칸트인 이유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지!
아무튼 루루는 착한 개이지만 자기 의견이 없는 개는 아닌데, 그런 루루가 왜 칸트가 되었냐면 하루 세 번, 루루의 루틴이 너무 정확해서 내가 너무 괴롭기 때문이다.
새벽 3시 30분
우리 집 개들은 마당에서 배변을 하기 때문에 밤에 자기 전에 11시쯤 꼭 배변을 시킨다. 그러고 나면 사실 다른 개들은 아침까지 잘 참는데 루루는 꼭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서 마당에 나가겠다고 한다. 덕분에 다른 개들도 새벽 배변을 하게 되니, 애들이 배변을 오래 참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긴 하지만.
잠귀가 밝은 나는 루루가 부산하게 일어나는 소리에 보통은 잠이 깨는데, 어쩌다가 내가 잠이 깨지 않으면 살짝 열린 펜스를 열고 침실까지 찾아오는 루루 덕에 새벽 3시 30분 기상은 루루와 코코, 마루 그리고 나의 루틴이 되었다.
거실 문을 열고 데크로 나가면 루루는 자기가 열지도 못하면서 데크에서 마당으로 나가는 문을 벅벅 긁어댄다. 급하게 뛰어나가 살포시 앉아 배변을 보는 루루를 보고 있으면 내 기분마저 시원하다.
오전 7시 30분
평일 남편의 모닝콜이 울리는 7시 30분. 이 시간이 되면 루루는 밥 달라고 난리가 난다. 사실 다른 개들은 아침에 더 자고 싶어 하기도 하는데, 루루의 배꼽시계는 남편의 모닝콜이 울리는 평일뿐 아니라 주말에도 정확히 울려 늦잠을 자고 싶은 우리 모두를 괴롭게 한다.
모른 척하고 누워 있으면 처음엔 그르렁그르렁 코 고는 소리를 내다가 결국 "앙!"하고 나는 깨우기까지 하기에 밥을 주고 다시 자더라도 그 시간에 일어나 밥을 줘야 한다.
밥 먹고 나면 마당을 한참 돌아다니며 큰 볼일까지 해결하고 들어오시니 그 시간을 기다리다 보면 잠은 이미 안녕하고 떠나버렸다.
오후 5시 30분
루루의 저녁 시간은 오후 5시 30분이다. 사실 루루는 5시쯤부터 밥을 주면 먹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다. 내가 움직일 때마다 밥 주는 건가 싶어 나를 쫓아다니다가 5시 30분이 되면 나한테 밥 주라는 사인을 보낸다.
저녁을 조금 늦게 주면 다음 날 늦게 일어날 수 있을까 싶은 욕심에 5시 30분을 넘기면 한 번 짖는 일 없는 루루가 또 "앙!"하고 나를 부른다.
모른 척하고 밥을 늦게 줘도 다음날 7시 30분의 아침식사는 변동사항 없음이기 때문에 나는 그 부름을 모른 척하지 않는다.
칸트 같은 루루 때문에 괴로운 것도 사실이지만, 루루를 보면서 부지런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먹고 자고 싸는 게 전부인 루루도 자기만의 루틴을 지키며 열심히 살아가는데, 나도 무기력해지지 말고 나의 루틴에 맞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