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214
안에서 소프라노 색소폰을 불고 있었다. 알토 색소폰보다 작은 이 악기는 고운 음을 내기가 더 어렵다. 아무래도 내 앙부슈어와 주법이 문제일 터이지만, 그래도 요즘은 예전보다 한결 나아졌다. 숨을 가다듬고 몇 곡을 이어 부는데, 범이와 호비가 심상치 않게 짖어댔다. 문을 열고 나가니 곽 씨 할아버지가 지게를 진 채 입구에 서 계셨다.
지게에서 봉지 두 개를 내려놓으시며 “이건 목단이고, 이건 백자각”이라고 하신다. “백자각은 지리산에서만 볼 수 있는 귀한 식물이며, 목단은 어린 시절 부친께서 청학이골 집 마당에 심었던 것이 대를 이어 번식한 것”이라고도 하셨다. 할아버지 연세가 팔순이니, 그렇다면 그 뿌리는 족히 백 년은 이어온 셈이다.
나는 수첩을 꺼내 ‘백자각’이라는 이름을 급히 적었다. 처음 듣는 이름이어서 금세 잊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말로는 자각은 적자각과 백자각이 있는데 한약방에서 백자각이 훨씬 금이 더 나간다고 한다. 흰 꽃 백자각, 꽃이 핀 후에 정확한 이름을 알아낼 수 있겠다. 아무튼 귀한 선물이었다. 흙이 떨어지지 않도록 뿌리를 포대에 감싸서 지게에 지고 오신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 또한 품위를 지켜 가꾸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머무는 나흘 동안,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지게를 지고 산을 오르내리시는 곽 씨 할아버지를 뵈었다. 칸트의 산책 시간의 정확성은 마을 시계보다 더 높았다는데 이 할아버지의 하루 두 번 오르내리는 시각은 거의 일정하다. 여든을 넘기신 연세에도 하루 두 번 오르내리며 늘 한 짐씩 지고 내려오신다.
물론 경사진 길인지라 젊은 사람도 천천히 걸어야 하는데 연세가 아주 지긋한 노인이니 천천히 발걸음 떼는 것이 당연지사이겠지만 완만한 걸음걸이는 그 자체로 ‘느림의 미학’이었다. 오르내리실 때 내가 일한다고 보지 못하면 황송하게도 매번 먼저 말을 건네주신다. ‘곱게 늙는다는 것’을 잔잔한 미소로, 온화한 말투로 보여주시는 분이다.
‘늙음’은 남의 일이 아니라 곧 나의 일이다.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일, 모레 닥쳐올 내 모습이다. 지게를 진 곽 씨 할아버지의 뒷모습에서 나는 농부로 늙어갈 내 모습을 그려 본다. 이곳에 와 처음 뵌 곽 씨 할아버지와 그리고 두 번째로 뵌 박 씨 할아버지가 그랬다. 구순에도 매일 밭을 오르내리던 박 씨 할아버지는 지난봄 꽃상여 타고서 산의 자리로 조용히 가셨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늙어야 하는지’를 보여주신 분들이었다.
다음 날, 다시 올라가시는 곽 씨 할아버지를 내가 먼저 보고 큰소리로 인사를 드렸다. 이름을 다시 물으니 확실히 ‘백자각’이라고 하셨다. 지리산 깊은 골짜기에서나 볼 수 있는 귀한 식물, 눈 밝은 이만이 알아보는 값진 식물이라 거듭 말씀하셨다. 그리고 내 일하는 모습을 보시더니 “무슨 일을 그리 강도 높게 하느냐”라고도 하셨다. 강도(强度)라는 표현을 쓰시다니 새삼스러웠다.
부산으로 돌아와 살펴보니, 백자각은 곧 백작약을 이르는 말이었다. 적자각은 적작약이고. 목단은 모란. 그제야 퍼뜩 웃음이 났다. 하지만 이름의 착오와는 무관하게, 그날 내가 받은 것은 분명 격조 높은 선물이었다. 꽃이 피면, 흙 내음과 함께 할아버지의 미소도 다시 떠오를 것이다.
내년 봄, 백작약이 흰 꽃을 활짝 틔울 때가 기다려진다. 맑은 햇살 아래 은은하게 피어날 그 꽃을 바라보면 곽 씨 할아버지의 느린 걸음도 다시금 떠오를 것 같다.
꽃잎마다 스민 세월의 향기가 곱게 늙어가는 삶의 한 자락이 되어, 이 언덕에서 나 또한 그렇게 늙어가고 싶다는 다짐을 그때 되새기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