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한 분야를 꼭 전문가 수준까지 해야 하나?

전문가 수준이 못되어도 다양하게 시도하기

2-1. 전문가 수준이 못 되어도 다양하게 시도하기

 

아이들이 관심 갖는 일을 해 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얼마나 오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우선은 일단 시도해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관심을 보이는 일을 시작하고, 중도에 그만두는 경우가 있더라도 일단 시도해 보게 하세요. 누구는 끝까지 해 보는 습관을 들여야 하고, 그래야 그것이 근성이 된다고 말합니다. 제 생각에는 끝까지 해 보지 않더라도 시도를 해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일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은 호기심에서 생기며, ‘해 보면 어떨까’라는 상상력에서 비롯됩니다. 다양한 경험이 아이의 창의력을 자극하고 미래에 창의성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창의성은 여러 가지 다양한 활동과 관련된 연결고리들 사이에서 자라납니다." <로버트 스텐버그>


‘한 분야를 전문적 수준까지 해야 할까?’ 아니면 ‘여러 분야를 시도하는 것이 좋을까?’하는 마음에서 부모는 아이가 어느 한 분야에서 특출 나게 전문적으로 성장하기를 바라지만,  하지만 아이는 부모의 바람과 다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보다 더 나은 아이가 되기를 바란다면,  부모의 바람과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에 기대감을 가지고 지켜보세요. 부모 생각의 한계를 넘어선 아이로 자란다는 멋진 상상을 하며 아이를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아들이 9학년(중3) 때 럭비를 시작했던 일이 떠오릅니다. 방과 후 럭비 동아리에 가입하겠다고 하는데 기특하기보다 걱정이 앞섰습니다. 당시 운동복만 180불이었는 그때 형편에 꽤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렇지만, 생전 처음 럭비를 해 보겠다는 걸 못하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러한 경제적 이유와 함께 운동복과 관련된 예전의 사건이 있어 더욱 내키지 않았습니다. 한국 초등 시절, 아들에게 검도는 검정 검도복과 남성스러운 검이 있어 매력적인 운동이었습니다. 검도를 시작한 지 3년이 지난 어느 날 아들은 갑자기 태권도장에 다녀야겠다고 했습니다. 학교 앞에서 그날 등록을 한 학생들에게 무료로 태권도복을 준다는 말을 듣고, 자기 이름을 쓰고 왔던 겁니다. 저는 검도를 단까지 딴 후에 태권도를 시작해도 된다고 설득해 보았지만, 아들은 이미 태권도복에 마음이 빼앗겨 제 말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두 운동을 모두 잘할 수 있으니 태권도를 시작하게 해 달라고만 했습니다.  두 개를 다 한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태권도를 시작하게 했습니다. 


하얀 태권도복을 입고, 환하게 웃으며 만족스러워하는 아들의 표정이 지금도 기억에 선명합니다. 두 달도 지나지 않아, 아들은 검도를 포기해야 하는 이유를 아주 길게  설명했습니다. 두 개를 다 하니 공부할 시간이 부족한데, 무료로 받은 태권도 복은 적어도 1년을 다녀야 하니 태권도만 하는 것이 낫겠다고 했습니다. 1년 후에 다시 검도를 시작하겠다며 저를 설득시켰습니다. 아이도 힘들어 보이고 이유를 잘 설명했으니 검도를 그만두게 했습니다.  그 후, 캐나다로 가게 되어 태권도와 검도는 모두 그저 평범한 수준으로 끝났고 더 배울 기회는 오지 않았습니다. 하얀 태권도복만 아니었어도 검도는 어느 경지에 올려놓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엄마의 욕심이었습니다. 


이런 어렸을 때의 태권도복 사건을 들추며, 럭비는 끝까지 해 보라고 다짐을 시켰습니다. 아들은 럭비는 예전부터 꼭 해 보고 싶었던 운동이라며 열심히 해 보겠다고 여러 번 다짐을 했습니다. 빨간색 럭비 옷을 입은 아들은 세상의 그 무엇도 부러울 것이 없는 얼굴, 태권도복 그때의 얼굴이었습니다. 럭비 팀은 ‘대표팀’과 ‘준비팀’으로 나뉘는데  훈은  준비팀에 들어갔습니다. 비싼 옷을 생각하면 학교 대표팀에서 활약해도 모자란데, 준비팀에 들어가서 아쉬웠지만, 이것도 엄마의 욕심일 뿐이었습니다. 


한 달쯤 지났는데 아들이 조심스레 말했습니다.  아무래도 럭비를 그만두어야겠다고. 친구가 피 흘리며 구급차에 실려 가는 모습을 보니 운동할 맛이 딱 떨어졌다는 이유였습니다. 럭비는 생각보다 위험한 운동이고 한번 다치면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에 다치기 전에 그만두는 것이 현명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머릿속 한편으로는 아까운 180불이, 또 한편으로는 피 흘리며 들어오는 아들의 모습이 번갈아 떠올랐습니다. 구급차에 실려 간 친구에 대한 아들의 상세한 묘사 때문에,  빨간 피를 흘리는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니, 180불은 아깝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그만두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워 보이는지. 


"뭐든 배울 수 있으면 되는 거야. 지금 이 경험에서 뭘 배웠니?"

마치 꽤 괜찮은 엄마처럼 말이 나왔습니다. 


"엄마, 저 정말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직접 해 보는 것과 상상한 것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아무리 호기심이 생겨도 시작하기 전에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는 걸 배웠어요. 정말, 이번에는 확실하게 배웠다니까요."


“어떤 식으로든 배움이 있었다니 다행이다.”


아들의 얼굴을 보니 후회하는 기색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결국 입어보고 싶었던 럭비복을 입어 보았고, 해 보고 싶었던 럭비도 해 보았습니다. 게다가 배움도 있었습니다. 


아들은 다양한 분야에 도전해 보면서 많은 시도를 했습니다. 마술, 바둑, 서예, 태권도, 검도, 피아노, 바이올린, 베이스 기타, 트럼펫, 비트박스, 댄스, 노래, 요리 등 다양한 활동을 시도했지만, 아직까지 어느 하나에 특출 난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남편은 이런 아들의 모습을 오랫동안 못 마땅하게 여겼는지, 대학을 졸업한 아들에게 뼈가 있는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훈아, 넌 뭐 하나 제대로 끝낸 게 없잖아. 정말 잘한다고 할 만한 거 하나 있어?"


이 말에 아들은 정색하며 대꾸합니다.


"아빠,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이런저런 것들을 내가 시도해 봐서 전 누구보다도 창의적인 사람이 되었다고요. 팀으로 일할 때, 친구들이 저와 같은 팀이 되려고 하는 거 모르시죠?. 전 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낸다고요. 그게 다 해보고 싶었던 걸 해 봐서, 다른 상황에서도 활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라고요. 탤런트 쇼(장기 자랑)에서 제 팀은 꼭 상을 받잖아요. 거의 다 제 아이디어 덕분이거든요."


저도 한 마디 거들었습니다.


"꼭 하나를 잘해야만 하나요? 하나를 끝까지 잘 해내는 아이도 있고 이렇게 이거 저거 다 해 보는 아이도 있는 거지. 후에 이 중 하나를 정말 잘하게 될지 누가 알아요?  그렇지 않다고 해도 해 보고 싶은 거 했다는 건만으로도 좋은 거 아닌가요?”


저의 속마음에는 아들이 다양한 것을 시도해 보는 가운데서도 전문가 수준의 어느 하나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람이 꼭 현실이 되진 않았습니다. 엄마의 뜻과 달랐어도, 아들이 행복해했던 순간에 움튼 만족감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자신감으로 자라났다고 확신합니다. 가끔씩, 슬금슬금 올라와 아까웠던 180불이 지금은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주 잘 쓴 돈이 되고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고 보니, 어린 시절의  사소한 사건들 속에서 아이의 자신감이 자라기도 하고 크게 손상되기도 한다는 것을 더 잘 알게 됩니다. 어떤 사소한 사건에서는, 아이가 힘을 얻거나 큰 기쁨을 느끼기도 하지만, 때로는  마음이 크게 상할 수도 있습니다. 당시에는 이러한 영향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고, 나중에야 할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다양하게 시도할 수 있게 도와주면 좋겠습니다. 가정 경제가 크게 흔들릴 정도는 아니라면 특히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아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게 해 준 경험’과 ‘아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은 경험’을 적어 보며 생각을 정리해 볼까요?


활동 12



현재 사회에서 중요시되는 창의성, 호기심, 상상력은 거창한 경험에서만 길러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이가 원하는 것을 시도해 보게 하는 작은 일에서 자라납니다.  


이에 덧붙여서, 아들은 이러한  과정에서 아들은 엄마를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 많았고, 저는 그런 설득을 당해 주었습니다. 자라고 보니 기대하지도 않았던 설득력이라는 역량이 덤으로 길러졌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이미 이러한 점을 알고 시작하니 얼마나 운이 좋은가요?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의 창의력을 길러 주는 아주 쉬운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