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무해한 삶’이란 표현이 어울리는 두 사람을 만났다. 흙으로 다구(茶具)를 빗고 차를 우려 손님에게 내어주는 이혜진, 홍성일 작가. 옹기를 배우러 보성에 왔다가 부부의 연을 맺은 두 사람은 그렇게 자연스레 보성 산자락에 스며들었다.
천만 인구가 서울에 모여 사는 것 자체가 환경에는 이미 큰 부담이다. 서울을 떠나 자연을 벗 삼아 20년 넘게 살아온 두 작가의 삶은 그런 면에서 친환경적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도시를 무작정 떠날 수는 없는 법.
독자들도 두 작가의 이야기를 곱씹다 보면 뭔가 영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조금이라도 자연에 부담을 덜 주는 나만의 길을 찾고 있다면 말이다.
혜진: 환경을 위해 ‘특별히 노력해야지’가 아니라 그냥 ‘보이는 게 다 자연’이어서 조금 더 친환경적인 삶을 사는 것 같아요. 저희 부부가 원래 ‘도시가 싫어, 자연에서 살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이곳을 선택해서 내려온 건 아니거든요. 뭔가를 배우러 왔는데 그 배움터가 시골이었을 뿐이죠.
성일: 제 개인 성향은 오히려 미니멀리스트(minimalist)가 아니라 맥시멀리스트(maximalist)에 가까워요. 서울에서 태어나 30년을 살았고 아직도 도시 문화에 젖어 있죠. 그런데 보성에 내려와 20년을 살면서 삶의 선택지가 하나 더 늘어났습니다. 서울에서만 쭉 살았다면 선택의 폭이 그리 넓지 않았겠죠. 테이크아웃으로 커피를 사면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커피를 자연스레 마셨을 것이고 빨대를 비롯해 각종 일회용품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노출됐을 겁니다.
이런 가운데 ‘플라스틱이 환경에 유해하다’, ‘기후 위기가 심각해졌다’는 이야기를 듣곤 해요. 그러면 아내가 뭔가 작업을 하다가도 ’이 과정에선 굳이 플라스틱을 안 써도 되지 않을까’하고 이야기를 툭 던져요. 그러면 저도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여기선 선택을 할 수 있으니까.
홍성일(좌), 이혜진(우) 작가. 사진 제공: 이혜진 작가
보성에 살면서 라이프스타일의 선택지를 하나 더 얻으신 셈인데, 환경을 보호하는 쪽으로 선택한 구체적인 사례를 듣고 싶어요.
성일: 저희가 노산도방을 운영하면서 가장 확실하게 실천하게 된 환경보호는 ‘포장’이에요. 도자기를 10년 정도 팔면서 사용한 완충제, 이른바 ‘뽁뽁이’만 하더라도 지구를 몇 바퀴 감을 정도일 거에요. (웃음) 엄청나게 튼튼하게 포장해야 하니까. 배송 과정에서 누가 집어던지더라도 안 깨지게끔 싸려고 노력했거든요. 그때는 이게 환경에 유해할 거라는 생각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어요.
혜진: 그저 내 작품을 고객이 큰 돈을 주고 샀는데 깨지면 안 되지 싶었던 마음이 컸던 거죠. 그런데 지금은 저희가 고객에게 ‘쓰레기를 담아서 주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에요. 저희의 귀한 작품을 쓰레기에 싸서 보내고 싶지 않은 거에요.
인식이 완전히 바뀌어버렸네요. 관점이 이렇게 변할 정도라면 뭔가 계기가 있었을 것 같아요.
성일: 맞아요. 예전에 러시아에서 제작된 컵 두 개를 선물 받았던 일이 결정적이었죠. 포장이 정말 허접한 거에요. 얇은 종이 상자에 꾸깃꾸깃 마분지 몇 개 넣어서 그 얇은 잔을 안에 넣었는데 안 깨진 거에요. 러시아에서 한국에 오기까지. 우리 입장에선 그게 혁명적이었죠.
유리병 제품을 구입하던 어느 해외 직구 사이트를 통해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제품이 다 종이에만 포장돼 오는데도 안 깨져서 오더라고요. 그래서 그 포장지를 버리지 않고 모아 저희 작품을 전국에 배송할 때 사용해봤어요.
안 깨지던가요?
성일: 안 깨지더라고요. 그래서 종이 완충제를 파는 곳을 찾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에는 포장 단가가 기존보다 10배나 더 들더라고요. 그런데 아내가 이 부분에선 단호하게 잘라 말하더군요. “이건 돈 아낄 문제가 아닌 것 같아” 나중에는 종이 완충제를 제작하는 업체가 많아져서 조금 더 저렴한 비용으로 ‘친환경 포장’을 할 수 있게 됐죠.
혜진: 더 나아가 저희는 요즘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기도 해요. 종이 완충제 말고 신문지에 싸서 보내도 되겠느냐고 말이죠. 종이 완충제 또한 결국 완충제를 새로 제작하는 과정을 거치며 자원을 낭비하게 되잖아요? 하지만 신문은 이미 생산돼 나와 있으니 이를 ‘재사용’하면 추가적인 낭비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재사용은 그런 면에서 굉장히 중요한 실천이에요. 이를 위해 저희는 택배비를 한 번 더 지불해요. 보낸 포장지 돌려받는 택배비요. 판매할 때부터 미리 공지를 해요. 제품을 받으시면 포장지는 돌려보내주실 수 있겠냐고 말이죠.
노산도방의 도자기와 다구는 재활용 신문지와 재활용 택배박스를 활용해 배송한다. 사진 제공: 이혜진 작가
성일: 맞아요. 그냥 새 포장을 원하시는 분들은 그에 맞춰 배송해드리지만 신문지도 괜찮다, 재사용을 위해 포장은 다시 돌려보내겠다 동의해주시는 분들과는 그렇게 진행하는 거죠.
그렇군요. 고객들과도 자연스럽게 환경을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아요. 혜진 작가님은 언제부터 환경 문제에 관심 갖기 시작하셨나요?
혜진: 글쎄요. 환경과 관련해선 살면서 접한 다양한 지식들이 대부분이에요. 이런 저런 정보가 다층적으로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졌던 것 같아요. 중학생 때 도서관 사서였는데, 이때 읽었던 책들이 지금 제 삶에 여전히 영향을 끼친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삶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여왔었던 거죠. 대학생 때도 환경 문제에 대해 조금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지식이 많지는 않지만, 환경감수성이 자연스럽게 발달했달까요? 제 학창 시절엔 사회적 담론이 주로 ‘성장’이었어요. 자연을 개발해 산업과 경제를 일으킨다는 담론이 당시 주류였지만, 글쎄? 정말 그럴까? 늘 반문했던 기억이 나요. 그런 사람이었어요.
환경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전 수준보다 훨씬 강해진 요즘에는 그때 반문했던 생각들이 맞았구나 싶을 때가 많습니다.
혜진 작가가 학창 시절 품었던 생각은 당시 시대상에 비춰보면 일반적이지 않았다. 반면, 남편은 지극히 그 시절에 어울리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통신과 교통 기술이 발달한 덕분에 보성에서도 주변 도시까지 1시간 내에 이동할 수 있는 지금, 두 사람은 보성에서 20년째 평화로운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이 하모니 속에서 가장 많이 변한 사람은 아무래도 홍 작가였다.
나무, 면, 도자기 제품 등의 사용을 통해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보는 건 어떨까? 사진 제공: 이혜진 작가
성일: 얼마 전 HBO에서 제작한 5부작 드라마 ’체르노빌’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비롯해 원전 관련 뉴스를 단편적으로 접하긴 했지만 이 문제가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서는 체감하지 못했었거든요.
체르노빌 폭발 이후 러시아에서 발생한 서사를 그대로 고증해내려고 노력한 이 작품을 보고 나서는 ‘야 이건, 몰랐을 때는 썼을 수 있지만, 알고 나서는 절대 써선 안 되는 물질이구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끔찍해요.
저 뿐만 아니라 환경에 관한 사람들의 인식도 그간 많이 바뀐 것 같아요. 2000년대 들어서면서 보성에 정착했는데요. 당시만 해도 도로 옆 가로수 변에다가 논에서 사용한 농약병을 그냥 버리곤 했어요. 직접 봤었죠. 20년 전에는. 당시에는 환경에 대한 제재도 없었고 저도 큰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았죠. 신혼집 앞마당의 잡초를 제거한답시고 제초제를 뿌려 꽃, 풀, 나무 할 것 없이 초토화시켜버릴 정도였으니까요.
지금은 농약 살포에 대한 행정적 기준이 대폭 강화된 상태입니다. 농사 짓는 이웃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예전보다 할 수 없는 일이 훨씬 많아졌다고 하더라고요. 농약 대신 예초기를 돌리는 모습이 더 흔해졌죠.
홍성일 작가는 어느 덧 화려한 도시의 풍경이 아닌 자연을 바라보며 자연을 읽어내는 수준에 닿아 있었다.
두 분 다구를 보면 퍽 자연을 닮았습니다. 자연에 살면서 얻는 예술가로서의 영감이 있을 것 같아요. 어떤가요?
성일: 영감이라는 게 말 그대로 영감이에요. 뭔가 교과서에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음.. 아침에 일어나서 창문을 바라보면 창 밖 상황이 시기각각 변해요. 꽃잎도, 이파리 색도, 날씨도 변합니다. 냄새도요. 온통 둘러보면 자연이죠. 그게 일상에 스며들다보니 자연스럽게 작품에 저희 생각이 묻어나는 것 같아요.
이런 원리가 아닐까요? 고려청자 중에 상감운학문 매병이 유명하잖아요. 뛰어난 작품성을 요즘에 부쩍 더 인정받고 있는데 거기 보면 학, 구름 여러 자연물이 예술적으로 그려졌습니다. 당시 이런 작품들 보면 사슴이나 개구리 같은 동물과 자연이 정말 많이 표현돼 있거든요. 왜냐하면 당시에는 눈을 돌려 주위를 바라보면 바로 그런 것들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는 분석이에요. 온천지에 자연물이 가득하니 작품에도 그 모습들이 자연스레 담기게 됐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름다운 자연 환경은 이혜진, 홍성일 작가의 작품 활동에 있어 제일 좋은 영감의 원천이다. 사진 제공: 이혜진 작가
자유로움을 즐길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작품에 큰 영감으로 다가온다는 두 사람. 코로나19 시대를 겪으며 도시를 떠나 자연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 요즘이다. 사람들의 그 근원적인 욕구와 두 사람의 삶은 필연처럼 포개어져 있었다.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의 삶은 어떤가요?
성일: 직업적 특성상 코로나 이전과 이후 저희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집에서 차를 즐기려는 사람이 늘었는지 판매량이 되레 늘었어요.
무엇보다 코로나 이전보다 이후에 저희처럼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 전까지 가끔 여기 오면 차 한 잔 마시고 예쁜 도자기 좀 구경하고 가면 되지 하는 분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비교적 젊은 연령대의 손님들이 오셔서 “사람이 적은 동네에서 사는 게 정답인 것 같아요”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것 자체가 코로나 이전과 달라진 점이에요. 자연에서 살아보려고 계획 중인 사람들이 구체적인 조언을 구하는 경우도 부쩍 늘었습니다.
혜진: 저희를 보며 ‘얘네도 (자연에) 집 짓고 사는데 우리도 집 짓고 살 수 있지 않을까’하는 친구들이 늘었어요. 이제 나이가 40~50대가 되니까 애들도 다 키워놓았겠다 삶에 다소 여유가 생긴 친구들이 많아졌는데,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나 지금까지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나 왜 아파트에 갇혀 살지?’
사계절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도도헌 내부. 사진 제공: 이혜진 작가
사실 누구나 두 작가처럼 자연 속에서의 삶을 결단하기 힘들다. 이미 앞서 밝혔듯 두 사람은 직업적 특성상 굳이 도심을 고집하지 않아도 됐다. 오히려 시골이 두 사람의 일에는 더 효율적이다.
그럼에도 작은 포장 하나부터 환경에 유해하지 않도록 바꾸는 결정, 자연이 절실한 누군가에게 실질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삶의 경험은 분명 우리로 하여금 저마다의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문득 엉뚱한 질문을 해보았다.
두 분은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으로 오고 싶으세요?
혜진: 우리 딸이 아까 그러더라고요. “굳이?” (일동 웃음)
성일: 진짜 저희 둘 다 생각해본적이 없는 질문이에요. 저희 딸아이는 본인이 직접 그린 그림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하네요.
혜진: 글쎄요.. 나는 그냥 나무?
오래 사시려고요?
혜진: 오~래 산다는 구상나무? 올리브나무? (웃음)
성일: 자기가 나무로 태어난다면 나는 그 나무에 붙어 사는 새가 될래. 하다못해 송충이라도 될래.
농반진반 주고받으며 이야기는 끝이 났다. 무엇이 되어 어디에서 만나든, 자연을 닮은 두 작가는 그렇게 자연에 무해한 삶을 오래토록 살아갈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