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후 내가 좀 더 우쭐한 느낌이 든다면?

발언의 양과 우쭐감의 관계

대화의 양도 피자처럼 나누기


비대면과 대면을 선택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대면으로 만날 때는 더 유익하고 즐겁고 행복한 대화가 오고 가야 한다. 모처럼 만남이 있는 시간, 이왕이면 모두가 기분이 업될 수 있는 대화 원칙이 하나 있다. 피자 나눠 먹듯이 대화의 양도 피자처럼 나누기.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모인 사람이 비슷한 양으로 말하고, 진정으로 들어 준다면 대화 후 모두가 기분 업되고 다시 만나고 싶게 될 것이다. 이 어려운 코로나 19시대를 이겨낼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대화 후 느끼는 기분 업과 다운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하는 이유는 기분이 좋아질 거라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은 모임 후 초라한 자신을 확인하게 되고 오히려 자신감을 잃게 되는 경험도 하게 된다. 누군가 피자를 독식한 경우다. 나도 먹고 싶었는데 감히 먹겠다는 말을 못하고 먹는 모습만 보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나눠 주겠지 하며 앉아 있었지만, 줄 듯 결국에는 자기만 먹는다. 그 사람이 윗사람, 잘난 사람, 권력이 있는 사람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나도 피자 한 조각 먹겠다는 말 한 마디 못하고 남이 먹는 모습을 기분 좋은 척 하며 구경한 꼴이다.


어느 때는 모임을 통해 잔잔한 즐거움과 기분 업이 밀려 오고, 이런 모임이 또 있기를 바라게 된다. 대부분 피자를 골고루 나눠 먹듯 균형있게 대화의 양을 조절한 경우다. 좀 더 잘난 사람, 조금 더 권력이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도 같은 양의 대화, 그리고 그 대화를 할 때마다 나누는 공감이 있을 때는 즐거움에 배움도 더해진다.


대화 후 누가 더 우쭐함을 느끼나?


어느 누구와 대화를 하고 난 후를 한번 돌아보자. 이 대화 후 누가 더 우쭐하고 잘 난 느낌이 들었는지 생각해 보자. 내가? 아니면 상대가? 혹시 둘 다? 이것을 게임이라고 한다면, 보통 말을 더 많이 한 사람이 우쭐한 느낌을 받는 것으로 게임은 끝난다. 내가 대화 후 업되었다면 더 많은 말을 했을 것이고, 상대방은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적절한 반응을 했을 것이다. 만약 반대의 경우는 상대가 더 많이 말하고, 나는 귀를 기울여 들어 주었을 것이다. 이것을 알면, 윈윈하는 방법이 나온다. 비슷한 양으로 말하고 남이 말할 때는 경청하며 듣기. 상대의 기분을 살피며 말하기.



혼자 독식하는 습관이 내게 있나?


그런데 쉽게 잊게 된다. 1/N로 말해야 하는 것을 분명 알고 있는데 내게 조금이라도 권력이 있는 상황이면 피자를 혼자 먹으려 한다. 아이가 아닌 엄마, 학생이 아닌 선생님, 부하가 아닌 상사의 입장이 되면 왜 독식하게 되는 걸까? 왜 혼자만 더 말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 이런 생각까지 안 해도 왜 말이 계속 입에서 나오는 걸까? 왜 멈추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이건 패턴이고 문화고 습관이다.


습관이 되었다 해도, 조금만 의식하면 바꿀 수 있다. 문화도 바꿀 수 있다. 윗사람이 의식적으로 아랫사람에게 대화의 키를 주고, 경청을 해 준다면 게임은 달라진다. 아랫사람이 우쭐한 기분이 들게 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키를 넘겨 주려 하기 때문에 적절한 균형을 이루며 둘 다 기분 업으로 끝나게 되는 가장 이상적인 상태가 될 수 있다. 윗사람이 먼저 키를 내려 놓을 때만 가능하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안타깝게 드물다.


의식적으로 덜 먹기, 덜 말하기


조금이라도 권력이 있는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혼자 피자를 먹는 꼴불견의 모습이 아닌지 돌아 보고, 피자 판을 돌려야 한다. 그래야 직접 얼굴 맞대고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다시 얻을 수 있다. 세대 차이, 꼰대, 불통에서 멀어지려면 대화의 양을 신경쓰며 이야기해야 한다. 한 수 더 높이려면 내 피자를 더 줄여야 한다. 덜 먹는 것이다. 그래야 겨우 비슷한 양이 된다.


실리콘밸리의 위대한 코치로 불리는 빌캠밸은 코치와 멘토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멘토링을 한 후에는 멘토의 기분이 우쭐해집니다. 자신이 잘하고 성공했던 스토리를 멘티에게 설명하며 그 길을 따라해 보라고 말하게 되니 기분이 좋아지는 건 당연합니다. 보통 멘티는 멘토가 간 그 길이 쉬운 길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으며 멘토의 업적에 감동하는 것으로 끝나게 됩니다. 하지만 코치는 전혀 다릅니다. 코칭 후에는 코칭을 받은 사람이 우쭐해집니다. 나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었네. 내가 이렇게 괜찮고 멋진 사람인지 몰랐는데 하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코치는 상대방의 잠재력을 발견하게 하고 지금까지 할 수 없다고 느꼈던 일들을 해낼 수 있다는 마음으로 바꿔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코치 받는 사람이 우쭐한 느낌으로 코칭이 끝났다면 그 코칭은 성공입니다.”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우쭐한 느낌의 비밀


코치가 아니더라도, 아랫 사람이 우쭐한 느낌이 들 수 있게 대화를 이끄는 윗사람을 따르는 건 당연하다. 아랫사람은 이 사람을 어떻게서든지 만나려 할 것이다. 그것도 대면으로. 주변에 사람이 넘치고 소통이 넘치고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그저 내 말을 줄이고 상대의 말을 조금 더 들어 주고 우쭐한 기분이 들게 해 주었는데, 이상하게 자신도 우쭐한 기분이 든다. 참 잘 한 자신을 보게 되는 더 깊숙한 곳의 우쭐함. 새로운 살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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