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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산문

존중

날 존중하는 사람 그리고 조직

by 정병진

아내가 좋았던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컸던 건 내가 아내를 짝사랑하게 내버려두지 않았던 점이다. 서로가 느낀 마음을 정직하게 나누었고 나를 희망고문하지도 않았다. 썰물 끝나고 밀물 들어오듯 자연스레 내 삶에 스며들어주는 아내가 사랑스러웠다. 고마웠다.

아내 덕에 '존중'의 중요성을 배웠다. 아내는 상대를 이런 저런 말로 '조정'하려들지 않는다. A면 A고 B면 B다. 사람 헷갈리게 하지 않고 솔직하게 방향을 제시하며 그 신념을 지킨다. 행동으로 해낸다. 그런 점이 존경스러웠다. 하늘에 계신 장모님이 생전에 그러셨던 덕인 듯 하다.

짝사랑은 싫다.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진 빠지고 지친다. 특히 상대가 부담 느끼지 않도록, 그러면서도 속내를 담아 고백했음에도 희망고문하며 선뜻 답을 주지 않는 상대는 야속하다. 내 제안, 고백 내지 다짐에 대해 '읽씹' 하는 태도는 관계에 대한 환멸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사람이든 조직이든 존중이 중요하다. 하지만 살아오며 느낀 건 그런 존중은 가족이나 배우자 외에는 현실에서 딱히 기대해서도 기대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상대로부터 존중받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미련 없이 방향을 틀어야 한다. 좋게 좋게 얘기하면 그냥 좋은 밥통이 될 뿐이다.

고민 가득한 소중한 누군가의 하소연을 들으며 다시 한 번 존중을 떠올린다. 자존감 긁힌 눈빛은 상처에 무덤덤해질 정도로 딱지가 앉았다. 당부한다. 조정 당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너를 존중하는 사람들을 찾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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