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써야 할까요?

제게 듣고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by 정병진
새로 이사한 함부르크. 귀한 집.


글을 너무 두서없이 쓰는 것 같다. 브런치에 남기는 글이 내킬 때나 잠깐 끄적이는 온라인 낙서장으로 전락하지 않게끔 뭔가 조치를 취하고 싶다.


뭘 할 수 있을까. 목차를 적어본다. 내가 쓸 글의 목차다. 큰 주제와 굵직한 줄기를 잡고 글의 가지를 쳐나가다 보면 글의 방향이 잡히지 않을까.


우선 생각해본 목차는 다음과 같다.



1. 코로나19(COVID-19)

비자, 어학원, 잠겨버린 일상


2. 전환(Übergang)

에이전시, 렌터카, 집


3. 아이들(Kinder)

학교 어학코스, 유치원, 타게스플리게


4. 부부의 세계(Ehepaar)

서로의 발견, 아내의 상처, 나의 이기심


5. 일과 학업(Arbeit und Studium)

VJ, 리포터, 미니잡


6. 독일어(Deutsch)

Test-DAF, Telc, 탄뎀


7. 불안(Angst)

대학원, 체류 허가, 돈


8. 친구(Freunde)

긴급 상황 구원투수 도미닉, 우리집 수호천사 다니엘, 구수한 디아나, 자이툰 전우 동혁


9. 신앙(Glaube)

태글리시 말씀필사, 신앙 디톡스, 광야 훈련


10. 유럽 로망스(Europa Illusion)


독일에 넘어오자마자 갑자기 코로나19가 터졌다. 우리가 겪은 독일 일상은 외형적으로 일그러지고 있었다. 아이는 학교에 가지 못했고 어른들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체류를 위한 각종 업무들이 온라인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동양인들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몇 달 간 잇따랐다. 대학에선 여름학기가 통째로 날아갔다. 학교 수업은 온라인으로 대체됐다. 아동 학대와 가정 폭력이 늘었다. 감염자는 주기적으로 폭증했다. 2020년판 전환시대의 논리는 이처럼 코로나19로 귀결된다.


이런 전환사적 커다란 흐름을 내 지인들은 한국에서 보낼 터이고 우리 가족은 독일에서 겪고 있는 셈이다. 이방인이지만 독일 사회에 스며들고자 마음 먹은 사람으로서 현재의 상황을 관찰하고 기록해두는 건 의미있는 일인 것 같다.

Roller 타고 공원 길도 슝슝. 우리 딸래미.


그런데 한편으론 이렇게 큰 담론을 목차대로 엮어내기에 아직 내 글쓰기 내공이 일천하다. '처음부터 대작을 만들 셈이냐' 이런 반문이 든다.


산문, 에세이. 이런 글의 장르가 지닌 특성이 뭘까. 일상에서 인상적인 경험을 길어올린다. 이 경험을 이야기로 풀어내다가 끝에 가선 삶의 의미를 반추해볼 만한 뭔가를 독자와 공유한다. 내게 산문집이나 수필은 그런 느낌이다. 그렇게 본다면 위에 적은 목차는 너무 '르포' 같은 느낌이 든다. '르포 에세이' 이렇게 이름 붙이면 되려나?


아니면..


조금 더 말랑말랑한 목차를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예를 들면 전체 큰 줄기를 먼저 5개로 정하는 것이다. 아직 뭘 써야할지 감이 안 잡히니까 1부, 2부, 3부, 4부 5부 이렇게 정리한다.


그 다음에는 내가 독자들에게 건네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일지 생각해본다. 결국 하고자 하는 말이 없으면 날이 무딘 창 같은 글이 나올 것 같다.


그런데 굳이 내가 특정 메시지를 염두에 두고 글을 써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무슨 계몽가도 아니고. 그것보다는 글에 일관성, 긴밀성을 부여해주는 통 큰 주제를 잡고 싶다. 5개 섹션으로 나누어 세세하게 풀어냈을 때 읽는 사람도 느끼는 바가 있고, 누군가의 일상에 조금이나마 힘이 될 수 있는 그런 내용으로 말이다.


뭐가 있을까.

작업실이자 강의실이자 안방이자 아들래미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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