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216 꿈틀대는 봄기운
“아이가 아이였을 때 팔을 휘저으며 다녔다. 시냇물은 하천이 되고 하천은 강이 되고 강도 바다가 된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시금치와 콩, 양배추를 억지로 삼켰다. 그리고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모든 것을 잘 먹는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아이는 놀이에 열중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열중하는 것은 일에 쫓길 뿐이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막대기를 창 삼아서 나무에 던지곤 했는데 창은 아직도 꽂혀 있다.” (빔 벤더스 감독의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의 대사 일부)
봄의 발자취
아직 매화가 활짝 피진 않았다. 가지마다 터질 듯 부풀어 오른 꽃봉오리들이 맺혀 있을 뿐이다. 하지만 봄은 이미 반걸음 앞서 다가왔다. 예전 차밭에서 세작 찻잎이 돌아서면 어느새 두 치나 솟아 있었고, 매화밭에선 보고 있는 순간에도 봉오리가 부풀어 오르는 것을 경험했다. 이번에도 음력 절기는 기막히게 들어맞았다. 우수인 18일쯤이면 매화가 거의 다 터질 거라는 짐작이 들었다.
그런데 염소 영감님의 매실 밭은 달랐다. 한두 그루가 아닌 대부분의 나무가 이미 꽃봉오리를 달고 있었다. 그 밭만큼은 예외적으로 봄이 먼저 찾아온 것이다. 물론 일찍 피는 매화는 있지만, 밭 전체가 이렇게 피어나는 것은 처음 봤다. 해마다 그랬다는 영감님의 말에, 내 일에 바빠 미처 보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그야말로 돌밭
“파야지, 파야지” 하면서도, “파서 뒤엎어야지” 하면서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숙진암 바위 밭, 나와 인연을 맺기 전에 묵혀 두고 있었는지라 땅이 여물었고, 10여 년 전에 이 바위가 굴러 내려온 그 폭우 때 땅을 다 쓸어버려서 그런지 그건 몰라도, 아무튼 박힌 돌들이 삽 들어갈 여지를 한 치도 주지 않아서 그랬다. 여러 번 시도했지만, 본격적인 착수는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반가운 비가 내렸다. 여기 악양에는 62mm의 비가 쏟아져 땅이 부드러워졌다. 과연 그랬다. 이번엔 곡괭이까지 들고 가니, 삽날이 돌 틈을 비집고 깊이 들어갔다. 잘하는 삽질 덕분이 아니라, 땅이 스스로 길을 열어준 것이었다. 비와 봄, 그리고 자신을 내어준 땅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렇게 전날 오전부터 다음 날 오후까지, 생각보다 깊고 넓게 땅을 파고 뒤엎었다. 그렇게 많던 돌들도 모두 치워냈다.
염소 영감님의 염소 우리가 있는 언덕에서 내려다보니, 여태껏 판 땅이 한 뼘도 되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반 뼘 크기는 더 되어 보인다. 땅만 보고 팔 때에는 그리고 뒤엎은 후 한발 비켜서서 볼 때엔 엄청나게 넓어 보였는데 말이다. 파서 뒤엎은 거기, 그러니까 숙진암 바위 앞쪽은 들깨밭으로 만들 참이다.
작은 밭이긴 하지만 삽과 괭이만으로 부치기엔 한계가 있어, 일구지 않고 그대로 둔 채 과일나무만 가꿀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흙과의 친화력은 원시적 농기구(괭이와 삽)를 손에 쥐고 흘린 땀과 비례하는 것임을 괭이질 후에는 매번 느낀다. 그건 또 땅에 훈기를 불어넣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무엇을 심기로 하였고 둘이 머리를 맞댄 끝에 내린 결론이 들깨를 심는 거였다. 내 노동이 좀 더 허락한다면 바위 아래위로 들깨 외에도 고구마, 더덕, 도라지, 취나물을 심을 생각이다. 바위 위쪽은 호박 자리로 만들기 위해 호박 구덩이를 여러 개를 판 후 소똥 거름을 잔뜩 묻어 둔 상태다. 비 내린 뒤인지라 들판의 보리밭이 멀리서도 싱싱하게 보였다.
봄기운 불쑥불쑥
모란은 순이 제법 크다. 수선화가 하룻밤 사이 쑥 올라와 있었고 수선화도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장난기 표정! 물론, 풀들이 새로 많이 났다. 기온은 겨울이지만 햇살 펼쳐진 들판은 봄기운이다.
오늘은 개구리가 아예 내내 운다. 1월 중순엔 소리를 들려주던 개구리가 알을 잔뜩 낳았다. 그런데 올챙이도 여러 마리 논다. 미심쩍어 잡아서는 손바닥에 올려 올챙이임을 확인했다. 초겨울까지 올챙이가 있더니 늦겨울에부터 올챙이가 생긴다.
이번 우리 못엔 두 종류의 개구리였다. 그러니까 이번 올챙이는 더 크다. 금개구리(내가 지은 이름. 우리 못에 늘 있는 놈)가 아니고 우리의 도랑에서 옛날부터 흔히 보는 약간 큰 연두색 개구리이다. 아지랑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은 겨울.
시금치의 생기
얼어 죽은 줄 알았던 시금치가 생기를 되찾고 있었다. 한 뼘 시금치 두둑이 초록으로 변하고 있었다. 시금치, 이는 내가 아이였을 때 작물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내 손으로 괭이질하여 만든 작은 밭두둑에 또 직접 씨앗 뿌려 가꾼 시금치가 자랄수록 진해지던 ‘진초록 색상’이 지금도 눈에 선명하다. 그래서 나는 시금치를 내 유년의 식물로 여긴다. 시금치 잎의 흙 속에서 드러나는 꽁무니 색은, 그때엔 많이 가슴 울렁거리게 했는데 지금은 가볍게 설레게 한다. 아직도 난 덜 떨어진 모양이다. 이런 것에 반응하니.
콩은 두 해 연속 실패했다. 첫해에는 까치가 싹을 모두 먹어버렸고, 다음 해에는 거름을 너무 많이 줘서 무성한 잎 때문에 햇빛이 들지 않았다. 이번에도 콩을 심을 것이다. 시금치는 여기서 가꾸고 콩은 저 아래, 바위 밭에서 가꿀 참이다. 내가 아이였을 때 본 콩 심는 방법은 손가락으로 흙에 구멍을 내어 심는 것이었다. 재작년에 그렇게 심었더니 그렇게 하는 나를 보고 편은 일 년 내내 웃었다. 물론 일 년 내내 그렇게 한 것은 아니다. 원시인을 연상하는 듯한 표정의 웃음을 몇 번 짓긴 지었다. 밤에 본 ‘베를린 천사의 시’ 영상이 삽질하는 도중에 여러 번 떠올랐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시금치와 콩, 양배추를 억지로 삼켰다.”
“미운 사람”
배낭을 챙겨 나온다. 이별할 시각이다. 해가 제법 길어졌다. 오후 5시인데도 서산에 아직 걸리지 않았다. 봄이 오고 있다는 말이다. 배낭을 지고는 앞으로 갔다. 그리 나부대던 두 놈, 이땐 매번 움직이지 않는다. 풍기는 분위기가 적요하기까지 하다.
먼저 범이 앞으로 갔다. 손을 철망 안으로 밀어 넣었는데도 핥지 않는다. 큰 소리로 말하자 겨우 핥는 시늉을 하고는 고개를 돌린다. 눈에 눈물이 글썽인다. 그전엔 그렇지 않았는데. “피는 매화꽃 보면서 봄놀이해라”라고 당부하고는 호비 앞으로 갔다. 범이 보다도 스킨 십을 더 좋아하는 호비, 내가 부산으로 돌아가려 짐 챙겨 나설 때에는 고개조차 들지 않는다. “발, 오른발, 왼발”을 서너 번 반복해야 고개를 떨군 채 겨우 내민다. 손을 철망 안으로 들이밀었더니 이것 봐라, 손바닥에 얼굴을 묻는다. 처음이다. 호비 눈에도 눈물이 글썽이는 것 같았다. 두 놈이 동시에 눈 글썽이는 티를 내는 건 처음이다.
호비한테도, “부랑쟁이 범이 앙탈 부릴 때 네가 의연해라. 새 날고 구름 흐르는 하늘 보면서 봄맞이해라. 또 오꾸마”라고 말할 때까지 파묻은 얼굴 들지 않는다.
할 수만 있다면 하지 않아야 하는 게 이별인 것 같다. 범이 호비와 나랑은 만날 때마다 이별한다. 돌아설 때 매번, “못 할 짓을 하고 있다”라는 생각이 든다. 윤형주의 노래, “미운 사람”의 시각이다.
“이제는 우리가 이별을 할 시간 아, 미운 사람.”
범이 호비 동시에 흘리는 눈물을 전화로 편에게 말했더니, “오늘 바람이 많이 불지 않았느냐?”라고 말한다.
맞는 것 같다. 편의 말에 동의했다. 바람 때문인 그들의 생리적 현상을 괜히 내가 정서적 현상으로 오인한 것 같았다. 돌아서서 언덕을 내려와 마을 어귀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