갭먼스를 건강하게 보내는 첫 번째 방법
사실 이전에도 갭먼스를 경험한 적이 있다. 지금과 유사하게 퇴사 후 자유를 누리게 되었는데, 어떻게 그 시기를 꾸려갈지 목표나 마인드셋이 지금보다는 약했던 날들이다. 수면 패턴이 쉽게 무너지고, 마음 건강까지 안 좋아지고, 그러다 보니 일상이 더 침잠하는 악순환에 잠시 갇혔던 기억이 있다.
이번 퇴사 후에는 그 악순환이 다시 반복되지 않아야 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과로와 비정상적인 업무 패턴으로 이미 삶이 망가진 상황에서, 휴식이랍시고 모든 걸 놓아버리면 더 큰 폭풍이 오리라 쉽게 예상했기 때문이다. 특히 퇴사를 결심하며 가장 크게 바랐던 것이 일상 회복과 자기 관리였던 만큼, 제1의 원칙이 '일상 단단하게 서있기'였다.
그래서 갭먼스를 건강하게 보내는 방법으로 루틴에 대해 가장 먼저 이야기해보고 싶다.
(갭먼스를 지탱하는 근간인지라 내용이 길어져서, 두 편의 글로 작성되었다)
루틴(routine) 단어를 네이버 사전에 치면 아래와 같이 나온다.
rou-tine (옥스퍼드 영한사전)
1. 규칙적으로 하는 일의 통상적인 순서와 방법
2. (지루한 일상의) 틀, (판에 박힌) 일상
3. 루틴(공연의 일부로 정해져 있는 일련의 동작농담 등)
4. 루틴(일반적으로 빈번히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 또는 그 일부)
여러 뜻이 있고 다양한 상황에서 쓰일 수 있는 단어지만, 공통적으로 그 안에서 발견한 요소는 '반복'과 '약속'이었다.
우선 무언가를 규칙적으로 한다는 것, 지루하다는 것, 빈번히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모두 반복을 암시한다. 동일한 행동이 계속 발생하든 변주가 이루어지든, 일회적이지 않도록 반복해야 루틴에 포함될 수 있는 것이다. 바꿔 말해, 루틴을 만들고 싶다면 반복해도 괜찮은, 덜 질리는 행동을 찾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지 조금씩 명확해지기도 한다.
그 다음으로 약속이라는 개념 역시 중요하게 다가왔다. 순서와 방법이 정해져 있고, '일부'가 된다는 건 상당한 신뢰가 필요한 일이니 말이다. 이것이 어쩌면 내가 루틴을 일상 회복에서 제일 우선시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루틴 만들기는 곧 나와의 약속을 만들고 지키는 과정을 의미했다.
정리해 보면 일상 속 루틴은 '반복적으로 지킬 수 있는 나 자신과의 약속'이라고 할 수 있겠다. 루틴을 위한 행동 자체로도 유익한데, 나 자신과 신뢰감도 쌓아가게 되니 얼마나 좋은가?
루틴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모닝 루틴, 수면 루틴과 같은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이다. 루틴이 꼭 그 두 가지로 한정되는 건 아니지만, 그만큼 아침과 밤에 이루어지는 반복적인 행동이 기본이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 나 역시 하루의 시작과 끝을 잡는 것에서부터 출발했다.
잠에서 깨어 눈 뜨자마자 무엇을 보고 어떤 자극을 받는지는 정말 중요하다. 아침부터 와 있는 메시지에 기분이 좋아지기도, 알람 내용에 순간 불쾌감을 느끼기도 한 경우가 있지 않은가. 오전에 따라 하루가 좌우된다면 다소 과장이겠지만, 시작부터 무너지면 하루를 다시 세우기 어려움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물론 그 역시 큰 틀에서 보면 소중한 순간들이지만, 우리의 에너지를 재건에만 쏟기는 좀 아까우니 이왕이면 산뜻하게 시작하는 게 나을 것이다. 내가 5개월 동안 유지 중인 오전 루틴은 다음과 같다.
1. 명상
2. 하루 5분 아침일기
- 지금 이 순간, 감사하고 싶은 일은? (3가지)
- 어떻게 하면 더 좋은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3가지)
- 나를 위한 긍정의 한 줄은?
3. 요가 또는 유산소
4. 뉴스레터
5. 전일 습관기록 업로드 (오픈채팅 모임)
명상과 아침일기는 아직 뇌가 깨기 전에 마음을 정화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채우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아침일기의 경우 지인에게 선물 받은 <하루 5분 아침 일기(5 minutes journal)> 다이어리를 활용하고 있는데, 모닝 페이지처럼 일어나자마자 떠오르는 생각들을 항목에 따라 적는 구성이다. 주어진 감사제목 3가지, 좋은 하루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 3가지, 그리고 확언처럼 스스로에게 하는 긍정적인 말을 매일 적다 보면 하루를 주체적으로 꾸려갈 의지가 생기게 된다.
의식을 깨운 뒤에는 보통 몸을 움직인다. 요가원에 수련을 하러 가거나, 날씨가 괜찮으면 집 근처 공원 트랙을 30분 이상 돌고, 아니면 최소한 홈스트레칭이라도 한다. 본격적인 일상이 시작되기 전에 이렇게 몸과 마음을 깨워내면 하루가 정말 상쾌해서 갭먼스가 끝난 후에도 최대한 유지하고 싶은 루틴이다.
뉴스레터는 세상을 보는 안목과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 5년째 유익하게 보는 콘텐츠지만, 직장 다닐 때보다 여유가 많아진 지금 더 꼼꼼하게 읽고 있다. 한때 뉴스레터 매니아였던 시절에는 거의 6~7개씩 구독하기도 했는데, 어차피 다 소화할 수가 없어서 주로 뉴닉, 어피티, 14F 세 가지를 돌려본다. 점심식사 전후 짬날 때, 혹은 이동하면서 읽는 편이다.
습관기록은 8월부터 시작한 비대면 모임 활동의 일환으로, 매일 목표한 습관행동에 대한 회고를 올리면서 기록과 커뮤니티의 장점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습관기록모임을 포함해서 각각의 행동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효과가 있는지, 왜 건강함을 가져다주는지에 대해서는 이후 목차들에서 차차 풀어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이번 글은 루틴 자체에 초점을 두었으므로, 이 정도로만 소개하고 넘어가려 한다.
온전한 시작이 반복되면 하루를 스스로 운용한다는 감각이 생기고, 이는 곧 자기효능감으로 연결된다. 물론 아침감사일기와 같이 5개월째 동일하게 반복되는 루틴도 있고, 중간에 시행착오를 겪으며 수정한 경우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내게 맞는 루틴, 가장 적절한 시간과 방법을 찾는 과정이었다. 어떻게 찾아갔는지, 저녁 루틴을 비롯한 이후 내용은 다음 글에서 이어가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