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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이 제일 싫은데, 그래서 제일 먼저 한다

by 뇽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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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리릭 삐리릭-

6시 알람음입니다. 혹시나 옆에 있는 꼬마가 깰까 누구보다 빠르게 알람을 끕니다. 알람 켜는 건 눈을 부릅뜨고 맞췄는데, 끄는 건 이불 속에서 몸통은 1cm도 움직이지 않은 채로, 핸드폰을 더듬거리지도 않고 바로 끌 수 있습니다. 끄는 건 어찌나 쉬운지요. 눈 감고도 끈다는 말은 지루하기까지 합니다.

일단 생각을 할 수 있으니 눈은 한 번 떠봅니다. 천장 벽지의 보일듯 말듯한 결을 눈으로 만지면서 다시 눈을 감을까, 끈끈이주걱 같은 이불 속에서 일어나야 하나 고민합니다. 아, 왜 아침마다 이런 고민에 휩싸일까요. 눈을 질끈 감고 나니 꺼먼 시야에도 천장의 결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내가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아침에 운동을 하겠다고 하나, 며칠 째 이어지는 아침 운동에 한탄을 늘어놓습니다. 분명히 어젯밤에는 호쾌하게 아침 운동을 하고 출근하겠다고 다짐했던 그 마음은 온데간데 없습니다. 이 과정이 매일 밤과 아침마다 이어집니다. 극과 극을 오가는 마음을 보면 밤과 아침 사이, 도대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요. 다른 의미의 미라클 나이트와 미라클 모닝이 따로 없습니다.

삐리릭 삐리릭-

어? 6시 5분 알람이 울렸습니다. 잠깐 투덜거리는 사이에 5분이 지났다고요? 믿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깜빡 졸았던 게 아닌가요? 어쩌거나 저쩌거나 잠을 자고 있는 5살 꼬마가 깨면 운동을 하거나 더 자거나 하는 선택지 자체가 날라갑니다. 이도 저도 아니게 되는 거죠.

이미 내 체온에 딱 맞게 뎁혀져서 마치 한 몸처럼 느껴지는 이불 속에서 일어나게 된다면 할 일을 상상해봅니다. 저혈압이 있어서 좀비처럼 어기적거리며 운동 옷으로 갈아입을 테죠. 냉수를 가득 채운 물통과 운동 신발이랑 가방을 들고 뻐근한 목을 돌리며 엘리베이터를 탈 겁니다. 아. 여기까지 생각하느니 그냥 그대로 행동만 하면 될 거 같은데, 왜 아직도 한 몸 같은 이불 속에 있을까요.

다들 그런 거 하나씩 있으시죠? 진짜 진짜 하기 귀찮고 싫은 것. 사실 저한테는 그게 운동이거든요.

왜 인간은 뛰어야 하는 존재로 아직까지 진화가 덜 된 걸까요? 재빠르게 뛰어야 살아남았던 건 원시시대잖아요. 이 정도 시간이 흘렀으면 위험하지 않으니 운동을 안 해도 되고 마라탕이든, 바닐라라떼든, 로제떡볶이든, 고칼로리 음식을 적당히 소화시키면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진화가 되어야 했던 거 아닐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너무 일찍 태어난 거 같아요. 최적화로 진화되고 태어났어야 했는데.

이런 제가 일주일에 운동을 3-4번은 하는 사람이라는 게 기적이고, 이 생각을 운동 할 때마다 한다는 게 또 기적입니다.

6시 10분 알람이 울리기 전에 슬금슬금 몸을 움직입니다. 사실 계산적인 행동과 시간이랍니다. 6시 10분이 지나면 운동하기 애매해지는 시간이 되거든요. 마지노선 시간이 될 때까지 침대에서 버틴 겁니다. 왜 그랬냐고요? 음. 하늘에 해와 달이 왜 있냐는 질문을 받는 것 같네요. 저도 이유를 잘 모르고 때 되면 밥 먹는 거랑 비슷한 느낌이라서요.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운동을 나간 건 그만큼 운동을 싫어해서예요. 운동처럼 아주 중요하지만 불편한 일들은 되도록 아침에 해버리고 나면 그 날 하루가 여유 있고 넉넉해집니다.

해야 하지만 하기 싫은 일.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일.

나에게 중요하게 여겨지는 일.

이런 것들을 끌어 모아 되도록 아침에 합니다. 그래서 아침이 바빠요. 운동하고 글도 써둡니다. 블로그나 다른 웹사이트에 글도 올려둡니다. 짬이 나면 책도 읽습니다.

운동이나 글쓰기나 독서나 매일 하다 보면 불편하다 못해 지루한 일처럼 느껴지는 날이 있습니다. 얼마나 잘 살아보겠다고 내가 이러고 있나, 한숨도 나오고요. 그럴 땐 습관처럼 미룰 수 있는 때까지 미뤄버리기도 합니다. 오늘 아침처럼요.

할 일을 미루다 미루다 밤 11시까지 미룬 적이 있어요. 또 더 자주는 미루다 못해 그냥 안 한 적도 많죠. 그런 날은 하루 종일 마음이 잔잔하게 불편합니다.

"아, 해야 하는데...", "이따가 꼭 해야지."

목구멍에 걸린 작은 생선가시처럼 까슬한 생각들입니다. 몇 해를 반복하다 보니 알게 됐습니다. 해야 하지만 귀찮은 일, 나한테 중요한 일은 아침에 해버려야 하루가 편하다는 걸요.

미루는 사람의 삶은 잔잔하게 불행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나에게 중요한 일들, 나에게 도움될 일들을 핑계대지 않고 제일 먼저 해내는 것. 제가 터득한 그날을 평안하게 지내는 비밀이에요.

물론 오늘도 저는 끈끈이주걱 같은 이불에서 한참을 버티다 겨우 일어났습니다. 그래도 결국 일어난 걸 보면, 아직 포기하지 않은 거겠죠. 내일 아침에도 분명 다시 실랑이를 벌일 겁니다. 알람을 끄고, 이불에 말려들고, 5분만 더 하다가 10분을 보내고요. 하지만 그 과정 끝에 또 일어나겠지요.

오늘도 툴툴거리다 마지막에 다짐합니다. 불편하지만 중요한 일을 제일 먼저 해내는 사람이 되자. 비밀도, 기적도 따로 없더군요. 그냥 내일 아침 6시에도 또 한 번 이불과 씨름하다가 6시 15분쯤 일어나면 되는 거겠죠. 원래 알람이랑 세 번쯤은 싸워줘야 하루가 제대로 시작된 느낌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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