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가 혹시
나의 예민함과 불안정함 때문은 아닐까.
글 속에는 나만큼이나 특이하고 날카롭고 예민하고
상처가 많고 혹은 상처가 없는척하며 씩씩하고 침잠하고 때론 날뛰는 사람이 천지이니까.
갈등은 늘 감정의 촉발로 시작된다.
내가 무던한 엄마였다면 모두 넘어갈 수 있는 문제일까를 고민하다 눈물을 쏟아버린 새벽이었다.
억울하고 화가 난다는 느낌이 엄마로서의 올바른 마음인지.
내 엉엉거리던 울음의 발단은 무엇인지.
내 불안정한 행동으로 상황이 귀결되는 것 같은 분위기는 정말 나의 부족함 때문인지.
내 마음에 남아있는 상처가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무엇인지.
엄마로서의 하루는 쉽지 않다. 특히나 불완전한 감정으로 엄마가 된 어른일 경우 더 그렇다.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엄마인 나는 그래서 힘들다.
아픔을 상처를 손에 쥐고 어른이 된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덧난 상처들이 고개를 내밀어 당황시킨다.
꼭 나를 놀리는 것만 같다.
' 봐봐, 너 여태 이 정도야. 아직 멀었어.'
속상하고 민망하고 당황스럽다.
그럴 땐 눈물이 쏟아진다.
왜 자꾸 절박하고 투쟁하는 맹렬한 마음이 동하는 것인가.
소설책에 빠져들다 문득 현실로 돌아오게 되는 순간,
갑자기 밀려오는 허무함과 외로움이 두렵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8월 한 달 수업을 쉬며 온전히 누린 오전과 오후 시간 독서를 하며 처음 느낀 이상한 기분이다.
행복하다 우울해지고
고요하다 슬퍼졌다.
(슬픔이 행복으로 바뀔 때도 있었지만.)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나 한 사람만 신경 쓰며 살고 싶단 생각을 하다가도 그런 생각을 한 엄마로서의 죄책감에 아이들이 오면 간신히 표정을 숨기기도 한 날.
혼자 여행이라도 훌쩍 떠나 일주일 잠수탈거야!
심술이 나다가 여전히 이런 일탈을 꿈꾸는, 철없는 아이 같은 생각을 한 것은 아닌가 풀이 죽어 어깨가 작아지는 날들.
내 인생이라고 큰소리치는 애들 앞에서 담담하게
"그래 각자 내 인생만 신경 쓰며 살아보자!" 정말 말 그대로 하고 싶은 날들.
신경 쓰지 말라는 말에 날 서게 반응하지 않고 웃으며
"정말 고마워. 진짜 신경 끄고 살게. 고마워" 말하고 싶다 생각하던 날들..
이런 천방지축 삶들이 소설 속에 가득했고, 나는 그들의
특이함과 자유로움과 삐딱함과 우울하고 고독한 모습에 대리만족을 느꼈다. (그런 것 같다)
누군가 어디로 갈지 모르는 이들이 숨어서 읽고 쓰는 것이 소설이라고 했다.
마음이 횡설수설한 상황인 나는 홀가분하게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마음에 또 자책하고 숨어서는 가만히 앉아 책을 쌓아놓고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다.
비빌언덕이자, 나를 무안하게 하는 책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