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226
요 며칠 사이 악양에 내린 비의 양이 제법 크다. 겨우내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아 사람 속을 태우더니, 이제는 문이 열린 듯 2~3일, 혹은 3~4일 간격으로 꾸준히 내린다. 도착 첫날 내린 19㎜의 비는 하루 종일 이어졌다. 꼼짝없이 집에만 있어야 할 판이었지만, 놀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 큰 통을 들고 바위밭으로 내려가며 빗속의 막일이 시작되었다.
부산 동네 시장의 기름집 아주머니가 귀한 깻묵을 종종 주셨다. 그것을 통에 담아 썩히는데 하나로는 부족해 통을 하나 더 마련하기도 했다. 이어 모아둔 깻묵 포대를 지고 내려가기를 세 번, 모두 네 번을 오르내렸다.
그러는 중에 겪은 한 번의 식겁, 길이 미끄러워 포대를 지고 조심스레 내려가는데 갑자기 뒤에서 ‘탱크’가 달려오는 듯한 굉음이 들렸다.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멧돼지?”라는 생각이 뇌를 스쳤다. 급히 돌아보니 목줄이 끊어진 호비가 경사진 길 아래로 달려 내려오고 있었다. 넘어진 내 위로 덮치나 싶었는데, 호비는 눈앞에서 급히 멈췄다. 목줄에는 주먹만 한 쇳덩이가 달려있었는데, 그것이 굴러가는 소리와 호비의 거친 숨소리, 내리막길에서 이는 바람 소리가 합쳐져 마치 탱크가 달려드는 듯 들린 것이다.
놀라움이 가라앉고 나니 고마움이 앞섰다. 한 대 때리지 않고 쓰다듬어 주었더니, 호비는 넘어진 내 손을 핥아 주었다. 그 후로 몇 가지 잡일을 하고 나니 해가 기울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해의 기울기는 멈추지 않았다.
다음 날, 공기는 온화하고 바람은 상쾌했다. 형제봉과 신선대에 드리운 구름이 어찌나 상큼하고 조화로웠던지, 일을 시작할 생각도 잊고 한참 바라보았다. 악양 평야에 가득 밴 물기는 봄을 더욱 재촉하는 듯했다.
도라지를 많이도 심었다. 지겹도록 심다가 질릴 지경이었지만 결국 다 심어냈다. ‘만세’다, 그것도 대한민국 만세! 그러다 문득 빠져든 몽상, “이걸 다 캐면 어디다 담지? 대바구니 몇 개가 필요할까? 꽃은 흰색일까, 보라색일까? 작년엔 보라색이 많았던 것 같은데…. 위스키에 담으면 도라지 위스키가 되는 걸까?” 이런 몽상은 묘하게도 피로를 풀어주었다. 저 앞 매화나무의 봉오리마저 부풀어 오르는 것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네거리에 이르자 색색의 네온사인 불빛 저 뒤로, 어둠에 묻힌 남산의 자태가 흐릿하면서도 묵직하게 드러났다. 정동진이 걸음을 멈춘 곳은 도라지 위스키 시음장이었다. 최초의 국산 양주인 도라지 위스키의 시음장은 서울 중심가 번창하기 시작한 새로운 업종이었다. 그러나 값이 비싸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술집이 아니었다.”(조정래 『한강』 중에서)
밤이 찾아와 테라스에 섰다. 사방이 어둠에 잠겼다. 고개를 들어 올리니 별들이 어둠을 밀어내듯 반짝이고 있었다. 나란히 늘어선 세 개의 별이 눈에 들어왔다. "별자리 공부를 좀 해봐야겠다. 망원경도 하나 장만해야지."
새벽 여섯 시, 아직 어둑했지만 바람은 한결 부드러워져 밖에 서 있기 좋았다. 겨울에도 매일 이 시간에 나왔으니 지금쯤 나오는 건 일도 아니다. 밭둑을 걸으며 심호흡했다. 이른 아침 오토바이 소리가 산으로 향했다. 마을 이장이 고로쇠 물을 가지러 가는 길이었다. 어제도 내려가며 한 병 건네주고 갔다. 조금 뒤에는 염소 영감님이 올라왔다. 눈에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새벽부터 마주 보이니 계절이 바뀌었음을 실감했다.
해가 떠오르니 배가 고팠다. 삽을 내려놓고 테라스에 앉아 먹다 남은 땅콩과 제주 마라도에서 가져와 심은 땅콩을 커피 한잔과 곁들였다. 눈앞에는 악양 평야와 둘러선 산들이 정원처럼 펼쳐져 있었다.
부산으로 돌아와 확인해 보니, 그 세 개의 별은 오리온자리의 허리를 이루는 별들이었다. 오리온은 2월 남쪽 하늘 머리 위에 자리한 별자리였다. 말하자면 ‘오리온의 별 셋’.
다음에 내려가서 해야 할 밤일 하나, 그건 오리온자리의 전모를 확인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