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지키고 돕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헌신을 해야 하죠. 때론 희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뭇 신성하기까지 한 어감입니다. 그 왠지 모를 신성함을, 가까이 다가서기 어려운 느낌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사람들.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환경보호에 대한 마음의 장벽을 허무는 사람들.
'보호자들'을 만나봅니다.
* 이 인터뷰는 제로웨이스트숍 보호웍스와 함께 합니다.
제로 웨이스트 숍(zero waste shop). 아직 국내에는 흔하지 않은 콘셉트인 것 같아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 보호웍스 브랜드를소개해주세요.
제로 웨이스트는 유럽에서 시작한 '환경을 보호하는 라이프 스타일'이에요. 지금까지 우리가 쉽게 사용해 온 일회용품, 일회용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했죠. 독일 베를린에서 플라스틱을 대체하는 제품들을 모아 판매하는 콘셉트 스토어가 처음 오픈됐어요. 저도 독일에 와서 이런 콘셉트 스토어를 처음 접했는데 환경 보호를 위해 평소 고민하던 문제들을 많이 해결할 수 있었어요. 국내에도 저와 비슷한 필요가 있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았고, 브랜드까지 시작하게 되었어요.
특별히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계기는.. 아기 고양이로부터 시작되었어요. 2019년 3월 한국에서 새끼 고양이를 구조했는데, 그때 제 삶이 엄청 바뀌었어요. 죽어가는 고양이를 구조해 살리고 6개월 정도 임시 보호하는 동안 많은 부분에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어요.
제일 먼저 동물권에 대한 책을 읽게 됐고 이내 육식을 끊었습니다. 책에 공장식 축산업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요. 축산업이 동물 복지를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런데 이 축산업이 환경 문제에도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더라고요. 그때부터 환경 문제에 적극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스포츠웨어 브랜드 파타고니아 Patagonia의 이본 쉬나드가 쓴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이라는 책 영향도 크게 받았어요. 환경 보호를 나 혼자 할 게 아니라 주위에 적극 알리고 권면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러던 시점에 마치 계획된 것처럼 독일로 이사 오게 됐어요. 독일은 현재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친환경 정책을 펴고 있죠. 앞서 얘기한 제로 웨이스트 숍뿐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다양한 친환경 제품, 환경 보호 이슈를 쉽게 접하게 됐어요. 환경에 관심을 안 가질 수 없는 곳에 왔달까요.
집 앞에서 구조한 아기고양이 '봄'이와 딸 결이에요. 봄이를 구조한 사건은 저 뿐 아니라 가족 모두의 가치관을 바꾸거나 새롭게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제로 웨이스트 콘셉트 스토어에요. 가게 이름은 '포장하지 않는 가게'에요.
그렇군요. 유럽에서 친환경 정책을 가장 적극적으로 펼치는 독일. 직접 겪어본독일의 환경 인식은 어떻던가요? 좀 더 자세히 소개해 주세요.
가장 놀라웠던 건 독일 뉴스에서 환경 문제를 굉장히 많이 다룬다는 점이에요. 독일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그냥 티비 화면만 보는데도 '아, 환경 이야기를 하는구나' 싶은 뉴스들이 자주 다뤄집니다. 길거리 옥외광고에도 기후위기, 기후변화, 친환경 같은 단어들이 가득해요.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를 아실 거예요. 툰베리로부터 시작된 '미래를 위한 금요일_기후위기, 환경보호에 대한 이슈를 가지고 금요일마다 학교에 가지 않고 시위를 하는 모임'이 독일에서 매우 크고 영향력 있습니다. 10대, 20대들의 환경보호 데모를 거리에서 자주 볼 수 있어요.
엄청나게 비싼 전기 요금은 충격적이었어요. 독일 전기 요금이 비싸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집에서는 점퍼 입고 지낼 정도로 아껴 썼는데, 정산하고 보면 한국보다 3배 정도 비싸게 나오더라고요.
전기 요금 단가가 비싼 원인은 독일이 원자력 발전으로 전력을 생산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독일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2011년부터 원전을 폐쇄했어요. 그런데 에너지 수요는 이에 발맞춰 확 줄지 않았죠. 아무리 아껴 쓴다 해도 기본적으로 생활하는 데 필요한 전기 사용량이 있으니까요.
이를 충당하려고 에너지 수급의 상당 비율을 프랑스에서 수입합니다. 참 아이러니한 지점이에요. 재생에너지 비율을 계속 늘리고 있지만 재생에너지 역시 개발 비용이 필요할 뿐더러, 생산성과 효율성 자체는 원자력을 따라가기 어려운 게 맞습니다.
그럼에도 원전 폐쇄를 추구하고 비싼 전기 요금을 감당하는 독일인들의 인식 자체가 평가할 만한 것 같습니다. 독일 지인들에게 물어봤어요. 전기요금 비싼 거 힘들지 않냐고. 다 힘들대요. 본인들도 비싼 거 다 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미래를 위해서 우리 세대가 감당해야 한다고 덤덤히 말하는 사람들이 다수였습니다.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아요. 한국처럼 후텁지근한 기후가 아닌데다 집들이 대부분 오래돼서 설치하기 어렵기도 하지만 에어컨이 기후위기를 심화시킨다는 데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거든요. 불 환하게 다 켜놓고 사는 집을 찾기 힘들어요. 대신 멋스러운 초를 켜 두죠. 불편하지만, 그 안에서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는 분위기? 그런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또렷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확실히 일상에서도 한국보단 독일이 환경 문제를 생활 속에서 더 피부에 와닿게 느낄 수 있는곳 같네요. 독일에서 친환경 제품을 자주 사용하다 보니 한국에 소개하고 싶어졌다고 인터뷰 초반에 말씀하셨는데, 독일의 친환경 제품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음...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일단 마트 풍경이 재미있어요. 한국에서도 '용기 내'라는 무포장 프로젝트가 활발히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독일은 어느 마트에서나 무포장 선택이 가능해요. 무포장으로만 장을 보는 마트도 있고요. 사람들은 장 볼 때 집에서 과일 주머니, 야채 주머니를 가져와 양파 둘, 감자 세 알 이렇게 담아가는 식이에요. 미처 야채 주머니를 챙기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소분 비닐을 비치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생분해 비닐이에요. 독일에서 일반 비닐을 쓰는 업체를 찾는 게 오히려 쉽지 않을 겁니다.
또 장바구니! 마트 종이 가방에 식료품을 담아가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모두 본인 가방에 담거나 면으로 제작한 장바구니를 주섬주섬 꺼내 물건을 담죠.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각자의 장바구니를 꺼내는 모습이 흥미로웠어요. 야채 주머니나 장바구니 같은 건 친환경 생활의 가장 기본 단위입니다. 환경을 생각하는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만이 쓰는 제품이 아니라 모두가 당연하게 쓰고 있다는 점이 한국의 생활상과 근본적으로 다른 지점이에요.
독일 마트에서 비치되어 있는 생분해 비닐봉투에요. 하지만 이 마저도 사용하지 않고 대부분 자기 자기 장바구니에 그냥 담는 경우가 많아요.
무포장으로 달걀 사기. 매장에 구비되어 있는 재생 종이 케이스나 개인 달걀통에 담아 낱개씩 원하는 만큼 살 수 있어요.
친환경 제품을 쓰는 것 외에도 독일 사람들이 환경을 보호하는 라이프 스타일이 있을 것 같아요. 국내에 소개하고 싶은 부분이 있나요?
독일 하면 '자전거 타기'를 빼놓을 수 없어요. 이곳 아이들은 돌이 되기도 전에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고, 두 돌이 되면 이미 두 발 자전거를 타요.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 학교에서 단체로 자전거 주행 시험을 치고요. 경찰관 감독하에 이루어지고 명예 자전거 면허증도 나와요.
자전거 타기가 꼭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일만은 아니지만, 오래 이어져 온 자전거 타는 문화가 이제는 환경 보호와 여러 지점에서 맞닿아 있습니다. 제일 큰 건 탄소배출이 없다는 점이죠.
아이들은 대부분 자전거로 등하교 합니다. 서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아이들 통학 차량 정체가 없는 편이에요. 도심 안에서는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정말 많고, 주말에는 온 가족이 자전거 하이킹을 하죠. 자전거 이용률이 국내에 비하면 독일은 정말 높은 편이지만 그럼에도 차 대신 자전거를 이용하자는 캠페인이 계속되고 있어요.
좋아하는 친환경 브랜드가 있나요?
파타고니아요! 환경과 관련해 굉장히 주체적인 브랜드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파타고니아 초기 회사였던 ‘쉬나드이큅먼트(chouinard equipment)’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어요.
여긴 회사의 모든 구성원이 등반가였고, 서퍼였으며, 환경운동가였어요. 그들이 만든 제품에 진정성이 느껴졌던 배경이라 할 수 있는데요.
그러니까 자신들이 직접 즐겨 쓰는 장비를 어떻게 하면 더 견고하게 만들 수 있을까,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제품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사업을 진행했기 때문에 회사도 크게 성장했고, 저도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압도적으로 성공한 파타고니아의 창업자, 이본 쉬나드를 닮고 싶은 이유예요.
특히 본사뿐만 아니라 협력회사, 하청 공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정에 친환경 시스템을 구축하고 친환경 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시하는 모습에 큰 영감을 얻었습니다. 멋져요.
진경 님이 가장 보호하고 싶은 대상은 무엇인가요, 자연? 혹은 가족인가요?
아무래도 아이들이죠. 두 아이의 엄마로서 미안하고 안타까운 순간이 많습니다. 특히 막내는 태어나면서부터 호흡기가 약했어요. 미세먼지 때문에 늘 모세기관지염을 달고 살았습니다. 호흡기 질환 때문에 열이 자주 나고 늘 마스크를 쓰고 살아야 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공기 좋은 환경을 찾아 독일로 왔는데, 코로나 팬데믹으로 여전히 마스크를 착용한다는 게 참 마음 아파요. 아이들을 제대로 보호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늘 고민합니다.
하지만 이건 앞으로 다가올 기후 위기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무서운 생각도 들어요. 내 아이들을 위해, 이웃과 친구의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환경은 제가 지키고 싶은 아주 중요한 대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