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8일까지의 폭우 그 한가운데 있었던 나와 편은 사실 겁이 좀 나긴 했었다. 폭우 중에 우리가 받은 걱정 전화들과 카톡 및 문자 메시지들, 양으로 따지면 한 바가지쯤 되었다. 걱정해주실 만한 분은 다 걱정해준 셈이었다. 자녀들은 이틀여 동안 쉬지 않고 체크해주었고. 자녀들한테 혼도 좀 났다. 부산 집에 계시지 않고 내려왔다고 해서. 하지만 거두어야 할 작물 때문에 내려오지 않을 수 없었다.
내일 10일 오후에는 장미라는 이름의 5호 태풍이 이 지역을 방문할 모양이다. 소형이긴 하지만 강풍과 폭우를 동반한다고 하니 다시 한번 정신 바짝 차리고 기다려야 한다.
어제의 폭우와 내일의 태풍 장미 사이에 낀 오늘 9일, 일기예보 상으로는 11시까지 잠깐 날이 들겠다고, 그러니까 비가 그치겠다고 한다. 눈 뜨자마자 고추 따고 참깨를 쪘다. 참깨는 모조리 다 쪘다.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숟가락 던지고 이번엔 참깻잎을 하나하나 다 떼었다. 건조를 좀 더 용이하게 하기 위해. 그리고는 깻단을 묶어 급한 대로 선풍기를 돌렸다. 다시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젓가락을 던지고 이번에는 고추를 가위로 하나하나 다 반으로 잘랐다. 이 또한 건조기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다행히 일기예보보다 비 멈춤 소강상태가 더 길어진다. 이번엔 황토방 아궁이에 장작불 붙이는 일, 장작을 패어 아궁이 앞에 갖다 놓은 후 또 내가 해야 할 일은 집 주위와 밭둑과 창고와 고방을 둘러보면서 내일 들이닦칠 태풍 장미 맞이에 만전을 기하는 거. 치울 거 치우고 손 볼 거 손 봤다.
마지막 일이 남았다고 편이 부른다. 즉시 뛰어갔다. 호출자 앞으로. 깻단과 고추를 황토방으로 가지고 오라는 지시! 지시가 떨어지지 마자 곧바로 행동에 옮겼다. 날라주니 편이 방바닥에 고루 펼친다.
참깨와 고추를 말릴 기회인 오늘을 놓치면 수확을 포기해야 할판. 그래서 이 틈새 날인 오늘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루 종일 용을 썼다. 얼마나 썼던지 나중엔 들어간 땀 때문에 눈이 다 침침해졌다.
태풍전야라서 그런가? 산기슭 깊은 밤 사위가 고요하다. 편은 깊은 잠에 빠졌다. 밤, 풀벌레 소리는 가을을 부르는 풀벌레 소리다. 낮의 고추잠자리들, 폭우 때문에 날지 못하고 있다가 오늘 등장해서는 공중을 이리저리 떼를 지어 배회하던 낮의 고추잠자리들이 눈에 선하다. 근접거리인데도 부딪히지 않던 그 모습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