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여행 중에는 힘든 순간이 더 많았다. 여행을 시작하고 3개월쯤부터는 늘 쉬고 싶었고, 누워있고 싶었다. 여행 초반처럼 도전적이지 못한 스스로가 늘 아쉬웠다. 그렇게 몇개월을 버티다가 한국에 돌아온 후, 배낭여행을 처음 계획할 때 써내려갔던 소망을 읽고 놀랐다.
최선을 다해 여행하지는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생각했던 여행의 소망은 모두 이뤘던 것이었다. 중간중간 많이 힘들고 흔들리긴 했어도, 결국은 내 마음을 따라가고 있었다는 것이 참 뭉클했다.
2024년 12월 17일, 나는 여행을 시작했다. 그 즈음 남겨두었던 메모를 들춰보면, ‘혹시 아무런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돌아오면 어쩌지’ 하는 불안이 곳곳에 묻어난다. 그 시기의 나는 많이 흔들리고 있었다. 회사에 있을 땐 분명했던 퇴사에 대한 확신이, 퇴사 후엔 자꾸만 흐릿해졌다. ‘내가 왜 퇴사했지?’ ‘왜 세계여행을 떠나려 했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어서 퇴사했건만, 막상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 정작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었다.
선택지는 너무 많았고, 그 속에서 나는 아무것도 고르지 못한 채 멈춰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길은 뭘까?’ 그 해답을 찾고 싶었지만, 도무지 방향이 보이지 않았다. 개미지옥 같은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여행 계획도 제대로 세우지 못한 채 ‘프라하 크리스마스 마켓’만 생각하고 1달 뒤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티켓을 끊는 순간, 갈팡질팡하던 머리가 겨우 한 점에 초점을 맞췄고, 멈췄던 생각과 몸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불안하고 혼란스러웠기에, 이 세계여행에서 무언가를 얻고 오기를 바랐다. 나를 더 잘 알게 되기를. 가슴 뛰는 일을 찾게 되기를. 조금 더 단단해지기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발견하게 되기를. 그래서 여행 초반엔, 스쳐가는 생각 하나조차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혹시라도 중요한 깨달음을 흘려보낼까봐, 불안한 마음으로 모든 생각을 메모했다. 그 불안함은, 2023년 12월 26일. 단 하루 동안 내가 적어둔 10개의 메모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얻은 것은 많다.
폭식이 사라졌다.
완벽주의를 내려놨다. 결과만을 중요시하던 내가, 과정을 즐기는 법을 익혔다.
내 현실이 문제투성이라도 감사해 하고, 마음에 여유를 갖는 법을 익혔다.
성공과 인정을 좇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나도 그렇게 살아도 괜찮다고, 마음의 안심을 느꼈다.
얻지 못한 것도 있었다.
여전히 가슴 뛰는 일이 뭔지 모르겠다.
여전히 어떤 형태의 삶을 살고 싶은지 모르겠다.
사실 귀국 며칠 전, 가슴 뛰는 일이 여전히 뭔지 모르겠다는 이유로 정말 스트레스 많이 받았다.
여전히 나는 나약하고 흔들린다.
“여행을 통해 난 달라졌어”는 기분에 따라 매번 결론이 바뀐다.
그럼에도 누군가 이렇게 말해줬다. 그 시간 동안 즐거웠으면, 그걸로 된 거라고.
확실한 건, 나는 늘 궁금했던 자연경관을 직접 봤다. 모래 사막, 이과수 폭포, 우유니 사막, 빙하.
서로 다른 국적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 새로운 삶을 직접 체험해봤다.
6개월 동안 울음이 터질 만큼 힘든 날도, 벅차오를 만큼 행복한 날도 있었다.
진한 감정과 생각을 한가득 느낀 6개월이었다.
현실적으로 보면 나는 6개월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확신에 찬 그 다음 방향도 없고, 수입도 안정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6개월 동안 진하게 느낀 감정과, 내 세계 바깥에서 마주한 낯선 경험들은 내 자아를 새롭게 이뤘다.
더 알록달록하고 넓어진 자아로 나는 똑같은 현실을 다르게 살아갈 것이다.
오늘은 기분이 좋아서인지, 앞으로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