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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대노 Mar 31. 2022

엄마 닮았네

말 예쁘게 하는 건 유전인가 봅니다.

남편의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어제 이 말을 못 해서 전화했어. 난 있잖아, 네가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 편지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너무 좋아. 그래서 네 글이 올라오길 내가 기다리고 있더라고. 네가 글을 올렸는지 안 올렸는지 자꾸 들어와서 보고, 읽었던 것도 또 읽고 있어. 그 얘기하고 싶어서......”

아, 이렇게 예쁜 말로 사람 감동시키는 시어머니 있기, 없기?

평소 예쁘게 말하기로 유명한 내 남편은 그의 엄마를 닮았나 보다.     


엄마가 아침 일찍부터 전화해서 저런 예쁜 말을 전해주는 이유는, 아마 어제 내 전화를 받고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인가 보다.

“ㅇㅇㅇ씨, 뭐하십니까?”

“응, 지금 네가 쓴 글 읽고 있었어. 낮에 읽으려다가 뭐 다른 거 하다가 깜박해서 이제 읽게 됐지 뭐냐.”

“우리 ㅇㅇㅇ씨는 내 글도 안 읽고 뭐가 그리 바쁘셨나?”

“유튜브로 뭐 좀 보다가 그렇게 됐네.

“어허라... 나는 유튜브에 밀린 거네. ㅇㅇㅇ씨는 내 글보다 유튜브를 더 좋아하는구나. 앞으로 내가 유튜브보다 더 재밌는 글을 쓰도록 노력할게!”

엄마의 반응이 재미있어서 엄마를 놀리려고 한 말이, 엄마 마음을 불편하게 한 것일까?  

   

내가 브런치에 글을 올릴 때마다 아주 열심히 라이킷을 눌러주는 남편의 엄마는 내 글을 읽으면 우리가 사는 모습이 보여서, 우리 얘기를 듣는 것 같아서 좋다고 하셨다.               



내 남편은 너무 착하고 좋은데, 엄마 아들은 문제가 많다는 헛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며느리가 뭐가 예쁘다고, 그렇게 집안일을 해주고도 지 맘대로 안 해놨다고 잔소리나 늘어놓는 며느리가 밉지도 않은지, 아들 보러 집에 와서는 잠시도 쉬지 않고, 뭐 하나라도 더 먹이겠다고  일만 하시는지 모를 일이다.

집안일 하기 싫어하는 며느리 흉을 봐도 시원찮을 판에, 엄마는 내가 너무 완벽하게 살림을 하려고 하다 보니 힘들어져서 하기 싫은 거라고 위로한다.

이른 저녁부터 곯아떨어지실 정도로 집안일을 해주시면서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집을 너무 깨끗이 해놓고 살아서, 내가 할 일이 하나도 없네. 이렇게 청소하고 사느라 얼마나 힘들었어?”

“난 청소는 하겠는데, 설거지 너무 싫어!”

엄마가 오시는 날이면 설거지를 쌓아놓고 기다리는 며느리 때문에, 앉아보지도 못하고 오자마자 설거지를 하는 엄마에게 내가 투정이라도 부리면 엄마는 당신 아들을 나무라신다.

“아들, 설거지 같은 건 아들이 해. 우리 공주(며느리) 하기 싫은 거 하게 하지 말고. 아무것도 아닌 그런 일은 잘하는 사람(아들)이 하면 되는 거야.”        


  

동네 하수관 공사로 며칠 동안 우리 주차장에 차를 댈 수 없어서 멀리 주차하고 왔다고, 우리 공사도 아닌데 짜증 난다고 하소연을 했더니, 먼지 날려서 어쩌냐며, 며칠씩이나 자기 집 주차장에 주차하지 말라는 게 말이 되냐며 대신 화를 내주신다.

전화를 끊기 전 건네는 엄마의 말 한마디가 나를 또 기쁘게 한다.

“먼지 날린다고 스트레스 받을 거 없어. 공사 끝나면 엄마가 가서 청소 한번 싹 해줄 테니까, 하기 싫은 거 한다고 스트레스 받지마.”

아! 나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음이 틀림없다!



연관 글: 장손 며느리인 나는 막장 며느리입니다    

https://brunch.co.kr/@jinykoya/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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