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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대노 Apr 04. 2022

시어머니의 플루트

플루트 이야기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회사일이 바빠 1년 정도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엄마는 그전에 혼자 살 때부터 플루트를 배우고 있었다며, 우리 집으로 오셔서도 플루트 학원을 알아볼 정도로 열정이 가득했다.

그런데, 엄마가 내는 소리를 들어본 나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악보도 볼 줄 모를 뿐 아니라, 음정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막귀'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그래서 본인이 내는 소리가 틀렸는지, 맞았는지 조차 모르는 상태로 플루트를 배우고 있었다.

"아! 엄마! 엄마는 그런 막귀로 도대체 왜 플루트를 배우겠다고 하는 건데!"

막귀라며 엄마를 놀렸던가, 음정 차이도 구분하지 못하는 엄마를 무시했던가.


악보도 못 보는 사람은 플루트 하기 어렵다며 차라리 포기하라는 선생의 말이 서러워서였을까,  엄마는 플루트를 배우기 위해 피아노를 같이 배웠고, 오프라인에서 받는 무시를 덜기 위해 온라인 플루트 강의도 수강했다.

선생한테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플루트를 배우겠다는 엄마가 답답했다. 다른 취미도 많을 텐데 왜 기어이 플루트여야만 하는지 궁금했지만, 짜증스러운 마음에 묻지도 않았다.


'엄마는 왜 악보도 못 보고, 음정도 모르면서 플루트를 하겠다고 난리지?'

'왜 돈 주고 다니는 학원에서 선생한테 무시당하면서까지 저게 그렇게 배우고 싶은 걸까? 아니, 그 선생은 모르니까 배우러 다니는 거지, 나이 든 양반이 배우겠다고 하면 그 의지를 칭찬할 일이지 무슨 인성이 그 모양이야!'

무시했다는 선생에게 따지고 싶기도 했지만, 엄마의 막귀 상태를 아는지라 선생도 오죽 답답했을까 싶은 생각에 모른 척했다.

엄마가 내는 소리가 틀렸다며 잔소리를 하면, 이때다 싶어 엄마는 이것저것 물어온다.

막상 또 엄마가 물어보면 친절하게 대답해주지도 않으면서 틀렸다고 지적 하지나 말 것이지, 나는 엄마한테 왜 그렇게 못되게 굴었을까. 선생이 엄마한테 막 대하는 게 화가 났으면서 나 역시 엄마한테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엄마, 미안해!



내가 회사를 그만두면서 같이 살던 엄마는 엄마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 우리 집에 오실 때면 다른 건 몰라도 플루트는 꼭 챙겨 오셔서 몇 시간이고 연습을 하신다.

"엄마, 몇 시간씩 플루트 불면 안 힘들어? 나이도 있는 양반이 참 기운도 좋아."

"나는 하루 종일도 불 수 있어. 나는 이게 참 재미있다. 웃기지?"

그렇게 좋아하고 오래도록 열심히 해서인지, 이제 엄마는 '아! 무슨 노래 연주하는구나!' 알아들을 만큼 연주 실력이 크게 좋아졌다.  엄마의 좋아진 소리에 내가 다시 플루트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지금도 모른다. 엄마가 왜 플루트를 그렇게 열심히 하는지.

형편이 어려워 배우지 못했던 엄마의 어린 시절을 플루트로 위로받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응원한다, 엄마의 노력을.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던 사람이 곡을 곡답게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록 열심히 해온 엄마의 그 시간을 존경한다.

"엄마, 엄마 덕분에 나도 플루트가 다시 배우고 싶어 진 거야, 나중에 우리 합주도 같이 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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