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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아 - 아버지의 해방일지

천수관음보살은 불교에서 자비와 구원의 상징이다.
천 개의 손으로는 자비와 구원을, 천 개의 눈으로는 중생의 고통을 관찰하는 존재다.

나는 그런 존재가 바로 부모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나에게 친구같은 존재라면, 아빠는 나에게 설악산 울산바위 같은 웅장한 존재다. 엄마와 편하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처럼 아빠에게는 언제나 안길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그런데 정작 아빠의 얼굴, 아빠의 마음을 살피지 못했다.

회사일로 바빴던 아빠, 회식하고 들어와 속이 아파 하던 아빠, 토요일까지 회사에 나갔다 일요일날 밀린 피로를 푸느라 낮잠 자던 아빠는 우리 세 딸이 올바르게 커나갈 수 있도록 바깥에서 바람을 온몸으로 맞아가며 버텨냈을 것이다. 바깥에서의 시간이 많았으니 나는 아빠가 어떤 30대 40대 청춘을 보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 그때는 내 10대와 나의 20대만 생각하느라 부모의 청춘은 생각하지도 못하는 애송이였지만..)

아빠 마음을 완전히 알지는 못하겠지만 수백개의 마음 하나하나를 다 드러내지 못한채 그렇게 가족을 살피고, 청춘을 바쳤으리라. 아빠라고 하고 싶은 게 없었을까.


문득 내가 느끼는 감정처럼 아빠도 '모든 것 잠시 내려놓고 혼자서만 훌쩍 떠나 하고 싶은 것 잔뜩 하며 일주일만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상상을 하다 괜히 현실이 슬프게 와닿을까 싶어 아무렇지 않은 척 묵묵히 회사로 가고 술 한 잔 기울이며 나누는 동료와의 회식자리에서 잠시 현실의 고단함을 애써 잊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빠의 얼굴은 웅장하고, 따뜻하고, 때론 고단하고 슬프다. 나는 그 다양한 아빠의 얼굴이 아빠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행복하기만 한 날들이었을까. 아빠의 숱한 시간들이 하나하나 온 몸에 각인되어 70이 넘은 아빠의 곳곳에 삶의 흔적들로 드러난다.
문득 생각했다. 나는 과연 아빠의 얼굴을 몇 개정도 알고 있을까 하고.

나에게 아빠란 존재는 천수관음보살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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