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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니체는 말했다.
과거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사십 대는 참 신기한 나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기분이랄까.
(여전히 청춘의 중반쯤을 지나는 중이라 생각하지만 ) 나에게 10대와 20대는 발버둥의 시간들이었다.
끝없는 공부, 끝없는 취업 준비를 하면서 악착같이만 보냈다.
일 년이 뒤처지면 십 년이 뒤처지는 줄만 알고 보낸 그 얄궂은 시간 속에서 나는 야무지게 사랑도 하고 이별도 하고
미래를 그렸다.

30대를 떠올려보면 결혼과 출산과 육아로 점철된다.
20대가 내 이름을 가지기 위해 노력한 시간이었다면, 30대는 내 이름을 버리기 위해 애쓴 시간이었다.
내 이름 대신 아이들 엄마로 불리던 시간이 왜 그리 억울하고 슬펐는지 나는 애써 밝은 척을 하면서도 자주 울었고
젠장할 감수성을 증오했다.
조금 더 무뎠더라면 모든 상황이 더 무덤덤하게 느껴졌을까 하며 아이를 키웠고 집을 지켰다.

아이를 낳는다고 경력이 단절되는 세상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나는 누구보다 사회생활에 충실하는 인간이 되겠다고 확신했다.
꼬물거리는 생명체를 누군가에게 맡기는 것은 누군가의 하루를 희생해야 가능한 일이다.
세 딸을 키워낸 엄마에게 또 다른 딸을 맡기긴 쉽지 않았고,
내 아이는 내가 당연히 키워야 한다는 고집스러움 덕에 나는 정말 계획에 없던 경력이 단절된 1인이 되었다.

능력이 있으니, 공부 많이 했으니까, 아직 쓸모 있을 테니까.. 당연히 아이를 키우다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조심성 없고 혈기 왕성한 우리들에게 둘째도 생겼다. 이로써 나는 뭔가 꿈꾸기보다는 나를 제어해야만 했다.
아주 기본적인 먹고, 자고, 싸는 것부터 내 맘대로 하기 쉽지 않았다. 모든 것이 아이들의 시간대로 흘러가야 했으니까.
하이톤으로 아이들을 돌보다가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며 남몰래 꺽꺽거리던 울음들은 나의 예민함 때문이었을까, 불완전한 성격 때문이었을까, 그냥 피로감 때문이었을까, 억울함 때문이었을까 아직도 단정하지 못하겠다.

그냥 힘들었고, 그래도 행복했고, 피곤했고, 신기하게 가장 에너지가 넘쳤던( 넘쳐야만 했던) 나의 30대.

40이 넘어가면서 달라진 것은 엄마가 세상 전부라고 하던 아이들이 조금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과.
평생 오동통할 줄 알았던 내 볼이 홀쭉해지고 있다는 점과.
끝난 것 같던 내 인생이 다시 활짝 피는 중이라는 것이다.

가장 힘들다고 생각한 시기에 나는 글을 썼고, 가장 피곤한 시기에 가장 많은 책을 읽었다.
가만 보니 생존본능이었다. 혼자 발버둥 치면서 어떻게든 버텨내려는 아우성 같은 거였다.
읽고 쓰고 읽고 쓰며 스스로 토닥인 시간들이 한 계절 태풍처럼 지나가니 다시 내 이름이 불리는 일들이 생겨났다.
독서와 글쓰기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내가 다시 꿈을 꾸고 노력하고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책과 쓰기도 분명 큰 몫 했다. 이 두 가지를 통해 마음도, 지나온 시간에 대한 기억도 충분히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40대 전에는 내 지나간 시간들이 너무 치열해서 고달프고, 힘들어 고단했던 걸로만 생각됐던 것 같은데
지금 40이 지나고 보니 내 과거가 그렇게 기특하고 찬란할 수가 없다.

나의 학창 시절.
나의 20대.
나의 30대..
반항과, 노력과, 사랑과, 실패와, 도전과, 포기와, 꿈과, 내 아이들.
단 한 가지도 우울했던 적이 없었던 것이다.
지나고 보니 소중하지 않은 순간이 없다. 실패와 아픔까지도.
지금 나는 지나온 과거보다는 다가올 미래를 준비한다. 60 정도 됐을 때 지나온 시간들을 생각하면 분명 내가 지금 느끼는 것처럼 찬란했을 테니, 걱정 말고 차분하게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불혹은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나는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 욕심이 많은 사람인데, 과한 욕심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조금씩 해보면서 훗날 이야기할 추억들을 만들어보자 하는 마음이다.

니체의 말처럼 과거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스스로 애써서 바꿀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지난 훗날엔 내가 생각했던 과거들이
어느 정도 잘 희석되어 아름답게 기억될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지나간 과거보다는 다가올 미래에 집중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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