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땔감 나무 놓을 자리

또 사닥다리 100729

by 로댄힐

끙끙대며 비벼대던 공굴의 일부가 마침내 제 쓰임을 찾았다. 그 자리가 겨울 난로에 쓸 땔감 나무 놓는 자리로 바뀐 것이다. 그동안 난로용 나무들은 이 구석 저 구석에 흩어져, 흙 위에 그대로 놓여 벌레들의 보금자리가 되기 일쑤였고, 풀이 우거져 올라 덮이면 걸려 넘어지기도 했다.


늘 “언젠가 한 곳에 모아 두어야지” 하면서도 미뤄왔던 일을 이번에야 비로소 손댔다. 궁리 끝에 그 자리를 시멘트로 단단히 포장하기로 한 것이다.


남이 보기엔 시원찮은 공굴일지 모른다. “발로 만들어도 더 반듯하게 하겠다”라는 소리를 들을 법도 하다. 그래도 내게는 없는 손재주를 쥐어짜고 기운을 모아 만든 작은 땀의 작품이다. 지금 이 일도, 그동안 해온 시멘트 작업들과 앞으로 이어질 작업들 속에 놓인 하나의 과정일 뿐이지만, 그 과정 속에 내 겨울의 그림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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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을 훔치며 문득 겨울을 생각했다. 데크 한쪽에 난로를 놓고, 구불구불 올라가는 연통의 연기를 바라보는 일. 난로 위에서 끓어오를 주전자, 은근히 익어갈 고구마의 향. 그런 상상을 하다 보니 매미가 울고 있는 한여름의 더위가 조금은 멀어지는 듯했다. 지금 하는 이 노동이 겨울의 따뜻함을 미리 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괜히 마음이 흐뭇해졌다.


일을 마치고는 영화 ‘고백’의 주제 음악을 색소폰 악보로 찾아보았다. 한때 즐겨 본 영화인데, 알고 보니 원제가 The Sandpiper, 도요새였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처드 버튼의 얼굴은 또렷이 떠오르는데, 찰스 브론슨이 출연했다는 사실은 이번에야 알았다. 영화를 보면서도 그를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어느 장면에 있었을까. 반면 정숙한 부인 역의 에바 마리 세인트의 이미지는 지금도 선명하다. 잊히지 않는 얼굴이 따로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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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으로 다져 둔 시멘트 자리 위로, 언젠가 겨울 냄새가 차오를 것이다. 그렇게 한 계절을 미리 당겨 와 가만히 놓아두는 일, 그것이 오늘 내가 한 일의 전부였고, 어쩌면 충분한 일이었다.



매실이 영글기 전에 사두었던 사닥다리가 아직도 매실 밭에 서 있다.


한 번도 그걸 타고 내려가 본 기억은 없다. 사닥다리라는 것은 늘 올라가기 위해 놓는 것이다. 지붕에 올라서야 할 때, 손이 닿지 않는 가지를 치고자 할 때, 비로소 사닥다리가 제 쓰임을 찾는다.


예전에 초가지붕 위의 박을 딸 때, 혹은 차던 제기가 지붕 위로 올라가 버렸을 때 사닥다리를 놓고 올라간 적이 있다. 유소년 시절 우리 집은 과수원이었으니까 큰 감나무나 밤나무에도 기대어 두었을 법한데 그런 장면은 또 이상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물론 사닥다리는 타고 올라갔으면 당연히 그걸 밟고 다시 내려온다. 그러니 위의 ‘한 번도 그걸 타고 내려가 본 기억은 없다’라는 말은 반드시 맞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언덕 같은 곳에서 아래로 ‘내려가기 위해’ 사닥다리를 놓았던 기억은 좀처럼 없다. 내려가는 일은 늘 자연스럽고, 굳이 도구가 필요한 일이 아니었던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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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닥다리를 ‘타고 내려간’ 경험이 아주 없진 않다. 점심값이나 아이스크림을 걸고 하던 ‘사다리 타기’ 놀이에서는 늘 손가락이 사다리 줄기를 타고 내려갔다. 끝에 동그라미가 걸려 있으면 잘 탄 사다리였고, 액수가 클수록 미끄러져 버린 사다리이기도 했다. 그런 사다리 타기도 이제는 꽤 먼일이 되어 버렸다.


지지난해 데크를 만들 때는 직접 나무 사닥다리를 만들어 썼다. 그 사닥다리는 지금도 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과수를 손질하기엔 역부족이다. 우리 나무들이 이제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높이까지 자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먹고 양면 사닥다리를 하나 들였다. 손이 자주 갈 튼튼한 물건 하나쯤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사닥다리’라는 말을 굳이 고집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이것이 더 바른말 같고, 또 ‘사닥’이라는 소리가 주는 단단함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사닥다리는 내 발을 받쳐주는 도구다. 내 몸의 무게를 온전히 맡기며 올라서는 순간, 다른 어떤 도구보다도 몸에 밀착되는 사물이다. 손때가 배도록 오래 쓰게 된다면, 나의 이 산기슭 생활에도 자연스레 연륜이 쌓여갈 것이다.


사닥다리를 세워두고 바라보고 있으니 문득 내 가족이 생각났다. 나는 편과 아이들에게 과연 가볍고 튼튼한 사닥다리 같은 존재였을까. 밟히면서도 묵묵히 버티는, 기댈 수 있는 뭔가가 되었을까.


사닥다리 앞에 선 나는 잠시 그 질문에 멈춰 서서, 조용히 지난날을 되짚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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