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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난 채로 단단히 선다

by 뇽쌤

어릴 때 학교에서

매일 듣고 목이 터져라 부르던 노래가 있었다.


바로 가수 화이트의 <네모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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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생이라면

다들 이 노래 학교에서 불러봤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린이였던 그 시절을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선생님들 사이에서

플래시로 노래 부르기가 유행했던 것 같다.


그렇게 목이 터져라 불러댔던 탓인지,

아직도 멜로디가 나오면

흥얼흥얼 노래를 부를 수 있을 수준인데,

제일 기억에 남는 가사가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네모난 것들뿐인데

우린 언제나 듣지
잘난 어른의 멋진 이 말

세상은 둥글게 살아야 해.

지구본을 보면 우리 사는 지군 둥근데
근데 부속품들은
왜 다 온통 네모난 건지 몰라

화이트 <네모의 꿈>


커서 다시 들어보니

세상은 둥글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은근히 비꼬고 있는 가사다.


내가 20대 때만 하더라도

왜 좋은 말을 이렇게 비꼴까, 하고 생각했다.


둥글게 산다는 말이 뭐가 나쁠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어디에서도 잘 지내는 둥근 사람이 되고 싶기도 했다.


그런 맘을 가지고 있었기에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도

가장 먼저 애썼던 건

직장에서 모든 사람들과 다 원만하게 지내는 것이었다.


회식 자리에도 빠짐없이 모두 참석하고

회식의 모든 좌석을 돌며

모든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았었다.


직장에 들어가자마자

첫 회식 때부터 테이블을 돌면서 잔을 받았으니...


생각해 보면 만나는 모든 대상에게

둥글둥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었다.


어딜 가서도 잘 맞추고

잘 섞이고, 잘 지낼 수 있는 사람말이다.



돌아서 생각해보면

내가 둥글둥글 어디에서도 봐도

매끈하고 좋은, 그리고 괜찮은 사람이 되겠다고 해서

이렇게 열심히, 오랫동안

길을 돌아왔던 게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

그리고 스스로의 이야기를 듣기 보다는

모든 사람들이 말하는 것들을

다 귀담아 듣고 그 안에서 우왕좌왕해왔다.


모든 사람이 좋아보이고

내가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처럼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모든 것들이 다 좋아보였다.


그리고 그 둥글둥글한 모든 게

다 '보통'인 줄 알았다.


그 정도는 해야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보통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요즘에는 모난 구석이 있더라도

자기만의 모양과 색깔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둥글둥글한 사람은

어떻게 보면 자기만의 색깔이 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오히려 둥그러워 매끄러우니

작은 바람이나 주변 변화에 따라

이곳저곳에 굴러다니며 상처 입기가 쉬웠다.



모난 구석이 있더라도

자기만의 모양과 색깔이 있는 사람이 되려 노력하고 있다.



만나는 사람들도

분명 각자의 모양과 색깔로

자신만의 자리에 자리 잡으며 살고 있을 거였다.



그런 생각이 마음속에 서니

이제는 직장동료나 일로 만나는 사이에서

'제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떤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어요' 라고

밝히는 걸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제 색깔은 이것이고,
저는 이렇게 각지고, 어딘가는 둥글고,
또 어딘가는 뾰족하기도 해요.

이런 모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 당신은 나와 다를 거고,
그런 당신의 모양과 색깔도 존중합니다.




네모의 꿈의 가사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둥글지만,

그 안에 있는 부속품도 네모난 모양이다.


그러니 사람들도 조금은 각져도 되지 않겠는가.


조금은 모나게,

모난 구석으로 자기 자리에서 단단히 버티며

그렇게 살아가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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