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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 영감

–바바리 품새와 군고구마 감동- 091229

by 로댄힐

이번 바바리코트는 내 생애 네 번째 바바리다. 원래는 ‘트렌치코트’라 부르는 것이 맞지만, 나는 예전부터 하던 대로 그냥 ‘바바리’ 혹은 ‘바바리코트’라 부르려 한다.


나의 바바리 역사를 돌아보면, 벨트가 달린 코트가 두 번, 벨트 없는 것이 한 번, 모두 세 벌이었다. 이번 것은 벨트가 달린 국방색 바바리다. 장가들 때 입었던 벨트 없는 그 바바리는 아직도 옷장 속에 있다. 이 글을 마치면 꺼내 입어볼 참이다.


편(아내)은 오래전부터 바바리 하나 장만하라며, 사줄 테니 꼭 입으라고 여러 번 권했다. 하지만 나는 매번 거절했다. 입으려면 편 자기가 입어야 하고, 사려면 내가 사줘야 한다는 고집 때문이었다. 게다가 부산은 비교적 겨울에 온화한지라 입을 일이 많지 않으니, 선뜻 받을 수가 없었다.


편이 이번에는 달랐다. 아예 백화점에서 전화했다. 일을 저질렀다고. 더 늙기 전에 한번 입어봐야 한다고, 이번 쎄울 행에는 바바리 걸치고 머플러 두르고 다녀와야 한다고, 카드 긁었으니 나와서 몸에 맞는지 걸쳐보라고, 그래서 좋은 말 할 때 지금 나오라고….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아예 백화점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일을 저질렀다”라고. “더 늙기 전에 한 번쯤은 멋을 부려봐야 한다”라며, 이번 “서울행에는 바바리에 머플러를 두르고 다녀오라”라고, 이미 카드 결제를 마쳤으니 “지금 바로 나와서 맞는지 입어보라”라고, “좋은 말할 때 퍼뜩 출발하라”라고 하는 단호한 음성…. 편이 기다리고 있는 백화점으로 곧바로 출발했다.


그렇게 얻게 된 바바리코트는 입자마자 따뜻하고 품새가 제법 났다. 그것을 걸치고 머플러를 두른 채 서울에도 다녀왔고, 탄일 밤 미사에도 입고 나갔다. 새 옷을 입었다는 기분이 이토록 들뜨고 포근할 줄은 몰랐다.


그 코트를 걸친 채 악양으로 내려온 것은 12월 25일, 크리스마스였다.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하는 날이지만, 산기슭의 ‘가족’인 범이와 호비도 챙겨야 했다. 지난 주말에 가지 못한 터라, 늦은 아침에 출발했다. 겨울 새벽과 밤의 운전은 조심해야 한다는 걸, 작년 겨울에 이미 배웠기 때문이다.


그날은 밭 구석에서 시간을 보냈다. 퇴비장 구획을 정하고 금을 그은 뒤, 그 선을 따라 돌을 놓았다. 밤에는 학사 행정과 관련된 일을 처리해야 했다. 그리고 서울 아이들 집에서 가져온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을 펼쳤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종주하며 겪는 자연과 인간의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담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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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처음엔 잘 읽히지 않았다. 낮 동안 일을 하고 밤에 읽으려니 집중이 되지 않았다. 완독은 훨씬 뒤의 일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커지는 달이 시리게 보인다. 사위는 더욱 조용했다. 앞 밭의 농막 굴뚝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모습이 참 정겨웠다. 작은 등을 켜고 책을 읽다가, 가끔 불을 끄고 커튼을 젖혀 밖을 내다봤다. 범이나 호비가 짖을 때면 더욱 그렇게 했다. 멀리 마을의 희미한 불빛들만이 겨울밤을 지키고 있었다.


그때 폰이 울렸다. 서울에서 다니는 앞 밭의 젊은 부부였다. 전화 후 두 내외가 군고구마를 들고 올라왔다. 이 깊은 밤에? 먼 길은 아니지만, 산기슭 길을 걸어 올라온 그 마음이 고마웠다. 멧돼지가 나타날 수도 있는 어둠 속 길인데도 말이다. 따끈따끈한 고구마를 건네받으며 느낀 손바닥의 온기가 겨울밤의 감동으로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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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리진 않았지만, 군고구마를 앞에 두고 껍질을 벗기다 문득 떠올랐다.


“함박눈이 쌓인 겨울밤이 깊어, 헤어졌던 친구들은 즐거운데 멀어진 추억…”


조용필의 노래 ‘겨울밤’이었다. 그 따뜻한 군고구마 감촉이 영감이 되어 떠올린 노래 ‘겨울밤’, 집으로 돌아온 뒤 ‘앙코르 악보’에다 멜로디를 옮겼다.


이 겨울은 내게 ‘군고구마의 겨울밤’, 그리고 ‘바바리 품새의 겨울’로 기억될 것이다. 따뜻한 온기와 작은 감동이 어우러진,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겨울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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