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 쯤이었을까요. 한창 독일로 떠날 준비를 하던 중 딸아이가 어디선가 제 이야기를 듣고는 툭 건넨 말입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잘한 결정일까, 당장 뭐 먹고 사나. 걱정하자면 끝이 없었습니다. 아이는 떠난다는 의미가 살갗에 와닿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슬슬 친구들과 헤어질 생각에 마음이 고단했던 것 같습니다.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이라는 인물이 '본토, 친척, 아비를 두고 떠났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우르, 지금의 이라크 지역 사람이었기에 이라크 자이툰 파병 당시 이 대목을 반복해 읽으며 깊이 묵상하곤 했는데요. 그땐 고작 6개월 파병이었지만 이번 독일 행은 기약이 없어 차원이 달랐습니다. 막연한 기대와 두려움 속에 2019년 한 해를 보냈습니다.
2019년은 '내려놓음'이었습니다. 앵커직을 스스로 내려놓았고, 익숙한 환경을 내려놓았습니다. 마음을 비웠고 한국에서의 온갖 미련을 차근차근 내려놓는 시간이었습니다. 관계도, 재정도 다 내려놓고 떠났습니다. 비우고 또 비워서 지난 30여년 세월을 홀가분하게 만드는 해였습니다. ⠀ 2020년은 채우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새 지식과 새 경험을, 신앙 차원에선 새 믿음과 성령을 채우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새로운 관계와 새로운 일을 채우고 세계 각국에서 모인 사람들과 선의의 경쟁도 하며 제 삶을 새롭게 재구성하려 합니다.
아이들도 새 학교, 새 친구와의 만남을 통해 그 가늠할 수 없는 가능성의 그릇을 채워나가길 바랄 뿐입니다. "나 친한 친구 셋이나 사귀었어" 독일 생활을 자기 삶에 빠르게 담아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 틀린 도전은 아니었구나' 점검해봅니다.
뉘른베르크 크리스마스 마켓 관람차 안에서 찰칵
저와 연을 맺어온, 관계의 새 술을 함께 담그는 모든 분들께 고맙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가 과거에 대해 아는 것은 오로지 과거에 대해 가지고 있는 현재의 기억 뿐이라고 말했다죠.
이상했던, 상처 투성 기억들은 국경을 건너오며 다 버렸습니다. 현재 제 곁을 지켜주신 소중한 분들 덕에 새 힘을 얻고 다시 도전합니다. 새해 더 단단해지시길. 한결 여유로워지길. 맑은 호흡을 자주 들이내쉴 수 있길.
Ein Jahr ist schon wieder vorbei. Ich wünsche Ihnen und Ihrer Familie eine gute Zeit und für das kommende Jahr 2020 alles Gute, newsdad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