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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지는 24개월에 시작해야 해?

안 해도 잘~~~ 만 하더라.





어느 날 갑자기 서윤이가 나한테 신나는걸 발견했대.

혹시나 어렵게 느껴질까 봐
일부러 알려주지도 않았던 '자음, 모음'을 궁금해하고 직접 써보면서 하나하나 이해가 간다는 거야.




그리고 나에게 선생님 마냥 설명해줘. 이거 엄마 알았었녜.
유명학원 인기강사처럼 귀에 쏙쏙 들어오게 설명을 해주는데 넋을 잃고 봤어.

대박이다.. 싶더라.


24개월에는 무조건 시작해야 한다는 한글나라 수업을 한 달 받은 게 전부였어 난.
그것도 한 달 해보니 답이 딱 나오더라고.

일주일 한번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글자를 익힌다는 취지는 참 좋은데

일주일 한 번으로 긴 간격을 두고 애들이 흥미를  느낀다는 게 괜히 마음에 걸리더라.


한 달도 못 채우고 그만두고 나서 집에서 함께 할 수 있는

매일 쉽고 편하게 접할 수 있는 것들로 조금씩 한글 놀이를 시작했어.

괜히 들으면 멀미 나는 자음 모음 설명도.. 당연히 없었고
기억니은, 아야어여 그 흔한 벽보 하나 안 걸고 우리 집 방식대로 무식하게 돌진을 했지.
체계적인 학습은 아니었지만 하루하루 늘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는 학습 아닌 놀이.

그게 전부였어.


책을 많이 읽어주고
엄마랑 책 제목을 찾아보며 놀기도 했고.
엄마가 글자 쓴 종이로 가게놀이며 낙서며 시장놀이며.. 다양하게 놀기도 했어. 크레파스로 그리고 그 위에 색깔을 글자로 써줘서 지나가며 볼 수 있게 해주기도 하고 좋아하는 캐릭터를 이름 붙여주기도 하면서.

학습지를 꾸준히 한 아이들은 어쩌면 더 빨리 읽고 썼을지 모르겠지만
서윤이는 읽는 것보다 쓰는 게 먼저 된 아이였고
쓰기가 되자 읽기에 속도가 붙었던 것 같아.



정말 나도 신기할 정도로 속도가 붙고
글자를 이해하고 있더라.

한글나라가 답이 아니라
노출과 꾸준함이 답이라는 걸 

서윤이 한글 떼는 과정으로 난 다시 한번 느꼈어.


엄마와 책 읽는 그 시간.
그 미치는 시간..
커피 마시며 버티는 그 미칠 시간..
입에 침이 마르고...
하품해서 눈이 짓무르던 시간...
안 보려 해도 시계 보면서 가슴이 답답해지던 그 시간..
내가 사준 그 책들 다 불태우고 싶던 인내의 시간..


하품하며 눈물 질질 흘려가면서 책 읽어주는 엄마와 
또또또!! 쫑알대는 아이의 시간은
단순한 책 읽어주고 듣는 시간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 이제.


그림을 보며 상상하는 시간
글자를 보며 한글을 상상하는 시간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교감하는 시간
잠을 이기며 인내심을 키우는 시간
또또 반복하며 집념을 배우는 시간
... 그리고 엄마는 참을 인 백번으로 몸에 사리가 덕지덕지 생기는 시간인 게다..

그 시간을 처절하게 보내고 나니
자음과 모음은 알려주지 않아도 되는 학습 정도라고 당당히 말하고 싶어.
학습지보다 엄마랑 읽는 책이 더 한글 공부에 효과적이고
잘 만들어진 코팅 빳빳한 낱말카드보다
스케치북 북북 찢어 엄마가 써주는 너덜거리는 낱말카드를 더 사랑해주는 아이라는 거.
매일매일 밥 먹듯.. 보이는 글자들을 이야기해주고..
물어보는 질문에 정성껏 대답해주는 평범함이
한글 떼기의 기본이자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는 걸.


정말..
학습지 없어도 다 읽고 쓰고 이해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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