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꽉 차있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아침부터 잘 때까지
해야 할 것이나 벌려놓은 일들을
하나씩 해결하다 보면
하루가 끝나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날들은 꽉 차있다 못해
흘러넘쳐서 목이 꽉 막히는 것 같기도 했다.
틈을 만들어볼까,
억지로 정말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만들어 두면
자꾸 라면이랑 콜라만 먹어서
점점 집에 있는 게 불편해졌다.
친하게 지내던 지인에게
같이 술을 마시다가 솔직하게 말했다.
혼자서 집에 있는 게 불편하다고.
생각해 보면 우스운 말이었다.
Home, sweet home.
편안하고 안락하여
쉴만한 곳이 되는 집이,
그것도 혼자 있는 게 불편하다니.
'집'이라는 글자와 '불편'이라는 글자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사실이었다.
그 말을 들은 지인이 말했다.
"너, 왜 그래.
너보고 그렇게 아등바등 살라고 얘기한 사람 아무도 없어.
네가 그렇게 만드는 거야. 네가."
맞았다.
계획을 세운 것도 나였고
그렇게 살라고 몰아붙이는 사람도 나였다.
내가 만든 강박이고 불안이었다.
물론 쉬지 못하는 부분은
좋게 말하면 성실하다고 볼 수 있기에
살면서 득을 본 적도 많다.
어릴 때부터 공부는 곧잘 했고
어디에 가서 일 못한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다.
"참, 철이 일찍 들었네."
"선생님은 장녀 같아요."
"요즘 젊은 사람 같지가 않아."
어릴 때부터 애어른 같다는 말을 듣다가
커서는 책임감이 강하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도 내 인생을 책임지면서 살아왔으니까.
부모님께서 늘 인생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오셨지만
홀어머니를 모시고 삼 남매를 키우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금의 부모님은 너희를 키웠던 시절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했다고 하시지만
어린 내가 보기엔 모든 것이 고단해 보였다.
어릴 때 책 보는 걸 너무 좋아해서
밤에도 방 안으로 희미하게 비치는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책을 읽곤 했다.
물론 책을 살 형편도 아니었고
책을 여러 권 가져와도 둘 곳이 없었다.
그러니 친구 집에 놀러만 가면
눈치 없이 친구 책을 정신없이 보던 아이가 되었다.
애매하게 욕심만 많아서
초등학교 때부터 장판 아래에
형제들 몰래 모았던 세뱃돈을 가져다가
고3 때 대입 논술 일주일 치 학원비를 댔다.
대학교 때도 지낼 곳이 없어지게 되어
아등바등 국가지원 제도를 찾아냈다.
너무 추워서
우리 집 별명이 '겨울왕국'이긴 했지만
결국 집을 구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직장인이 되고 나서도,
부모가 되고 나서도,
한 번도 누군가에게
기대서 살겠다 생각도 한 적이 없었다.
기대고 싶지도 않았고
막상 기댈 곳도 없었다.
생각해 보면 요 몇 년간
언제나 넘어질 준비를 했던 것 같다.
책을 보고 주변을 둘러보니
언제 어느 때건
갑자기 넘어질 수 있는 게 인생이었다.
막상 내가 넘어지고 나서
일어나려고 하면
잡고 일어날 것이 없었다.
그나마 딛고 일어날 것은
그래도 지금까지 내 힘으로 살아왔다는 자존심,
앞으로도 어떻게든 살아낼 수 있겠다는 책임감이었다.
그러니 쉴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 모든 아등바등했던 나날들은
‘혼자라도 해내야 한다’는
나와의 오래된 약속 때문이었다.
이제는 그 약속을
스스로에게 다그치지 않으려 한다.
아등바등하던 내가 있기에
지금의 내가 서 있지만,
조금 다른 삶을 배워야 할 때다.
넘어져 있어도 괜찮다고,
기댈 수 있어도 괜찮다고,
내 안의 불씨가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