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와 변고

081201 범이와 호비의 대판 싸움

by 로댄힐

고요


어둠이 부쩍 빨리 내려앉는다. 달빛은 구름에 가려 희미하다. 고요함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지만, 겨울에는 더욱 선명하게 느껴진다. 지금은 11월, 겨울이라 부르기에는 조금 이른 듯하다. 밤공기는 서늘하지도, 춥지도, 그렇다고 따뜻하지도 않다.


동매리 길뫼재의 밤낮은 그야말로 주경야독이다. 밭일에 정신을 쏟다 보면 낮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밤이 되면 노트북을 펼쳐 원고를 정리한다.


저녁 여덟 시쯤, 사위는 고요하다. 그러던 중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반복되는 소리에 이끌려 밖으로 나와 보니, 건너편 밤나무 숲에서 나는 듯하다. 잎을 아직 달고 있는 밤나무 사이에서 울려 퍼진다. 염소 소리인가 싶었으나 아니었다. 산짐승의 소리 같았다.


귀 기울이니 이번에는 새소리처럼 들린다. 낮은 울림이 “부엉부엉”하고 메아리쳤다. 부엉이일까, 아니면 올빼미일까. 멀리 섬진강 평사리 공원 위로는 서치라이트가 춤추듯 구름 위에 글씨를 쓰고 있다. ‘대봉감 축제’의 불빛이다.


저기 아래 큰 바위인 숙진암 앞의 감나무. 매년 5월이면 내게 ‘5월의 편지’를 보내주는 그 고목이, 지금은 홍시 하나만 매달고 있었다. 지난밤 불던 바람은 잦아들어 낮은 고요하다. 단 하나라서 가득 차 있고, 단 하나라서 비어 있다. 둘이라면 충만할까. 숫자 ‘11’, 둘이어도 어쩐지 헐렁하다. 11월이 가기 전에, 아니면 늦어도 11월에는….


건초


언덕 밭 나무들의 둘레를 팠다. 애초에는 바위 밭 나무들에 먼저 겨울 밑거름을 줄 생각이었지만, 오후 두 시가 넘어서야 일을 시작할 수 있었기에 운동 삼아 가볍게 마무리하자는 마음으로 나섰다. 대봉감나무와 단감나무 둘레를 먼저 파고, 이어 매실나무 둘레까지 팠다. 자두, 배, 사과, 돌배, 모과나무 둘레는 해가 저물어 다음으로 미뤘다.


밑거름은 그럭저럭 충당된다. 베어낸 풀과 긁어모은 낙엽이 제법 쌓였고, 첫해에 닭똥을 섞어 묵힌 퇴비와 깻묵도 아직 남아 있다. 여름에 경운기 세 대 분량으로 실어 나른 소똥 거름도 있고, 곧 녹차 거름 백 포대도 들어올 예정이다.


그래서 이번 겨울에 쌓아둔 건초더미는 내년 가을 농사용으로 쓸 수 있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은, 퇴비만큼은 자급자족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앞으로는 돈 주고 거름을 사지 않으려 한다. 물론 꼭 필요한 비료는 구입해야겠지만, 값이 너무 비싸다 보니 줄일 수밖에 없다. 이래저래 자급 퇴비의 비중은 더욱 커질 것이다.


대판 싸움


달이 제법 크고, 밤은 고요했다. 여덟 시 반쯤, 원고 정리를 마치고 노트북을 덮는 순간 밖에서 정적을 깨뜨리는 큰 소리가 났다. 단순히 움직임을 포착하고 짖는 소리가 아니라, 급박하고 공격적인 울음이었다. 산돼지 같은 산짐승이 내려와 전투가 벌어진 것인가 싶어 창을 열어보니, 뜻밖에도 집 앞마당에서 두 마리 개가 격렬히 엉켜 싸우고 있었다. 이동 줄에서 놀다 목줄이 서로 꼬여버린 것이다.


나는 용수철처럼 튀어나갔다. ‘엉킨 줄을 풀어야 한다’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때, 개싸움에는 물을 끼얹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서둘러 물 한 바가지를 퍼부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자유로운 상태라면 떨어졌겠지만, 줄이 꼬여 서로 떨쳐낼 수도 없었다. 바가지를 던져두고 줄을 잡아보았지만, 어둠 속에서 두 녀석은 더욱 격렬하게 물어뜯었다.


진돗개의 사나움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고, 우리 집 골든 리트리버도 만만치 않았다. 범이가 밀리는 듯싶어 덩치 큰 호비를 더 세게 잡았더니 이번에는 호비가 불리해졌다. 아래 마을 사람이 이 광경을 보았다면, 위쪽에서 무슨 난리가 난 줄 알았을 것이다. 셋이 엉켜 내는 소음은 난장판 그 자체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싸움은 격렬해졌다. 나도 지쳐 쓰러질 지경이었다. 준비도 없이 어둠 속 싸움판에 뛰어들어 당황스러웠지만, 물러설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둘을 떼어놓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다 손가락이 물리고 말았다. 범이의 이빨 같았지만 확실치 않았다. 어둠 속에서도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게 보였다.


우여곡절 끝에 호비를 떼어내 끌고 가려했지만, 범이가 달라붙어 놓아주지 않았다. 뒷발로 겨우 밀치며 호비를 집으로 데려가는데, 범이가 달려들어 내 앞을 막고 허벅지를 물었다. 그 와중에 입고 있던 운동복 바지가 찢어지고, 호비까지 다시 물리고 말았다. 기진맥진 끝에 범이를 자기 집으로 몰아넣는 데 겨우 성공했다. 닫히는 문에 발이 끼이기도 했지만, 마침내 둘을 가둘 수 있었다.


개 두 마리의 얼굴과 몸뚱이는 피투성이였고, 내 손가락에서도 피가 줄줄 흘렀다.


변고


순간, ‘개에게 물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급히 안으로 들어와 응급처치를 했다. 붕대로 지혈을 하고 곧바로 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위급 상황 발생. 지금 응급실에 빨리 가야 할 것 같아.”


하동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상처 부위를 드레싱 하고 주사 두 대를 맞았으며, 약도 이틀분 받았다. 나는 상처와 광견병에 대해 거듭 물었으나 의사는 대답을 피했다. 다만 개에 물린 상처는 곧바로 꿰매는 게 아니니, 부산에 가면 사흘 뒤 다시 병원에서 조치를 받으라는 말뿐이었다.


‘바로 꿰매지 않는다’는 말에서 사태의 심각성이 느껴졌지만, 더 이상 설명을 듣지 못해 포기하고 길뫼재로 돌아왔다. 의사가 덧붙인 말은 이랬다.


“개를 때리지 마십시오. 열흘간 계속 관찰하세요. 이상이 보이면 치료해야 합니다. 광견병은 80년대 이후 발병 사례가 없습니다.”

사실은 응급실로 향하기 전, 이미 심하게 여러 대 때려놓은 뒤였다.


길뫼재에 돌아온 건 밤 열 시 반 무렵. 다른 때라면 두 녀석이 요란했을 텐데, 이번에는 기척조차 없었다. 집에 가 보니 두 녀석 모두 그로기 상태였다. 나 또한 다르지 않았다. 셋 다 상이군인 신세라 싶어 빨간약을 뿌려주었다. 호비의 이동 줄 말뚝을 다시 박고, 피 묻은 옷가지와 수건은 모조리 불에 태웠다. 범이를 줄에 매어 두고 방 안을 정리한 뒤, 편과 아이들에게 경과를 전하느라 몇 차례 통화를 하니 자정이 되었다.


새벽 네 시, 은은한 달빛에 이끌려 밖으로 나가 보았다. 범이는 꼬리를 흔들면서도 일어나지 못했다. 호비 역시 고개를 푹 숙인 채 힘겹게 내 앞에 섰다. 둘 다 여전히 많이 아픈 모습이었다.


날이 밝았다. 편은 노모 아침밥 준비 때문에 일곱 시 차를 놓치고 열 시 차를 타겠다고 했다. 나는 포크질로 퇴비를 옮기다가 붕대 감은 손가락에서 피가 번져 나와 소프라노 색소폰을 집어 들었다. 다친 손가락으로 눌렀지만 그럭저럭 소리가 났다. 열두 시 도착 예정인 편을 마중 나가려던 중, 문자가 왔다.

“남해고속도로 다중 추돌 사고로 처음부터 국도로 들어섰는데, 국도마저 막혀 겨우 진주 부근까지 왔다.”


하동 터미널에 내린 편은 병원부터 가자고 했다. 나는 “부산에 가서 하라고 하던데” 했지만, 편은 어젯밤 받은 치료를 정식으로 다시 받자고 했다. 듣고 보니 옳았다. 이번엔 담당 의사가 광견병과 파상풍, 맞은 주사와 약에 대해, 그리고 개에 물린 상처를 바로 꿰매지 않는 이유까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어젯밤에는 파상풍 생각조차 못 했는데, 기우가 하나 늘어난 셈이다. 전날 의사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했지만, 이제는 가벼운 아쉬움일 뿐이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 길뫼재에 돌아왔을 때, 두 녀석은 조금 기운을 차려 있었다. 반가움을 표시하며 짖기도 했다. 편이 가져온 캔과 소뼈를 주었더니 잘 먹었고, 나는 간식 두 가지를 더 챙겨 주었다. 허벅지와 오른 손목 상처는 대수롭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아침에 보니 왼 손목에도 하나 더 있었다. 이번 개싸움으로 생긴 상처는 모두 네 군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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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다행


부산 집 근처 외과병원에 예약했다. 아마 몇 바늘은 꿰매야 할 듯하다. 오밤중 개싸움에 휘말려 벌어진 난장판을 정리해 본다.


먼저, 아쉬운 점이다.

대책 없이 성급하게 싸움판에 끼어든 것.

이동 줄을 넓게 벌려 설치하지 않은 것.

결국 개에게 물린 것.


둘째, 이번 사태에서 배운 점이다.

광견병과 파상풍에 대해 새삼 학습한 것.

소독제 등 비상 구급약을 제대로 갖추어야겠다는 결심.

산기슭에서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을 직접 경험한 것.

응급실로 가야 한다는 판단을 지체 없이 내린 것.


셋째, 전화위복이자 다행으로 여기는 점이다.

추워서 내의를 입고 갔는데, 날이 풀렸음에도 그대로 입고 있어 보호가 된 것.

두꺼운 운동복 바지를 입고 있어 큰 상처를 피한 것.

더 크게 물리지 않은 것.

주말마다 이용하는 남해고속도로의 대규모 추돌사고 시각을 피한 것. 이건 서울에서 내려온 둘째 덕이었다. 평소 같으면 새벽에 출발했을 텐데, 이번에는 구포역에 데려다주고 낮에 출발했다.

편이 사고에 휘말리지 않은 것. 평소 같으면 첫차를 탔을 텐데, 이날은 열 시 차를 탔다.


생각도 바꾸기로 했다. 처음엔 “저 녀석이 날 물었다” 싶었지만, 곰곰이 떠올리니 일부러 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앞을 가로막고 허벅지를 물었을 때도, 꽉 문 것이 아니라, 분을 주체하지 못해 옷자락을 당긴 정도였을 것이다. 그래서 두 녀석에게 더 잘해 주어야겠다고 마음을 고쳤다.


고요와 변고. 말이 났으니 말인데, 겨울 산기슭의 달밤은 고요했다. 그래서 그 고요 속에서 소란이 더욱 크게 두드러졌다. 이제 곧 그 변고의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가야 한다. 일어서기 전에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아직 오후 커피를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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