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은 스케줄이 아니었다.
남편의 49제를 올린후엔 그의 영혼까지 떠나버린 듯 했다.
그와 함께 살았던 32년, 함께 했던 시간 중 가장 행복했던 때를 떠올렸다.
당시엔 불만이었고 고통이었지만 세월이 가르쳐준 겸손 탓인지 아니면 포용 탓인지
32년 전 불만과 고통마저 그리웠다.
석훈은 회사에선 유능했지만, 집안에서는 우유부단했다.
경이를 향하는 소곤거림과 꾸중 속에서 그는 TV 화면만 바라보며 귀를 막았다.
방패막이가 되어주지 못한 현실은, 경이의 영혼을 서서히 얼어붙게 만들었다.
경이가 나타나면 말끝이 달라지는 시누이들의 소근 거림에서도,
어머니의 이유 모를 꾸중에서도 단 한 번도 경이를 지켜주지 않았다.
남편이 방패막이가 되어 주지 못한 현실은 경이의 영혼을 점점 혼란에 빠뜨렸다.
경이는 왜 그토록 자주 야단을 맞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 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방법은 침묵하는 방법뿐이라고 여겼다.
어느 해 새댁시절 시댁에서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시댁 식구들 식사가 끝나고 난 뒤,
남은 밥상 위엔 파헤쳐진 김치와 나물,
흩어진 멸치볶음과 파래무침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경이는 상 바닥엔 흘러내린 국물과 국그릇, 젓가락들을 바라보며,
밥 한 덩이를 국에 담가 물 마시듯 삼켰다.
조용히 상을 치우는 그녀의 손끝에는 피로와 체념이 묻어났다.
냉장고 옆 거울 속, 경이는 총기 없는 눈과 흐트러진 머리카락, 무릎 나온 바지와 늘어난 티셔츠를 보았다.
옷에 튄 김치 국물마저, 오늘 하루의 흔적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녀의 눈은 캄캄한 우물 같았다.
그녀의 심장은 무겁게 내려앉았고, 숨조차 조심스레 쉬어야 할 것 같았다.
그 안엔 또 한 명의 미친년이 서 있었다.
알 수 없는 통증이 그녀를 지그시 누르고 있었다.
그 감정이 어디서 시작된 건지 경이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날 들린 날 선 목소리와 시선이, 지금도 경이를 캄캄한 우물 안에 가둔 것만 같았다.
석훈은 베이비붐 세대의 끝자락에 태어난, 평범한 한국의 직장인이다.
석훈은 아이들에게는 다정한 아버지였고, 어머니에겐 순한 아들이었으며, 형 석철에겐 고분고분했다.
경이는 부유한 농부의 막내딸로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았으며 부모님 또한 그녀를 신뢰하였다.
경이는 대학 졸업 후 메이크업을 배웠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욕구를 메이크업으로 대신하었다.
스텝 시절엔 눈물 나는 혹독한 훈련을 견뎌냈다.
결혼 전엔, 명절이나 부모님 생신이 다가오면 밤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갔다가
새벽 기차를 타고 다시 일터로 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버텨낸 시간 끝에 강남에서 중견 메이크업 샵을 열었다.
쉬지 않고 일한 덕분에 결혼 6년 만에 대출한 푼 없이 강남에 내 집도 마련했다.
수입은 남편보다 많았다.
경이가 이룬 성취는 누구에게도 말해 본 적 없었다.
하지만 그녀를 지켜주지 않는 눈빛 앞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었다.
결혼과 동시에, 그녀의 샵은 빠르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명절, 제사, 생신, 여름휴가까지 그녀를 위한 배려는 없었다.
시댁엔 ‘일터’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일하는 경이를 배려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의 시간도, 손님도, 사전 예약도 그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매년 경이는 전업주부인 주희의 스케줄에 맞춰 움직였고,
혹여 잊기라도 하면 첫 명절의 호통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그녀는 어김없이 주희에게 불려 다녔다.
경이는 그때마다 ‘나는 나의 주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말할 수 없었고 그저 침묵했다.
이렇게 죽어지내야 평화롭다는 걸 가르치기 위해 첫 명절날 그렇게도
요란하게 경이를 잡았던 것일까.
예약은 취소됐고, 손님은 줄어들었으며, 결국 샵을 접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때 어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이럴 때 쓰라고 돈 버는 것이다.”
월급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였던 스텝 시절,
고향에 갔던 경이는 친정엄마에게 교통비를 받아온 적도 있었다.
부끄러운 봉투를 내밀면 엄마는
“괜찮다, 너나 써라” 하며 돌려주셨었다.
친정과 시댁의 차이일까?
사람의 차이일까?
경이는 인간의 마음을 헤아릴수록 점점 더 수수께끼 같은 바다로 나아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되물었다.
‘이럴 때 쓰려고 인서를 화장실에 가두고 돈을 벌었던 걸까.’
샵에서 쓰던 다채로운 색조 팔레트들,
아직 비닐도 뜯지 않은 새 립스틱들을 조카와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다.
족제비 털로 만든 최고급 브러시는
검은색 3단 메이크업 박스에 고이 담아 두었다.
결혼식장마다, 땀과 눈물로 번진 얼굴마다 정성껏 얹어주던 그 결의와 집중도
이제 손끝에서 조금씩 빠져나가고 있었다.
T존에 하이라이트를 얹고, 코에 섀도를 넣고,
볼에 사선 치크를 발랐던 순간들이 거울 너머로 천천히 지워지고 있었다.
주말이면 혼주와 하객들로 북적이던 작은 공간.
이제 그녀는 조용히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추고 있었다.
얼굴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낯설게 침묵하는 자신의 두 손이었다.
다섯 살 인서가 울던 화장실 문 앞에서도, 그녀는 브러시를 내려놓지 못했다.
그땐 그래야만 한다고 믿었다.
그 순간만은 ‘엄마’가 아니라
어떤 틈도 보여서는 안 되는 ‘직업인’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돌이켜 보면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무장이었을지도 모른다.
IMF 직전, 그칠 줄 모르던 금리.
내 집마련을 위해 대출한 중도금 삼천만 원 이자만 매달 사십만 원을 육박했다.
석훈은 그 무렵, 다음 차시 중도금을 모으느라 절치부심했고
경이는 이자를 막기 위해 브러시를 내려놓을 수 없었다.
구석구석 먼지 한 톨 없이 닦았던 데코타일 바닥.
화장대 귀퉁이에 인서가 새겨놓은 ‘우리 가족 그림’
소파 뒤, 서툴게 써놓은 “어 마 아 바 사 랑 해요”
인서의 첫 번째 문장도 그대로 두고 떠났다.
그곳은 그녀를 먹여 살린 공간이었고,
석훈과 만나게 해 준 장소였으며,
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자리였다.
경이는 문을 닫고 열쇠를 잠갔다.
샵 안은 이제 그녀의 손길을 잃고, 고요하게 숨을 고르고 있었다.
구석구석 먼지 한 톨까지, 아이의 그림과 글자까지 그대로 남은 공간.
그 모든 흔적이, 이제는 그녀를 짓누르지 않았다.
경이는 숨을 고르고, 천천히 등을 폈다.
낯선 침묵이, 이제는 두렵지 않았다.
“아무도 탓하지 않겠다”
그저 조용히, 평화롭게 살겠다.
그 말과 함께, 그녀의 어깨가 조금은 가벼워졌다.
마치 오래 묵은 공기가 빠져나가듯, 마음속 구석이 서서히 밝아왔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미소가 올라왔다.
오늘 하루, 경이는 자신에게서 작은 평화를 찾아냈다.
운 좋게도 그 무렵, 가입해 둔 조합주택은 큰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인서가 여섯 살이 된 여름,
샵을 처분한 목돈을 보태 경이네는 대출 없이 새집에 입주할 수 있었다.
새 동네, 새 아파트.
온 세상이 불비를 맞는 듯한 뜨거웠던 8월 15일,
그들도 해방처럼 이사를 했다.
짐이 실리고, 석훈의 차에 시동을 거는 순간 인후가 보이지 않았다.
작년에 기저귀를 뗀 어린 인후 아기씨는,
북새통이 싫었는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인후야- 인후야-인후 어딨 니?”
경이와 석훈은 골목마다 목청껏 불렀다.
철철 울며 동생을 찾던 인서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한 시간 넘게 찾아 헤맸던 인후는
뒷동 2층 계단에 천연덕스럽게 앉아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두 자매의 울음이 여름의 무더위와 매미 소리 사이로 흘러내렸다.
그날을 기점으로, 경이는 오롯이 아이들과 함께하는 삶을 시작했다.
남의 손에 맡겨 키우던 시간을 접고, 전업주부가 된 것이다.
내 집 마련의 기쁨은,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그것도 처음,
누구의 도움도 없이.
단 한 푼의 대출 없이 두 부부의 힘만으로 이루어낸 집이었다.
나무와 건물도, 뜨거운 햇빛, 매미 울음까지
모두 경이를 축복하는 듯 반짝였다.
그 밤 경이는 사흘 동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불안도, 원망도 없었다.
오직 ‘내 집’이 있다는 사실 하나가 그녀를 들뜨게 했다.
평생 빌려 살던 삶에서 벗어난 기분이었다.
그날 경이는 자신을 온전히 믿었다.
석훈과 경이는 내심 자부심을 느꼈다.
특히 경이에게, 그 집은 ‘살아낸 증거’ 같았다.
-이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창작물입니다.
일부 사건과 인물은 픽션이 가미되었으며 실존인물이나 단체와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