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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는 시간들

며칠 전 아이들에게 한 개씩 남겨놓은 첫 배냇저고리를 꺼내 보여주었다. 작고 시간의 흔적도 고스란히 드러나는 옷을 보더니 두 아이다 팔을 넣어본다.
팔목도 안 들어가는 옷을 보고 아이들은 너무 귀엽다 너무 작다 말하며
하루만 저 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아무 생각 안 하고 먹고 자니 얼마나 편하겠냐고 한다.

" 말도 못 해 답답하니 울기만 해 종일 잠만 자 심심하지 않겠어?"
내 말에 아이가 대답했다.
" 숙제도 없고 학교 안 가도 되고 정말 편하지 뭐."

중학생이 되니 7교시가 끝나면 4시 30분.
학원으로 갔다 집에 오면 정말 늦은 시간이다.
어릴 땐 놀이터에서 뛰어놀았을 시간에 답답한 교실에서 하루 종일 나오질 못하니 얼마나 싫겠나 싶다가도
이 과정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 아닐까 싶다가도
또 안쓰럽기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머리가 크더니 아이들이 어디든 자기들 얼굴 올리는 걸 좀 싫어했었다. 사진도 찍기 거부해 가족사진은 점점 줄어들고 몰래 찍기라도 하면 지워줘! 눈을 흘기며 대든다.


그러던 아이들이 요즘은 둘이 가끔 내 블로그나 브런치에서 자기들 사진이나 예전 기억을 찾는다.

곧잘 브이도 올려 사진을 찍는다.

배냇저고리 사진을 블로그에서 뒤지다 보니 블로그 10년 전으로 한참을 내려갔다.
" 하... 진짜 오래 썼네 엄마.."
" 나중에 더 커서 엄마가 쓴 글들 뒤적거리면 얼마나 재미있겠어? 지금도 재미있는데."

아이들은 조용히 사진들을 보고 아가 때의 모습을 찾는다.

( 작은 옷도 심지어 컸었네...)

참 신기하다.
임신을 했을 때도 놀라웠고
아이를 낳을 때도 놀라웠고
키우면서도 놀라웠고
좀 키우다 보니 더 놀라운 일들이 끊이질 않고 찾아온다.

중3 졸업앨범을 찍은 큰 아이는 드디어.... 교복을 미니스커트로 줄였다.
수선집 할아버지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투덜거렸더니 한 마디 던지신다.
" 엄마는 다 해놓고 왜 딸을 못 하게 해. 박아주고 잘라주고 하고 싶단 건 다 해줘. 이것도 다 한때야 한때."
"... 그래도.... 너무 짧고 짝 달라붙게 학교에.... 교복을.... 입고... 가면......"
" 하고 싶은 거 못하고 참으면 나중에 탈 나 못써. 당연한 거야 이런 거 요즘 애들 다 하는데 자기만 못해봐 얼마나 억울해. 안 그래?"

그렇게 길이를 줄여왔다.
그 치마를 입고 룰루랄라 학원도 가고 학교도 가고 사진도 찍었다.
심지어 졸업앨범 찍는 날과 체육대회 날에는 풀 메이크업을 했다. 섀딩도 마스카라도 눈썹도....아이라인도..심지어 꼬막눈에 애교살까지..참나. 나보다 화장을 더 잘한다.


기저귀에 오줌 싸고 찝찝해 악쓰며 울던 아가들이,
이유식도 갈아먹던 아가들이,
글씨도 몰라 그림책만 뒤적거리던 아가들이,
어느새 야금야금 커서 이렇게 어른 될 준비를 하고 있다.

" 엄마 나 4년 뒤면 20살."
큰 아이의 말이 자꾸 귓가를 맴돈다.
믿을 수가 없는 시간들이다.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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