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이주의 가장 중요한 목적 중 하나가 바로 석사 유학이다. 저널리즘과 비평 이론을 정통으로 배울 수 있는 학문적 인프라가 잘 갖춰진데다 학비가 안 들고 아이들까지 독일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나라를 정하는 것까지는 했는데 막상 와보니 이런저런 어려움이 적지 않다.
우선 학교 지원에 필요한 서류를 '독일에서 원하는대로' 준비해오지 않은 건 가장 큰 패착이었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으니 이유는 차치하고, 일단 원본 개념이 한국과 다르다. 독일에서 원본은 물리적인 잉크가 묻은 직인이나 사인 혹은 압인이 눌린 문건이다. 한국은 원본 확인 숫자만 입력하면 바로 확인이 되고 원본이 여러장 나올 수 있다는 식이지만 독일은 원본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다는 주의다. 나는 고교 졸업장과 성적표, 대학 졸업장과 성적표를 전부 여러장 뽑아 갔다. 그게 원본이니까. 원본 내면 더 좋아할 줄 알고. 수능 성적은 그냥 평가원 홈페이지에서 출력했다.
하지만 독일에 온 뒤 공증 단계에서 모든 게 막혀버렸다. 원본에 대한 사본 공증을 필요한 만큼 여러장 받으면 되는데 정작 뽑아온 원본들이 하나 같이 다 제대로 인정받기 어려운 상태였다. 한글 원본만 있는 경력증명서의 경우 번역 공증을 받은 뒤 사본 공증을 추가로 받아 사본을 확보해야 하는데, 한국에 있을 때는 도대체 이게 뭔소린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모교 행사를 진행하며 친분을 쌓아둔 교직원 형님, 고향 고등학교 선생님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필요한 형식의 원본 서류를 우편으로 받았다. 학부 것은 왔고, 고교 서류는 오는 중이다. 나머지 경력증명서는 시간 여건상 번역 및 사본 공증을 다 해놓을 수 있을지 따져보는 중이다.
대학 서류 준비의 답답함은 비자 문제로도 이어진다. 에이전시를 고용했지만 뒷조사를 해보니 어린 유학생들만 받아왔지 우리 같은 가족 단위로는 처음이라고 한다. 아이들까지 비자 수령을 위한 요건을 충족시켜야 할 정도로 이곳 뉘른베르크는 까탈스러운 곳이었다. 에이전시는 이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고 인맥도 전무하며 그나마 시키는 문서 작업도 내 이름을 누락하는 식으로 형편이 없다. 사기 당한 듯.
공부가 손에 안 잡혀...
교만했다
누굴 탓하랴. 한국에서 퇴사 시점을 너무 출국일에 바투 잡은 것부터 계산 미스였다. '자기가 다 인맥이 있으니 걱정말고 믿으라'는 유학원 말을 더 면밀히 따지지 않은 내가 잘못이다. 한국에서의 방송 일체를 접는다는 감상에 사로잡혀 현실적인 준비에 소홀했던데다 너무 독일 이주를 만만하게 봤던 마음이 결정타였다. 교만했다. '정직'의 가치를 배우고 지키는 게 우리 부부의 신념이지만 정작 실생활 속에서 이를 늘 지켜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일을 해나간다. 가뜩이나 각 학교 전형에 맞게 입시를 준비하고 어학 자격증을 따내는 일에 시간을 쏟아도 시원찮을 판에 더 시간을 쪼개서 힘을 내 움직여본다. 사람 말 믿고 슬렁슬렁 준비한 내 탓이다. 조금은 느리지만 합법적으로 잘 준비하다보면 결국 다 이뤄질 거라는 누군가의 위로에 마음을 추스린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편 1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