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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대노 Sep 16. 2022

남편 엄마와의 여행을 꿈꾸다.

남편의 엄마는 혹여라도 당신이 누군가에게 부담이 되거나 폐를 끼치는 걸 무척 싫어하시는 분인데, 그건 자식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부모와 여행 한번 못 가본 남편은 해마다 철마다 아니 거의 매주 가족끼리 모여 어딘가를 다니는 나의 친정을 부담스러워하면서도 그렇게 살지 못하고 고생만 한  자신의 엄마를 안타깝게 여겼다.


이런 남편의 마음을 아는지라 남편의 엄마에게 여러 차례 함께 여행을 가보자고 제안했으나 혹여라도 우리가 불편할까 봐 엄마는 번번이 거절하였다.

"아직은 엄마가 혼자서도, 친구들하고도 잘 다닐 수 있으니까 괜찮아. 너네는 너네끼리 노는 게 편하잖아."

"아니, 엄마 아들이 엄마랑 여행 한 번 못 가본 게 안타깝다잖아! 어디 좀 같이 가보자고!"

"나중에 엄마가 나이 더 들어서 혼자 다니기 힘들면 그때 같이 가. 지금은 괜찮아."

"아니, 엄마 그건 아니지! 엄마가 젊고 건강할 때 같이 다녀야  내가 편한 건데 왜 나중이야! 나중에 같이 가려면 내가 너무 힘드니까, 적응하게 지금부터 같이 다녀!"

부담 주지 않으려는 엄마의 말을 꼬투리 잡아가며 떼를 써도 소용없었다.


결혼한 지 18년이나 됐는데, 엄마랑 여행 가본 건 딱 한번뿐이다. 홍천 힐리언스 0 마을이라고, 엄마가 좋아하는 완전 건강식만 나오고 핸드폰도 안 터지는 곳에서 숲 속을 걷기만 하는 곳이라 딱 엄마 맞춤이라고 꼬시고 꼬셔서 다녀온 곳.

친정 식구들과는 여러 차례 가본 곳이지만, 남편의 엄마는 그 좋은데 친정엄마랑 가라며 계속 거절하시다가 같이 가게 되었던 것이다.


싫은 소리는 한 마디도 안 하는 엄마는 너무 좋았다고 말씀하셨다. 사우나도 좋고, 음식도 좋고, 숲 속 길도 너무 좋은데, 잘 안 다녀봐서  아이보다도 숲길을 걷는 게 힘들었는데 그래도 좋았다고. 걷기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도 덧붙이시며 좋다고 하셨다.



안 그래도 집순이 집돌이인 나와 남편은 코로나를  핑계로 집 밖에 나가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삶을 몇 년 간 이어왔고, 차 막히는 거 너무 싫으니까 십 년 안에 은퇴해서 평일에 놀러 다니 자는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번 추석에 엄마가 지난번에 갔던 힐리언스 0 마을에서 숲길을 아이가 더 잘 걷더라는 말씀을 꺼내신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문득 깨닫는다. 아, 십 년 후에 은퇴해서 우리가 놀러 다닐 때면 엄마는 더 많이 늙고 약해지겠구나. 집에 있는 게 좋고, 길 막히는 게 싫어도 엄마를 모시고 여행을 다녀야겠구나. 자주는 아니더라도 그렇게 추억을 만들어 기록해야겠구나.

사춘기 아이랑 싸우기 싫다고, 나는 엄마 아들이랑 알콩달콩 놀게 엄마가 아이 좀 봐주면서 같이 가달라고 떼쓰면 들어주시겠지? 같이 여행가서 나만 편하겠다는 진심이 통하겠지?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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