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경 시인
한참 동안 그대로 있었다
썩었는가 사랑아
사랑은 나를 버리고 그대에게로 간다
사랑은 그대를 버리고 세월로 간다
잊혀진 상처의 늙은 자리는 환하다
환하고 아프다
환하고 아픈 자리로 가리라
앓는 꿈이 다시 세월을 얻을 때
공터에 뜬 무지개가
세월 속에 다시 아플 때
몸 얻지 못한 마음의 입술이
어느 풀잎 자리를 더듬으며
말 얻지 못한 꿈을 더듬으리라 (공터의 사랑/허수경)
2003년 8월, 경주에서 대왕암으로 가는 길로 가다가 좌회전하여 포항으로 가는 길을 따라가다가 들어간 기림사, 비어 있는 마당이 내 눈엔 공터로 보여서, 그 날 따라 그 공터가 강렬하게 내 눈에 박혀서, 공터를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만나게 된 허수경의 시, ‘공터의 사랑’.
허수경 시인의 49재가 11월 20일 오후 2시에 서울 북한산 중흥사에서 열린다고 한다. 장례는 10월 27일 독일에서 치러지고. 난다 출판사의 김민정 대표는 “허수경 시인 마지막 이승에서 옷 벗는 날에 인사라도 모여하면 좋지 않을까 하여” 49재 자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주재하는 동명 스님은 고인과 ‘21세기 전망’ 동인을 함께 했던 어떤 시인의 법명이라고 한다.
허수경 시인의 책들을 주문한다. 49재 쎄울 북한산으로 11월 그 날 가고 싶은 데 갈 수 있으려나. 아마 가진 못할 터. 그 날 그 시간에 진혼곡이나 한 곡 불어 하늘에 날린란다. 트럼펫, 내 서툰 포켓 트럼펫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