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410
주변의 나무들이 자꾸 베어진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길 양옆에는 제법 많은 나무들이 서 있었다. 주로 밤나무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양옆이 휑하다. 동편의 비탈을 관리하는 염소 영감님이 주로 나무를 베어내신다. 나무를 벨 때 물어보니, 늙어서 결실이 적기 때문이라 했다. 대신 그 자리에 새 나무, 젊은 나무를 심을 거라 하셨다.
하지만 베어진 늙은 밤나무 자리엔 아직 어떤 젊은 나무도 보이지 않는다. 염소 영감님은 밤나무뿐 아니라 큰 소나무, 고로쇠나무, 매실나무 등 다른 나무들도 부지런히 베어내신다.
서편의 차나무 사이에 서 있던 밤나무들도 대부분 사라졌다. 베는 장면을 직접 보진 못했지만, 얼마 전부터 서쪽이 유난히 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까이 가보니 베어진 밑동의 둥근 자국이 여러 개 남아 있었다. 차나무가 무성히 자라 있는 걸 보니, 그 자리에 새 나무를 심을 것 같지도 않다.
잘려나간 나무들은 이렇게 외쳤을지도 모른다.
“나 태어난 이 강산에 나무가 되어, 꽃 피고 눈 내리기를 어언 삼십 년!”
길뫼재 입구의 늙은 몇 그루는 아직도 서 있다. 마삭줄을 온몸에 두르고 버티는 나무 하나가 있는데, 그 나무만큼은 베어 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주인 박 영감님의 마음에도 자를 생각이 들지 않기를 바란다.
앵두꽃이 만개했다가 이제 막 떨어지기 시작했다. 도랑물 위에 꽃잎들이 덮이듯 흘러 도그 하우스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그 물은 두 녀석이 마시는 물이다. 그러니 범이와 호비 둘은 지금 앵두꽃잎이 섞인 물을 마시는 셈이다.
이제 그늘을 찾는 두 녀석을 보니, 봄이 완연하다. 밭일하다가 보니 내 이마에서도 땀이 제법 흐른다. 그런데 호비 밥그릇 안에서 이상한 뼛조각이 보였다. 집어서 보니 이빨이었다. 안쪽에 피가 묻은 걸 보니 방금 빠진 듯했다. 어금니였다. 다른 짐승의 것일 리 없으니, 호비의 이빨임이 분명했다.
벌써 이빨이 빠질 나이인가 싶어 입을 들여다보니, 정말 한쪽이 비어 있었다. 호비도 이제 늙어가는구나.
지난주에 사다 둔 세 종류의 주사약과 두 종류의 약, 주사는 일주일 간격으로 놓으라고 했는데 내가 주사를 놓아본 적이 없어서 K에게 부탁했다. 내가 녀석들을 붙잡고, K가 주사를 놓았는데 두 녀석 다 어찌나 난리를 치는지 겨우 끝낼 수 있었다. 범이는 덩치가 작아서 묶을 수 있었지만, 호비는 커서 소용이 없었다. 으르렁거리는 걸 달래 가며 간신히 마쳤다.
다음 날 아침, 주사를 맞고 약을 먹은 두 녀석은 훨씬 활기차고 털빛도 고왔다.
내가 말했다.
“이놈들아, 나도 늙고 니들도 늙어 꼬닥 꼬락 할 때까지 안 아프고 오래 살자고 주사 준 거 아니가. 그런데 왜 그리 발광을 했노. 앞으로는 내가 직접 놔줄 낀데, 또 발광하기만 해 봐라. 나도 늙고 니들도 늙는데, 우리 서로 의지하고 살아야지!”
범이, 호비와 함께한 세월이 벌써 4년째다.
복사꽃이 피었다. 작년에 심은 두 그루 중 아래쪽 바위 밭의 나무가 유난히 활짝 피었다. ‘거반도’라는 품종으로, 납작한 원반 모양의 복숭아가 열린다.
복사꽃, “복사꽃 능금꽃”의 그 복사꽃이다. 노목 매실나무 곁에 선, 젊은 복사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