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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 sunrise

비포선라이즈

    

팀장이 되자 회사에서 회사 돈으로 대학원을 보내준단다. 시험을 봐야 하고 이수해야 하는 교과목도 있고 그 과정 속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선 회사에서 적당한 위치, 적당한 평가, 적당한 의지가 필수조건이었다. 적당함과 의욕을 적절하게 뒤섞으면 꽤 무난한 직장생활이 가능했다. 퇴근 후 어둑한 시간에 양복을 입은 직장인들이 모여 수업을 들었다. 피곤함에 안경아래쪽으로 손을 넣어 지그시 눈을 누르는데 그 순간 교수님 입에서 ‘보라’라는 이야기가 불쑥 튀어나왔다.

“보라색은 영적인 색을 의미하는데 상상력을 자극하고 영적인 영감을 주는 색이라~~~~”

보라색의 보라를 듣고도 흠칫 놀라는 내 모습이 누군가에게 들켰을까 봐 주변을 자연스럽게 살펴봤다. 마음을 들켜버리는 건 언제나 찝찝한 일이다. 머쓱해진 나는 괜히 혼자 샐쭉해져는 삐딱 선을 타고 교수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토를 달았다. 겉으로 질문 하나 못하는 자식이 아무리 속으로 반항해 봤자 그건 호기가 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어쩌겠는가. 난 이런 인간인 것을. 무난하게 살아가려면 (살아남으려면) 마음을 숨기고 때론 용기도 숨겨야 한다.

셀 수도 없을 것만 같은 양의 세포로 빚어진 사람을 어떻게 색으로 케이크 자르듯 규정할 수 있는가. 불가능하다. XX, XY이라는 과학적인 접근으로 아무리 남자 여자를 구분해 봤자 그 속에서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세상일이라는 것이 늘 존재하는 게 인생이었다. 혈액형으로 ‘넌 혈액형 때문에 소심하다, 즉흥적이다.’라는 말을 주고받아봤자 내 피의 성격과 기질은 죽을 때까지 확인 불가능한 미지의 것이었다. 좋아하는 색이나 꽃으로 상황을 온전히 설명하는 것은 갈라진 논바닥을 보고 곧 지진이 올 것이라 예견하는 것과 매한가지 아닐까 싶었다. 

그러고는 생각했다.

‘보라색은 영적인 색이.... 보라는 신기한 아이 었지.. 보라는 잘 흘러가고 있겠지.’ 




그녀는 이적의 비포선라이즈 노래를 좋아했다. 세상 비포선라이즈는 다 좋다고 했다. 

실 끝 하나로 커다란 외툴 풀어내듯...

이 부분을 들을 때마다 온몸에 털이 솟는다며 세상에서 가장 야한 노래가 이 노래라고 장난스러운 웃음을 짓곤 했고 에단호크와 줄리델피의 운명적인 만남도 미칠 듯 가슴 뛰게 한다고 말했다. 

“ 나와 함께 비엔나에 내려요. 꺄악~~~ 그럴 용기 있어 너?”

그때마다 보라의 표정을 바라보며 말해야만 했다. 

“... 영화다 그건... 영화.”

그녀의 이름은 김보라.

보라는 나와 5년 동안 연애했다. 회사에 입사해 우연히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적령기라는 시기를 온전히 연애로 채운 우리들은 연애 길면 헤어진다는 주변사람의 말처럼 그렇게 헤어졌다. 정확하게 헤어질 이유도 없었고 서로가 싫어진 것도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그렇게 헤어졌다. 20대의 연애가 아니었지만 더 깊거나 더 조심스럽지도 않았다. 간혹 농담 삼아 ‘우리 그냥 확 결혼해 버릴까?’ 이야기가 나오긴 했지만 둘 다 결혼을 생각하며 진지하게 묻는 질문은 아니었다. 편안하게 긴 시간 연애하는데 우리의 무난함은 꽤나 쓸모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집착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들들 볶는 주변 친구들과 비교해 봤을 때 확실히 보라는 무던했다. 나에게 큰 관심이 없었고 잘 토라지지 않았고 뭐든 함께하려고 하지 않았고 각자의 시간이 늘 필요하다는 친구였다. 노래가사나 영화 이야기를 정신없이 떠들어대며 알 수 없는 오묘한 표정을 지을 때가 있었는데 그때는 보라가 남몰래 작사를 하고 있을 때었다. 계절을 타거나. 설렘으로 시작해 사랑을 나누고 그 사랑이 유지되면 누구나 편안해지고 그 편안함이 권태가 되고 그 권태가 또 다른 두근거림을 찾아가는 삶의 순리를 우리 역시 모르지는 않았지만 때론 가족 같은 무덤덤함이, 부부 같은 무관심함이 우리를 살리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보라는 진짜마음은 잘 이야기하지 않지만 순간적으로 드러나는 감정 선들은 순수한 어린아이처럼 다 보이곤 했다. 깔깔깔 입을 가리지 않고 웃고, 울 때도 얼굴을 손으로 가린 적이 없다. 화가 나면 미간에 내 천자가 생겼다. 기분이 안 좋아도 얼굴에 바로 티가 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둘 사이가 삐걱거리지는 않았다. 간당간당한 선을 잘 지켰을지도 모르고 보라가 전적으로 감정을 타인에게 전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내가 그녀에게 차갑거나 무덤덤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 얼굴 근육들 다 굳겠다. 오빤 좀 웃어 울던가 아님 화를 내던가.”

늘 무표정하다는 나를 보며 보라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바로 얼굴 근육 좀 써.. 이거였다.

헬스장에서 운동이라도 하면서 얼굴이라는 부위에 근육을 불릴 수도 없는 일이고 어디 어떤 근육을 움직여야 되는지도 모르겠는 나에게는 “웃어라.”가 가장 어렵고 난해한 말이었다. 

왜냐, 이래 봬도 난 늘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웃고 있는데.. 나 즐거운데.. 나 지금 행복한데?’ 같은 대답들이 가끔 우리 사이를 서먹하게 만들기도 했다. 

“오빤 감동을 몰라.”

난 감동을 안다. 난 감정이 감성이 넘치는 사람이다. 난 따뜻한 사람이라고 10년을 이야기했고 그녀는 나에게 10년을 말했다. 

넌 감동을 모른다고. 넌 표정이 없다고.

그녀는 모른다. 노래가사는 가사 일뿐이라는 것을. 드라마 속 남자주인공은 연기자일 뿐이라는 것을. 영화 속 운명 같은 상황은 영화이기에 가능한 것뿐이라는 것을. 책 속 따뜻한 한 구절이 마음을 울린다고 해서 행위가 동반된 시간은 아니라는 것을. 즉 잘 포장된 감동이라는 단어에 홀랑 마음이 빼앗겨 눈물을 흘리는 것은 내 몸속 귀하디 귀한 소중한 염분 몇 그람을 소비하는 허튼짓이라는 것을 죽어도 모를 것이다. 그놈의 감성이, 눈물이, 감각이, 느낌이, 감동이, 밥을 먹여주지는 않는다. 

살아남으려면 돈을 벌어야 한다. 돈을 벌려면 일을 해야 하고 일을 하려면 취업을 해야 하고 취업을 하려면 자격증이든 뭐든 이력서에 채워 넣을 뭔가를 위해 욕 나오게 내달려야 하고 청춘은 그런 것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노! 아파서도 안 된다. 아플 시간이 어디 있는가. 담담해야 한다. 체념해야 청춘이다. 담담하게 견뎌야 청춘이다. 담담하게.. 인정해야만 한다. 





내가 그녀와 처음 만난 건 대학로 어느 골목이었다. 갓 입사한 신입사원은 주는 술을 다 받아먹어야 하고 눈치껏 술을 대령해야 하고 빠르게 움직여서 필요한 것들을 갖다 바쳐야 한다. 물론 누구 하나 그렇게 기라고 시킨 적은 없다. 알아서 기는 것이 당연한 순리였고 관례였기 때문에 나 역시 그렇게 하는 것이었을 뿐이었다. 군대와 똑같았다. 하라면 하는 거고 대들면 맞지는 않지만 교묘하게 고과에 반영되어 월급에 지장이 있다거나 때론 소리 소문 없이 부서가 바뀌고 좌천되거나.. 갓 입사한 신입사원에게 가장 필요한 건 포부가 아니라 눈치였다. 맞다. 이 회사를 들어가기 위해 내가 얼마나 인터넷을 뒤지며 정보를 외웠었던가. 사실 관심 하나 없는 회사의 비전부터 시작해서 홈페이지 속 연혁들을 모조리 외우며 그때도 생각했었다. ‘이것이 진정 중요한 것이란 말인가.’ 그럴듯한 고전을 필사하는 것도 아니고 회사 비전과 연혁을 필사하며 외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이 시간의 쓰임이 얼마나 허무하게 느껴질 수 있는지. 나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몸부림치고 싶지만 고작 할 수 있는 게 조용한 도서관에 앉아 엉덩이를 붙이고 자기소개서를 쓰고 볼펜을 끝없이 끄적거리는 행위일 수밖에 없다는 걸 말이다. 

면접에서 어떤 것을 질문할지 모른다. 당황하지 않기 위해서는 준비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것도 모조리 준비하는 철저한 준비성이 필요했다. 정말 마지막 면접까지 간신히 살아남은 나는 회사의 비전을 아느냐는 사장님의 질문에 호흡을 고르며 대답했다. 나는 지금도 믿고 있다. 그 비전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고 그래서 내가 뽑혔고 그래서 내가 가장 먼저 힘 있는 부서에 배치가 됐고 그래서 내가 회식자리에 늘 불려 가는 사람이라고.

면접장에서 얼마나 고개를 조아렸던가. 오글거리는 나의 장점을 쥐어짜고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던 봉사활동 추억들을 그럴듯하게 스토리텔링하며 그들의 표정을 얼마나 살폈었던가. 

나는 때론 회식인지 극기 훈련인지 모호한 기분이 들면서도 때로 회식자리에서 갑은 나라는 묘한 쾌감도 있었다. 상사는 술이 취하면 개가 됐고, 개가 되는 줄은 본인만 몰랐으며, 그랬기 때문에 쭉 개였지만 다음날 아무렇지 않은 척 자기는 절대 개가 아닌 척, 개었던 적이 없었던 것 마냥 잘 다려진 정장을 입고 출근하는 모습을 혼자 그윽하게 바라보는 일. 

그들에게 업무적인 능력을 관찰할 특권이 주어졌다면 나에게는 그들만 모르는 인간적인 면을 제대로 관찰할 수 있는 관찰자로서의 특권이 주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관찰자는 나라고. 아랫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조용한 일탈이자 반항이자, 힘일 수도 있었다. 그래도 덤덤하게 버텨서 바늘구멍을 뚫고 이 자리에 들어올 수 있었고 이 신입사원자리도 곧 과장으로 팀장으로 달라질 것이라는 현실이 그나마 날 버티게 해주고 있었다. ‘나도 저 팀장자리에 가면..’이라는 가능성의 가정법과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 누군가 만날 때 자신 있게 내밀 수 있는 회사로고가 박힌 명함이 그래도 나에게 에너지를 부여해 주는 영양제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그날도 팀 회식이 있었다. 회사가 대학로에 위치한 건 아니었지만 지하철로 이동도 가깝고 택시로도 부담 없는 거리이며 무엇보다 청춘의 기를 받아야 한다는 팀장님의 주장에 누구 하나 토 달지 않았다. 우린 고기가 먹고 싶지만 때론 생선을 먹어야 했고 우리는 밥을 먹고 싶었지만 때론 배부르면 술을 못 먹는다는 말과 함께 술‘만’ 먹어야 했다. 

어김없이 주는 술 다 받아먹고 술 만들고 술 돌리고 결국 맥주 소주 폭탄주 할 것 없이 진탕 마시고 고꾸라져 넘어오는 오바이트를 가까스로 막아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을 때 다른 날과 다르게 기분이 좋았다. 정신없이 움직이며 비위를 맞추는 얍삽한 내가 싫지 않았고 너무 많이 먹어 셔츠 단추 사이로 살색 살이 다 보이는 과장님의 모습도 그날만은 볼만했다. 폭탄주의 비율도 예술이었다. 몽롱한 마치 보라색의 밤 같았다.

그렇게 늦지 않은 여름 저녁 대학로는 연인으로, 가족으로 때로는 고요한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축제 같은 분위기였다. 연극연습을 막 끝낸 단원들의 파이팅 소리가 연인들의 웃음소리가 뒤섞인 여러 음악소리가 술맛을 당겼다. 그래서 결국 술이 사람을 마시는 지경이 되어 간신히 몸을 질질 끌고 난간을 잡은 후 펌프질 시동을 걸었다. 곧바로 뿜어져 나오지 못하고 위와 식도 사이를 오가는 액체는 술이 취했다고 무감각해지는 일이 아니었다. 

나의 오바이트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던 버스킹 소리와 어우러져 합주곡처럼 느껴지던 그 순간 그 음악에 힘입어 나는 덜 거북스럽게, 덜 힘들게, 덜 지저분하게 일 처리를 할 수 있었다. 

6년 전 초가을 시원한 바람과 건조한 느낌이 뒤섞인 깜깜한 저녁기운이 유난히 더 내 세포에 화석처럼 남아있는 까닭은 그녀 때문, 아니 그날 밤, 술이 완벽하게 달았고 온몸의 내장도 내가 어떻게 손 쓸 수 없었지만 음악소리에 우웩 우웩 박자를 맞추며 힘을 짜내고 고개를 앞으로 숙이는 내 모습이 퍽이나 인상 깊게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그날은 대학로의 축제, 오바이트의 축제, 그녀와 내가 만난 날. 축제였다.




또각또각. 분명 이 정도의 경쾌한 소리라면 웨지 힐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봐도 투박한 통굽은 예뻐 보이지 않는다. 소리도 둔탁했고 아무리 예쁜 사람이 신어도 나막신 같은 느낌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대학동기들과 만나 이런 구두예찬을 떠들어대면 여자동기들은 눈에 쌍심지를 켜고 꼭 뭣도 아닌 것들이 여자 외모평가 옷 평가 한다면서 나를 세상 변태 같은 사람으로 몰아갔고 그런 취급을 웃고 넘기면서도 그런 생각을 접을 수 없는 이유는 그 경쾌한 소리 때문이었다.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괜히 기분 좋은 소리. 또각또각. 이 소리는 적어도 9센티 미터정도 되는 킬 힐이 바닥과 만났을 때 나는 진동소리다. 동기들 말처럼 여자를 외모로 평가하는 놈은 절대 아니었지만(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높은 킬 힐을 신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자들이 경이로울 때가 있었고 발이 아프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때도 있었고 때론 저 가구 같은 것을 발에 달고 종일 걸음을 걷는 그녀들의 부지런함과 미적추구권은 마땅히 칭찬받아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부르짖을 때도 있었다. 

낮은 굽이 표면과 만날 때 내는 소리는 높은 힐의 소리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느낌이 달랐고 소리가 달랐으며 느껴지는 감정이 달랐다. 무심결에 높은 구두를 신은 여자들을 흘끗 보며 이런 잡다한 생각을 하다 보라와 눈이 마주치면 보라는 씩 웃었다.

“ 좋아?”

“ 아 다리 본 거 아니야. 저렇게 높은 거 신으면 안 불편한가?”

“ 말 돌리긴. 괜찮아. 킬 힐이 왜 킬 힐인 줄 알아? 죽이는 신발인 거야. 사람 죽이는 신발. 난 저런 거 때려 죽어도 못 신어. 왜 발을 혹사시켜? 세상에 얼마나 편한 신발이 많은데. 저거 신으려면 평생 서둘러 다녀야 해. 못 뛰잖아. 지각하면 죽음. 왜 저렇게 힘들게 살지. 저것도 감추려는 일종의 회피본능 아냐?”

그렇게 대화가 시작되면 삐딱 선을 타서 저건 자격지심이 있는 사람들의 탈출구라느니 타인의 시선을 즐기는 사람의 교묘한 술수라느니 회피본능이라는 말들로 변질됐고 나는 내심 보라 너도 저런 신을 신는 그런 사람이었으면 어땠을까 상상하곤 했다. 익숙하지 않은 조금은 낯선 사람. 편한 운동화 같은 사람이 아닌 아슬아슬한 킬힐 같은 사람. 그때 내가 봤던 묘한 사람.





넘어오는 오바이트를 열심히 펌프질 중이던 내 등을 턱! 하고 두드린 건 그년이었다. 아니, 그녀였다. 등에 통증이 느껴지는 순간 슬로 모션으로 고개를 살짝 돌려 뒤를 보며 최대한 목소리를 배에서 끌어올렸다. 

“이런.. 미친.. 뭐~~ 야~~ 이 새끼~가”

턱! 맞았다는 순간 이 새끼가 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려다가 침도 못 닦고 바라본 잘록한 허리선을 보고 여자라는 것을 알았다. 높은 구두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이유는 아무나 소화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 에나멜 소재의 광택 심한 빨간 구두였기 때문이었고 천천히 고개를 위로 올린 까닭은 몸을 훑은 거라기보다는 정신을 좀 가다듬으려는 나와의 사투였을 것이다. (난 여자를 훑어보거나 외모나 신체로 평가하는 그런 인간은 아니다.) 높은 구두에 짧은 치마 배꼽이 훤히 보이는 크롭 티를 입은 저승사자 년.. 그녀가 서있었다. 

‘이런 ..뮈취인..무어~~야~~이 쉐이키가아~’

분명 이 정도의 발음이었을 것이다. 내 발음이나 내 눈빛이나 흐트러진 내 몰골도 어이없었겠지만 일면식도 없던 나를 뚫어지게 내려다보는 그녀의 눈빛은 정말이지 황당 그 자체였다. 나는 생전 처음 만난 그녀의 배꼽을 바라봤다. 

‘배가 훤히 보이네. 배꼽 옆에 점이 세 개 있네.’ 그건 어쩔 수 없는 움직이었고 최소한 고개를 돌려 확인하려 할 때 가장 먼저 시선에 머무르는 곳이 그곳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 수백 번 다시 생각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여자가 내 등을 때렸다.(두드렸다) 즉각적인 수컷본능,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보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스모키 화장인가 죽음의 화장인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눈두덩이가 심하게 어두웠고 속눈썹을 위아래로 붙여 어두운 곳에서 슬쩍 보면 인종을 구분하기 어려운 느낌이었고 어디서부터가 눈이고 어디서부터가 눈썹이고 어디서부터가 속눈썹인지 여름의 어둠과 뒤섞여 구분해 내기가 어려웠다. 

“그러면 토가 나와요?”

생각보다 목소리가 얇고 청아하다. 청초하다. 

“   네.”

등신 같은 대답, 네. 

뭐가.. 네인가. 

“님이 뭐 프레디머큐리예요? 고개를 그렇게 위로 쳐들고 토가 나오냐고요?”

“  네.”

두 번째 등신 같은 대답, 네.

“고개를 숙여요 좀 숙여. 옆에 자전거에 님 오바이트 다 묻었어요.” 

“  네?”

세 번째 조금 더 역동적인 등신 같은 대답, 네?

“저 지금 저 자전거를 좀 타야 되는데 여기에 이게 다 묻어서 제가 좀 곤란한 상황이거든요? 지금 닦을래요? 아니면 좀 더 토하고 닦을래요? 어쩔래요?”

“   아... 지금 닦아 우웩 드릴 우웩 게요. 우웩”

여기. 저기. 술기운에 반복되는 대명사들이 뒤섞여 속은 더 울렁거렸다. 

“깔깔깔 원래 말을 좀 그렇게 해요? 진짜 특이하다. 왜 한 텀 쉬고 말해요? 그다지 생각하고 말하는 것도 아닌데 누가 들으면 생각하고 심오하게 말하는 줄 알겠어요. 왜 앞에 한 텀 쉬고 말하지?.. 아,. 고개 살짝 드는 건 습관이구나?”

나는 그때까지 몰랐다. 그녀가 말한 것처럼 내가 한 텀인가 뭔가를  쉬고 말하는 사람이라는 걸, 평소에 고개를 살짝 드는 인간이라는 걸.

닦을 무언가가 없었다. 무의식적으로 반만 나온 흰 셔츠를 자전거로 가지고 가다 정신을 차렸다. 앞에 편의점에서 물티슈 하나와 마른 휴지 하나를 샀다. 물티슈로 닦고 그 위에 물기를 깔끔하게 정리해야 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때문이었다. 

휘청거리면서 자전거에 묻은 오물들을 닦는 내 손을 찰싹 때리더니 물티슈를 뺏어 자기가 닦는다. 쪼그려 앉아 자전거를 닦는 빨간 에나멜 킬 힐을 신은 그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다. 술이 취하고 봐도 어울리지 않는, 어울리지 못하는 그림이다.

그녀는 나를 보고 슬쩍 웃더니 대충 닦은 물티슈를 나에게 쥐어주며 말했다.

“님 토는 님이 버리시고요. 오바이트를 할 때는 고개를 아래로! 숙여서! 알았죠?!! 갑니다.~~”

그녀는 떠났다. 나는 남았고. 술이 깼다. 시계를 보니 저녁 10시 30분이었다. 여전히 대학로 거리는 소란스럽고 활기찼으며 살아있었다. 상가 화장실 거울 앞에서 세수를 하고 물기를 닦지 않고 서있는 내 몰골만 죽은 사람 같았다. 술이 깼으므로 다시 술을 먹었다. 술이 취해야 했다. 꿈같은 이 상황을 술기운이라고 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회식은 가기 전에는 귀찮지만 막상 가면 분위기 때문에 즐겁고 술을 먹다 보면 내 인생사가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먹고, 먹고, 먹다 보면 회사얘기에서 내 개인적인 이야기가 속속들이 드러났고 다행히 다들 술이 거하게 취하면 그날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은 때론 깜빡이는 커서처럼 가물거리도, 때론 한글 파일 속 백스페이스키로 한 자 한 자 지워지기도 했다.  그 다행스러움 때문에 사람들은 회식이 싫기도 하면서 좋기도 했고 즐겁기도 하면서 피곤하기도 했다. 그날 밤 저녁 10시 30분 시계를 확인한 순간부터 정확히 2시간 술을 더 마셨고 노래방까지 가서 2시간을 노래 부르며 술을 더 먹었으니 내가 잠을 잘 수 있었던 간은 총 3시간. 오늘은 죽어있지만 살아있는 척을 해야만 하는 고달픈 날이었고 나뿐 아니라 모두 그렇게 숨기며 쓰린 속과 어지러운 머리를 쥐어뜯을 날이었다.

그녀를 다시 만난 건 점심식사를 하러 들른 해장국 집에서였다. 앞 테이블에 앉아서 뚝배기 그릇을 두 손으로 야무지게 잡고 국물을 마시는 그녀를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다. 

속 쌍꺼풀이었네. 동양인이구나. 피부가 하얗네. 어려 보이는데...?’

그녀와 나는 눈이 마주쳤다. 같이 식사를 하는 팀 사람들 때문에 놀라는 척을 하지 않고 모른 척 밥 한 숟가락을 뜨는데 휴지로 입을 닦고 일어난 그녀가 내 앞으로 걸어왔다.

“프레디 머큐리 씨, 해장 잘하세요~ 고개는 아래로!^^”

일동 얼음. 나도 얼음. 편안해 보이는 사람은 그녀 한 사람뿐이었다. 옆에서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동기 한 명이 날 떠밀었다. 

“ 안 나가냐? 안나 가볼 거야? 이 눈치 없는 새끼.. 이러니 여태 연애를 한 번도 못해봤지. 나가라고~~~”

“아니 연애를 못해본 게 아니라 안 한~ ~~”

조용하게 나를 밀치는 구상협. 우연히 면접장에서 만난 고등학교 동창이 이렇게 같은 부서에 나란히 앉아서 일을 하게 될 줄은 나도 상협이도 모를 일이었다. 상협이는 외향적이었고 즉각 적이었으며 눈치 보는 일이 없었고 말보다 행동인 놈이었다. 그래서 난 상협이가 남자다운 놈이라고 느끼곤 했었으니까. 지금도 얼음이 된 나와는 다르다. 즉각적이고 행동적이다. 동아리 창단부터 회장단까지 고등학교 시절 다양한 활동으로 이름을 날리던 상협이에게 “이 동사 같은 놈!”이라고 던졌더니 웃으며 되받아친 말은 “이 명사 같은 놈.”이었다. 

명사. 누군가에게 난 명사 같은 놈이었다. 동사 같은 사람, 명사 같은 사람을 정확히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는 몰랐다. 하지만 난 명사 같은 사람이 맞는 것 같았다. 확실했다. 이렇게 얼음이 돼있는 지금 이 순간처럼. 얼떨결에 문으로 떠밀려 나가니 그녀가 서있었다. 

“  저.. 그날은 미안했어요. 분위기가 그때랑 달라서 지금도 못 알아보고 인사도 제대로..”

“  인사는 친한 사람끼리 하는 거죠. 두 번 만났는데요 뭐.”

“   아.. 그렇죠. 그건 그렇죠.”

“   두 번 만난 거 신기하지 않아요? 두 번 만난 거면 친한 사람 아닌가?”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말을 해서 호의인지 조소인지 분간하기가 힘들었고 더욱이 나같이 명사(名詞) 같은 사람은 분위기를 감지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렇게 우리는 얼떨결에 친한 사람이 되었다. 

보라가 좋아하던 비포선라이즈의 달콤한 운명적 만남은 아니었지만 그럴싸한 우연이었고 꽤 나쁘지 않은 비포선라이즈 었다. 그녀는 근처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날 저녁의 이미지와 지금 내 옆의 이미지가 달랐기에 힐끗거리면서 얼굴을 확인하게 됐고 신발을 확인했다. 

하얀색 스니커즈 운동화. 브라운 계열의 면 반팔 티, 몸매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 청바지, 거의 하지 않아 주근깨가 다 비치는 화장, 색 없는 립글로스.

달라도 너무 달랐다. 

“   변신을 좋아해요?”

“  프란츠카프카 좋아해요.”

“.....”

“아 하하 ~ 그 변신 말고 이 변신 말이구나.. 재밌잖아요. 변신하면 내가 둘이 되는 것 같잖아요. 그쪽도 지금 변신했잖아요. 우웩.... 에서 지금은 꽤 점잖.. 게..”

출판사에서 일해서 그런 건가 이, 그, 이것, 저것 같은 대명사를 많이 쓰는 게 신선했다. 대답도 하기 전에 머릿속으로 프란츠카프카에 대해 받아 칠만 한 게 없나 머리를 굴리다가 꼭 읽어야 할 고전 목록에서 봤던 이름이 떠올라 한 마디 빠르게 맞받아쳤다.

“ 면접 준비한다고 그 책 읽고 독서모임 같은 것도 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말했다.

“ 반가웠어요. 저 점심시간 오늘 짧아요. 오늘까지 체크하고 넘겨야 될 원고가 두 개나 있어서.. 이름이 뭐예요?”

“  아 전 임창욱..입니다.”

“ 임. 창. 욱씨, 내일 해장국 집 앞에서 11시 50분에 봐요. 못 나오면 말고~ 난 보라예요 김보라.”

말이 빠르지는 않았지만 상황에 속도감이 부여되면서 빠르게 느껴졌고 더욱이 심장이 빨리 뛰는 바람에 더 급하게 느껴졌고 또다시 명사 같은 인간처럼 이 상황을 파악하기 힘들어졌고.. 결국 또 한 번 등신이 된 기분이었지만 괜찮았다. 친한 친구가 됐다는 그 기분이 식어빠진 해장국을 원 샷 하게 만들었으니까. 

번호를 알지 못해 다음 날 점심 해장국 집 앞에서 11시 50분에 우린 다시 만났다.

그녀는 나보다 두 살 어리단다. 혈액형은 ABC형이란다. 사는 곳은 성대입구 역 앞이란다. 성대를 나오지는 않았단다. 마지막 연애는 2년 전이란다. 좋아하는 가수는 이적이란다. 좋아하는 음식은 해장국이란다. 좋아하는 것은 변신이란다. 좋아하는 이상형은 고개를 쳐드는 남자란다. 프레디머큐리처럼..

남들과는 다르게 우연히 만나 설렘이 아닌 황당함으로 시작한 보라와 나.

우리는 그렇게 연인이 되었다. 

우연으로 만났다고, 황당함으로 시작했다고 해도 사람과 사람사이에는 설렘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사람이다. 보라는 느낌, 감정, 감성이라는 단어를 곧잘 사용했는데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원고를 보다 보면 자연히 감성이 발달된다고 말했다.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오타를 발견하고 문맥을 확인하는 시간은 주관성이 배제된 객관적인 시간일 것이라고 추측하던 나는 보라의 말이 새삼 새롭게 와닿았다. 

“ 글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이 보여. 말을 나누면 그 사람의 느낌이 보이는 것처럼.”

“   느낌이 보여? 느낌은 시각이 아닌데.”

“ 맹추.. 눈으로 보이는 것만 보이는 게 아니라고. 눈 감아봐. 지금 바람 냄새 무슨 색이야?”

“   안 보이는데..”

뜬금없는 질문과 추상적인 질문은 연애초반 사랑스럽게 안아주고 감싸줄 수 있는 애교 같은 것이었다. 객관성을 가지고 보면 이상할 보라의 변신과 무미건조함 속 과하게 부각되는 감정선 들은 주관성을 가지고 바라보는 순간 사랑스러움이 되고 엉뚱함이 되고 4차원이라는 귀여운 단어로 둔갑했다. 

“ 창욱아, 한 잔 콜?!”

상협이의 한 잔 콜! 을 다음에 한 잔 하자는 말로 미루게 된 건 상협이와 나 사이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단 한 번도 거절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날 찾아주는 술 한 잔이라는 말 한마디가 외로움을 잊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고 명사 같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술기운을 빌미로 호기롭게 뒤엎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딱히 남아도는 시간에 할 일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미안하다는 말로, 다음에 라는 말로, 오늘은 어렵겠다는 말을 내뱉는다. 

매일 저녁 보라를 만났다. 퇴근시간이 맞지 않을 때는 기다렸다 만나고 때론 보라가 날 기다렸다. 저녁에는 술안주로 저녁을 대신했고 때론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기도 했으며 삼각 김밥을 들고 거리를 걷기도 했다. 

스파게티나 스테이크, 맛 집 순방이 아니라 아주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을 우리 나름대로 탐닉하며 삼각 김밥으로도 사랑이 가능하다는 걸, 컵라면 한 끼로도 애정 선에 변화가 없을 수 있다는 충격을 안겨준 그녀. 

그녀가 바로 내 인생의 전환점, 김보라인 것이다.

덤덤한 무채색 내 하루에 불현듯 찾아와 이런저런 색깔로 나를 물들이는 사람..

보라는 생각보다 순수했다. 순수하다는 의미는 퇴폐적이라는 뜻의 반대의미가 아니었다. 그녀는 마음을 수시로 ‘변신’했다. 형용사처럼 때로는 부사처럼 때론 접속사처럼.. 그래서 변신을 즐겨한다고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보라는 마음을 숨기는 게 죄를 짓는 것 같다는 말을 가끔 하곤 했다. 그래서 글로든 표정으로든 일로든 마음을 자꾸 내뱉으려 하는 것 같다고 했고 나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이름, 임창욱. 지창욱과는 거리감이 많다. 그는 자기가 엄청 차가운 줄 알고 착각하는 단순한 남자다. 버티는 게 능사인 줄 알지만 사실 알고 보면 잘 버티지도 못하는 사람. 연기를 하지만 연기가 티 나서 더 순수해 보이는 사람. 닳고 닳아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그가 좋았다. 그가 알면 기절초풍하겠지만 촌스럽고 숙맥스럽고 답답하며 덤덤해 보이는 모습이 그만의 매력이었다.

어렸을 때 나는 작사가가 되고 싶었다. 아니, 될 줄 알았다. 아니, 되어야만 했다. 이유는 간단한다. 내 마음이 무지개이기 때문에. 그 무지개인 마음을 잡아줄 일은 작사가였기 때문이다. 교복을 입었을 때부터 마음이 움직일 때마다 끄적거리며 모아둔 두툼한 공책을 4권이나 묶어 제본 한날 나는 아빠에게 뺨을 맞았다. 예민한 게 엄마를 꼭 닮았다는 사실이 이렇게 모욕적으로 뺨 맞을 일이라는 사실을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아빠의 손은 컸고 굵었으며 딸에게 절대 휘두를 수 없는 힘으로 나를 후려갈겼다. 처음 아빠에게 맞았고 처음으로 아빠에게 고함을 질렀다.

“ 왜 때려! 도대체 왜 때리는데!! 내가 어쨌는데!!!! 더 때려봐 더 때려보라고!!!”

“ 이게 정신이 나갔나. 다들 지랄하고들 자빠졌네. 감성이 밥 먹여주더냐! 네 엄마를 봐라. 또 네 엄마 꼴 나서 뒈질라고 작정이라도 한 것이냐! 한 사람이면 족 한다 한 사람이면.”

평소에는 얌전하고 조용하던 아빠는 책을 읽는 모습이나, 글을 쓰는 모습, 음악에 심취해 있는 모습을 싫어하다 못해 증오했다. 감성이 너무 발달된 사람은 지 기분에 지가 도취돼서 살았다 죽었다 생명줄을 오지게도 못살게 하는 족속들이라며 서슬 퍼런 눈으로 보라를 향해 독설을 내뱉었다. 그날 두툼한 노트들을 들고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만끽했던 보라는 가장 처참한 기분을 동시에 맛보았다.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을 많이 들으며 자란 보라는 8살 때부터 아빠와 지냈다. 어리고 어린 시절이라 가물거리지만 보라를 돌봐준 이모는 보라 몰래 눈물을 훔치곤 했다.

“.... 엄마는 행복한 사람이야.” 

처음에는 엄마가 여행을 간 줄 알았다. 여행을 혼자 갔다면서 심술을 부리곤 했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원망했고 두려워했다. 외로워했고 슬퍼했고 조금씩 덤덤해졌다. 하지만 엄마가 아예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니라 믿었다. (믿고 싶었다.) 시간이 꽤나 길어지자 공부를 하러 간 줄 알았다. 정말 엄마가 공부하러 비행기 타고 미국에 갔다고 말해준 친척들도 있었다.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친척들마다 다 말이 달랐고 나를 보는 어른들들 눈에서 슬픔과 연민을 느꼈던 나이로 자라났을 때였다. 어느 순간 알게 됐다. 엄마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 단순 명쾌한 사실을 왜 아무도 나에게 명료하게 이야기해주지 않는 건지 난 사실 그게 참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다. 말은 하는 것이 아니라 속으로 하고, 글로 쓰고, 음악으로 느끼며 해야 한다는 것을 체득한 것이다. 

그맘때쯤 이모가 나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바로 엄마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이었다. 불행해서 죽은 게 아니라고, 삶이 힘들어서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니라고. 행복을 충분히 알고 누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고 아마 나에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어린 나는 몰랐다. 다만 엄마의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질 때가 많았고 소풍날 이모가 싸준 김밥은 너무 크고 싱거웠다는 것, 그래서 싫었지만 이모가 내 곁을 떠나 버릴까 봐 이야기하지 못했다는 것, 주말에 가족끼리 외출하는 친구들을 만나기 싫어 일부러 방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했던 것.. 그런 기억들이 유독 지배적이었다. 

보이지 않게 갈겨지고 찢어지고 상처 난 마음을 어루만져준 것은 사람이 아닌 시간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 견뎌온 시간. 생각하던 시간. 느낌이 가득했고 그 느낌이 무슨 의미인지 고민했던 시간. 그 시간 속을 견뎌내며 보라는 엄마의 부재를 떠올렸고, 아빠의 서슬 퍼런 눈빛을 떠올렸고, 이모의 말 한마디를 떠올렸고, 엄마의 쪽지 한 장을 떠올렸다.     

보라야 엄마는 마음은 알록달록해. 

보라 마음도 알록달록 할 거야.

사람 마음은 알록달록한 무지개란다.

행복한 거야 그건.          

중학교2학년, 15살. 또래 친구들보다 조금 늦게 첫 생리가 터졌던 날 이모가 예쁜 속옷세트와 장미꽃을 선물해 줬다. 그리고 낡은 책 한 권을 같이 내밀었다.

“보라야 보라가 어렸을 때 엄마가 하루에 수십 번 수백 번 읽어줬던 책인데 이모가 다른 건 다 처분해도 이건 못 버리겠더라. 어릴 땐 못 주겠더라 우리 보라한테. 이제 보라도 많이 컸으니까 엄마 생각 행복하게 할 수 있을 나이가 되지 않았을까.. 싶어서 보관해 놨어.”

그 쪽지가 그 책 속 어딘가에서 보석처럼 발견된 것이다. 엄마의 필체를 처음 느꼈다. 이건 분명 본 것이 아니라 느낀 것이었다. 종이 냄새를 킁킁거리고 울음을 참으려 애쓰다 이모의 토닥임에 눈물을 쏟았다. 태어나서 그렇게 크게 울어본 적은 처음이었다. 울어서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부어있는 눈에 쪽지 귀퉁이 작은 음표가 눈에 들어왔다.

‘음표다. 신호다. 느낌이다. 음표를 그리면서 그때 엄마는 무슨 기분이었을까..’

그날은 생리가 터진 날. 눈물이 터진 날. 엄마를 보고 싶은 마음이 터져버린 날. 내 감정이 터져버린 날이 되었다. 보라는 그날부터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다시 작사를 했다.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꿈은 숨기는 것이었다. 맞지 않기 위해. 힐난을 피하기 위해. 그리고 국어국문학과를 입학했다. 아주 무난한 대학, 나에게 있어 무난해 보이는 학과로. 국어국문학과를 지원할 때도 한바탕 난리가 났었지만 작사가의 꿈을 포기한 줄 알았던 아빠는 조금이나마 안심했고 허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딸년이 이제 사회에 들어가 정신 좀 차리겠거니 생각했다. 속이면 그만이었다. 파일에 끄적거리면서 모아놓은 아이디어들, 단어, 문장, 느낌, 경험들이 빼곡하게 쌓여있었고 시간의 퇴적층만큼 견고하고 두껍게 자리 잡고 있었다. 왜 나는 그렇게 방 안에서 나오려 하지 않았던 걸까. 왜 나는 무덤덤한 척하며 말을 했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던 것일까. 알록달록한 이 마음은 숨기고 싶은 단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든 달라져보고 싶었다. 하지만 달라지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화장과 옷이었던 것이었다. 대학생의 특권이라고도 생각했다. 

자유와 시간. 술과 화장. 

승미 에게 옷을 빌렸다. 가죽옷만 보면 사고 보는 승미에게는 다양한 종류의 가죽 옷들이 있었다. 인조가족이 대부분이었지만 그중 몇 벌은 만져보면 다른 게 티 나는 좋은 가죽 옷들도 있었다. 

“ 가죽옷 하나만 빌려 줘 봐. 한번 입어보자. 마음도 변신이 되는지.”

“ㅋㅋㅋ김보라 씨 가도 너무 갔다. 매일 운동화만 신는 애가 가죽은 뭔 가죽? 진짜야? 진짜면 내가 도와주고! 나 알지.. 완벽하게 도와주는 거.”

“ 입어보자 한번. 중요해.”

중요한 날이었다 그날은. 달라지겠다고 한 그 말은 어쩌면 마음속 깊이.. 뼛속까지 달라지고 싶다는 마음이기도 했었으니까. 

승미는 나를 앉혀놓고 화장을 해줬다. 얼굴색을 떠들어대며 보라색 톤의 액체 파운데이션을 깔아 괴물을 만들어 놓더니 보라라서 보라색을 덮어준다고 식상한 이름개그도 한 번 날렸다. 놀랍게 그 위에 또 다른 황토색 파운데이션을 덧발랐다. 그 위에 컨실러로 내 오른쪽 볼 위에 난 점 두 개에 찔러댔다. 보기만 해도 숨이 갑갑해진 나는 따지듯 물었다.

“ 점은 왜 지워. 이거 매력점이야.”

“ 매력 점 좋아하네 점은 다 빼는 거래. 말끔해지는 거야 이래야.”

‘말끔’이라는 단어가 좋았다. 말끔. 

나도 정말 말끔해지고 싶었다. 

바탕화장이 끝나고 눈두덩이에 베이스라고 옅은 베이지를 깔더니 그 위에 나랑 잘 어울린다며 브라운을 깔고 그 위에 음영을 넣어야 한다고 고동색을 깔고 그 위에 검은색으로 눈 점막을 채우고 그러고 나서도 절대 지워지지 않을 거라는 말과 함께 워터 프루프 아이라이너를 그려댔다. 신의 손이었다. 쉼 없이 움직이는 승미의 손은 흡사 수술 중인 집도의 같았다. 눈썹을 조금 다듬었다. 너무 두꺼운 눈썹은 답답하고 느리게 보인단다. 그래서 내 눈썹은 원래보다 얇아졌다. 하지만 나는 빨라지지 않았다. 왜 이렇게 화장을 진하게 하냐고 물었더니 가죽에는 이 화장이란다. 화장품 용어들이, 쭉 나열되어 있는 순차적인 화장들이 신세계였다. 

“ 아 박승미 과하다 과해. 일단 됐어.”

“일단 된 건 뭔데”

“ 너 이러고 갈라고? 이럴 줄 알았다. 길이 긴 애들이나 가죽에 스니커즈가 어울리지 넌 모델포스도 아니고요!! 기럭지도 안 돼요! 힐 있어? 아니다 없지. ”

“ 없지...”

“ 그러면서 가죽 타령은.. 이리 와봐.”

승미의 신발장에는 다양하다 못해 이상한 구두들이 가득했다. 앞코가 뾰족한 것, 둥근 것, 앞에 살짝 구멍이 있는 것, 높은 굽, 중간 굽. 낮은 굽은 없었다.

“9센티미터로 하자. 이게 젤 예뻐. 발사이즈 나랑 같잖아. 이거 신는다. 오늘.”

 과하게 반짝였고 과한 색깔이었고 참으로 과한 높이었다. 

“ 걸을 수 있을까..”

“너 말투 한 번 바꿔봐 이왕 바꾸는 김에 말. 끔. 하게 느려터지게 말하지 말고 가죽 옷 입은 센 언니 같은 느낌으로 연기한 번 해보라고. 작사하는 기분으로”

작사하는 기분으로...

승미는 안다. 내 꿈이 짓 밟혔던 날 날 안아준 것도 승미였고 마음을 숨기라고 알려준 것도 승미였고 예쁜 작사노트를 내밀고 파일을 정리하라며 주문해 준 것도 승미기 때문이다. 

분명 몰랑한 아이인데 당차고 거침없는 승미가 보라는 신기하면서 부러웠고 그런 당참 뒤에는 사랑을 듬뿍 받은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힘 같은 게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 어떻게...”

“ 등신.. 나랑 둘이 있을 때처럼 하면 돼. 아니다 나도 없으니까 넌 오늘 딴 사람인 거야. 김보라 말고 김 초록해라 김 초록.”

낯선 옷을 입고 높은 구두를 가방에 넣고 자전거를 탔다. 그리고 서점을 갔다. 책을 읽었다. 화장실에 가서 거울 속 어색한 얼굴을 바라봤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특별할 건 없었다. 좀 다른 옷을 입고 좀 다른 화장을 했지만 벤치에 앉아 똑같은 생각을 하며 음악을 듣는 사람이 나라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변신.. 별거 아니네?..’

이어폰을 빼고 ‘해보니 이제 알겠다.라는 웃음 섞인 한마디를 하는 순간 힘겨운 소리가 들려왔다. 벤치에 다시 앉아 몸을 출렁거리는 그를 바라보았다. 한심했다.

 ‘그래.. 난 화장에.. 넌 술에.. 뭘 그리 지우고 싶었던 거니?’ 

또각또각 힘겹게 다가가 자전거 앞에 스니커즈가 든 가방을 내려놓았다.

도움이 필요해 보였고 그에게만큼은 도움을 줄 용기가 났고 그 이유는.. 그가 연약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에게 말을 건다는 건 그 사람의 시간에 내 일부가 포함되는 일이다. 새로운 날 새로운 순간 새로운 시간 새로운 경험 새로운 사람이 깃든 이 하루를 작사하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또각거리며 힘겹게 그에게 다가간 순간이 비포선라이즈의 한 장면처럼 캡처되어 다가왔기 때문에, 이적의 음색이 오버랩되는 듯한 느낌이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우연히 그를 다시 만난 날에도, 해장국집에서 쓸쓸함을 감추고 외로움을 지우고 국물을 들이켜던 그 순간에도 다가가 프레디머큐리 씨라고 황당한 인사를 건넨 날에도 그 사람은 나에게 이미 작사 같은 사람이었다. 분명 글자같이 멈춰있지만 글자 속 의미만은 진하게 지니고 있는 사람. 멈춰만 있는 차가운 사람은 아닌 것 같아서.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서. 우연을 시작으로 우리는 자연스럽게 연애 같지 않은 연애를 했고 그 연애 같지 않은 무덤덤한 연애 덕에 꽤 긴 시간 사랑을 이어갈 수 있었으며 불필요한 에너지소비가 없어 그는 그의 일을, 나는 나의 일에 집중하며 사랑까지도 잡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너무 개성적이거나 너무 감성적이거나 너무 유별나거나 너무 바른말을 많이 하거나 해서 눈에 띄는 건 내가 중심을 잡고 서있기에 버거운 일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더더욱 쓴다. 무지개 같은 마음을 종이에 끄적이고 그 다채로운 마음을 표정으로, 말투로 드러낸다. 하지만 중요한 건 무지개 같은 마음을 백 퍼센트 드러내지 않는 지혜다. 믿을만한 사람에게조차도 내 마음을 온전히 드러낼 필요가 없었다. 남자친구가 나에게 자주 하던 말, ‘감성이 밥 먹여주나?’는 사실 맞는 말일지 모른다. 감성이 가치 있어지려면 감성을 현금화시킬 수 있을만한 능력이 겸비되어야 하는데 나에게는 감성만 있었으니까. 

출판사 편집일이 때론 작사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수정한 문장을 다시 재수정해달라는 작가님들의 되받아치기를 경험하면서 문득 현실을 직시하곤 했다. 

지금 나는 작사가가 아니다. 내 마음을 온전히 드러내면 안 된다. 그럴 필요 없다. 감춰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5년 정도 사귀었는데 왜 결혼을 미루고 있냐는 부모님의 말을 들을 때 ‘왜 우린 결혼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지 않지?’ 생각하기도 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넌지시 하고 있는 일에 조금 더 집중하고 싶어서 아닐까? 보라는 어느 날 결혼하면 아이는 몇 명이나 낳고 싶냐는 나의 가벼운 질문에 낳는다고 하면 그게 말처럼 되냐며 눈을 흘기고는 20명 정도 낳자고 가볍게 되받아쳤다. 

궁금했다 보라의 마음이. 마음속을 완전히 보여주지 않는 5년 된 여자 친구의 마음이 궁금했다.

“ 보라야. 우린 왜 결혼 이야기를 안 할까? 둘 다 비혼 주의자 이런 건 아니잖아?”

“.... 애한테까지 감정 숨기기 싫어.”

보라는 지금 자신의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기 싫다고 말했다. 알록달록한 무지개처럼 그렇게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안다고 했다. 

“ 보라야 하고 싶었던 작사일 다시 해보는 건 어때? 모아놓은 공책들만 해도 엄청나잖아.”

“ 애 얘기 하다가 갑자기 뭔 작사일이야. 다음 생에서 해보던지 할게.”

“ 왜 이러셔~우리 나이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고 뭐 그리 겁나. 해보고 싶은 거 해보는 거지.”

그런 얘기를 하는 내가 가증스러웠다. 나조차 하고 싶은 일을 다 하지 못하고 살았고 눈치 보며 덤덤하게, 체념하며 살아가는 게 생존본능의 제1법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라의 그 무채색이라는 말이 왜 이렇게 마음 저리게 다가왔는지 잘 모르겠다. 나와 그녀는 다르지만 닮았다. 이성보다 감성이 발달한 사람, 감성을 죽이고 현실을 직시하려 하는 이상주의자. 하지만 둘 다 살아남기 위한 자기만의 방법을 선택해야 하는 연약한 인간. 그래 맞다. 어쩌면 나도 그게 두려워 결혼이야기를 못하는 것일지 모른다. 나의 이런 나약하고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들키기 싫어서. 아이에게만큼은 보이기 싫기 때문일지 모른다. 회사와 일, 그 중간중간 가미된 회식과 낮잠이 학창 시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전부였던 난 절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되지는 않으리라고 다짐했지만 결국 나 역시 회사와 일 회식이 반복되는 삶을 이어가고 있고 내 아이도 어느 정도는 나의 그런 모습을 받아들여야만 하겠지..

남들보다 더 예민하게 느끼는 그 감성이 누군가에게 돈이 되지만 누군가에게는 죽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라 역시 두려워하고 있을지 모르지. 그래서 엄마가 되는 걸 불안해하는지도 모르지. 어쩌면 지금도 헉헉 컥컥 숨 막히는 소리가 날 정도로 힘들게 이어지는 하루인데 내 분신이 생기면 이게 유지가 될 수 있나 의구심이 들 수도 있지.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는 친구들의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대면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 회식자리에서 결혼하지 마라 그런 거 하는 거 아니다는 선배들의 혀 꼬부라진 소리가 불편한 진실같이 느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 

하지만 분명한 건 보라는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거다. 덤덤함이 아닌 불안함.

그 몰캉한 감성이 누군가에게 독이 될까 봐..

“ 오빠 우린 언제쯤 괜찮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만족하면서, 불안해하지 않으면서 말이야.”

“ 그런 건 없어. 기대를 말자. 그리고 이미 우린 어른이야. 35살 정도면 어른 아닌가.”

“가끔 난 어린 보라로 되돌아가고 싶어. 마음을 다 드러내도 그럭저럭 다 괜찮던 때. 눈치 보지 않고 아이처럼 행동해도 괜찮았었을 때로.”

“지금도 나한테는 괜찮아 보라야. 그렇게 해.”

보라는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말해도 안 멋있다고. 

4개월 동안 그럭저럭 한 시간을 보냈고 우리는 그 시간을 회색의 봄이라고 불렀다. 화창해야 할 봄이 우리 둘에게는 왠지 회색빛이었다. 회사는 안정적이었다. 둘 사이도 안정적이었다. 

뭐 하나 삐걱거리는 게 한 군데도 없었는데 색깔이라고는 감돌지 않는 회색의 봄날이 숨 막혔다.  

“오빠 나 공부를 좀 다시 해볼까? 아니, 해봐야 할 것만 같아.”

“ 그래 좋지.”

“ 다른 나라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아니다. 떠나봐야 할 것만 같아. 새로 태어난 기분이 들 것 같아.”

“....”

“ 기다리라고는 말 안 할게. 시간에 우리를 맡겨보면 어떨까. 이래도 심란 저래도 심란해보고 싶던 건 해봐야 될 것 같아. 밑져야 본전이란 마음으로.”

“............ 변신이야?”

보라가 웃었다. 보라에게는 어쩌면 밑져야 본전인 인생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보라가 늘 얘기하던 영화 속 주인공처럼 모든 걸 다 두고 내릴만한 용기도 그렇다고 해가 뜨기 전까지 온전히 그녀에게 시간을 내어줄 여유도 부족했다. 시간이 필요했다. 나에게도 보라에게도.

그렇게 보라와 나는 아주 덤덤하게 각자의 시간에 몸을 맡겼고 완전히 끊어지지 않은 관계 속에서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보라가 떠난 후 3일 뒤 카톡 하나가 왔다. 프로필 메인 사진에는 작사노트가 있었다. 

나의 보라: 오빠. 여기 공기는 노란빛이야. 거긴 무슨 색이야?

생각해 보니까 내가 비포선라이즈에 집착했던 이유는 가장 어두운 시간을 또다시 반복해야 할 것 같다는 불안함 때문이었던 것 같아. 달콤하고 설렘 때문이 아니었나 봐. 해가 뜨면 지고 다시 뜨려면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짧은 시간 동안에도 서로의 마음이 연결될 수 있다. 온전히 그 사람에 집중해 있을 수 있다면. 어쩌면 나 역시 비슷한 일상이라는 명목으로 그녀를 방치했을지 모른다. 그녀가 말하는 눈빛과 그녀가 전하는 마음의 색을 말이다. 

나: 비포선라이즈, 해는 언제든 다시 뜨니까. 웃자. 

나의 보라: “10년 20년이 지났다고 치자. 넌 결혼을 했고. 그런데 그 결혼 생활이 예전만큼 재미있지는 않은 거지. 그래서 부인을 탓하면서, 옛날에 만난 모든 여자를 떠올리는 거야. 그때 그 여자를 선택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하는 거지. 그 여자들 중 하나가 바로 나야.”

비포선라이즈 에단호크가 했던 말을 보라는 나에게 던졌다. 남자를 여자로 바꿔서. 

이건 관계의 유지가 아닌 일단락의 의미였고 수긍을 해야만 하는 상황인 것만 같았다. 시간의 퇴적층을 구겨버리지만은 말자는 묵언의 약속 같은 것.

보라와 엄마의 이별. 내가 꿈꿔왔던 나와의 이별. 나와 보라의 이별. 

이별을 해야만 비로소 더 찬란하게 느껴지고 보이는 것. 바로 그 순간이 모두의 비포선라이즈 아니었을까. 나 역시 내 인생 또 한 번 비포선라이즈를 맞이한 것뿐이다. 세상일에 그리 슬퍼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마음을 드러내도 혹은 감추어도 그리 중요한 건 아닌 것이다. 그 사람만의 태양이 지고 뜨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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