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들 Ep.04 가정의학과 의사 윤소정
그린피스와 함께 일주일 동안 집에서 배출되는 플라스틱을 조사했다. 재활용하기 힘든 플라스틱들이 많았다. 사진 제공 : 윤소정 님
Editor's intro
올해 초 코로나19 사태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영국 유학 중이던 가정의학과 의사 윤소정 씨는 지난 3월 한국에 급히 돌아왔다. 서울에 살려던 계획은 틀어졌고 우연히 들렀던 고흥에 어쩌다 보니 혹은 그냥 좋아서 그곳에 새 터를 잡았다.
지방에서 살 계획은 전혀 해본 적 없었던 소정 씨. 의사이자 한 아이의 엄마인 그녀는 자신의 인생이 남들 만큼이나 코로나로 인해 많이 바뀌었다고 운을 뗐다.
소정 : 원래 올해 9월에 귀국할 계획이었어요. 영국 런던위생열대의학 대학원에서 보건학 석사 과정 중이었는데, 학교가 먼저 결단을 내렸죠. 고국에 돌아가서 온라인으로 학업을 이어가라고.
런던에서 고흥으로 주거지가 바뀐 점도 커다란 변화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그녀의 인식 자체가 대폭 바뀌었다. 환경 문제를 활발하게 논의하던 영국 친구들이 인상적이었다.
소정 : 영국에 가기 전에는 기후변화, 기후위기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하는 정도였어요. 그레타 툰베리(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편집자 주)의 환경 운동 소식을 종종 찾아보는 수준이었죠.
그런데 저와 달리 영국에서 만난 학우들은 환경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강하더라고요. 일상 대화 중에도 누구 하나 가릴 것 없이 너무 당연하게 환경 문제를 꺼내고 활발하게 논의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기후 변화, 기후 위기, 플래니터리 헬스(Planetary Health), 직역하자면 행성 건강? 이런 주제들을 놓고 열띤 토론을 하더라고요.
행성 건강이요? 스케일이 크네요.
소정 : 네, 플래니터리 헬스라고 이 분야에서 자주 언급되더라고요. 하버드대학교에서 주로 강조하는 표현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간 또한 행성의 일부라는 전제가 깔려 있어요. 우리 행성의 미래가 (환경 파괴 등으로 인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경각심을 주기 위해 쓰는 단어죠.
인터스텔라 영화처럼 옥수수 외엔 경작이 불가능한 상황까지 몰리지 말자, 이런 취지일까. 행성 건강이 더 나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걸음은 단연 친환경 식생활이었다.
소정 : 학교나 일반 식당 어느 곳을 가더라도 플랜트 베이스드(plant-based) 식단이 따로 있고 베지터리언, 비건 메뉴까지 각각 잘 나뉘어 있더라고요.
플랜트 베이스드 메뉴는 뭔가요?
소정 : 탄소 배출을 줄이는 방식으로 재배된 메뉴를 가리켜요. 그 밖에 다양한 유기농 식료품을 살 수 있는 유기농 매장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는 점도 기억나고요.
소정 씨는 이런 인프라가 영국을 대표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빈부격차가 극심한 영국에선 한국과 마찬가지로 많은 소비자가 테스코 등의 대형마트를 찾는다. 다만, 환경 담론이 한국보다 조금 더 일상에 자리잡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소정 : 환경 문제의 한 가운데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너도나도 환경 문제를 이야기 하니까요. 환경 보호가 옳다, 당연히 해야 한다는 식의 막연한 당위를 강조하는 식이 아니었어요.
남편 분이 스웨덴 사람인데요, 영국과 달리 스웨덴은 또 어떤가요?
소정 : 남편 말을 참고하면 정치와 교육 차원에서 환경 문제가 스웨덴의 중요한 이슈라고 해요. 일단 녹색당이 유력 정당이니까... 1970년대부터 사민당과 녹색당이 정계를 이끌어왔죠. 그만큼 환경 문제의 파급력도 막대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받는 환경 교육은 이러한 체계를 공고히 만들어요. 환경 문제를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 감수성을 길러주는 교육이 활발합니다. 소셜미디어를 이용하는 젊은층은 자기가 비행기 탔다는 게시물을 잘 올리지 않아요. 비행기가 내뿜는 탄소를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에요. 누군가 비행기를 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크고 작은 훈수 내지 지적을 들어야 할 겁니다. 역으로 자기 자랑을 할 때는 ‘올해 나는 비행기를 한 번도 안 탔다’며 자신있게 뽐냅니다.
다시 전남 고흥으로 돌아와보죠. 도시보다는 조금 더 친환경적인 삶을 사실 것 같아요.
소정 : 도시에서 벗어나보니 알겠더라고요. 아, 내가 소비의 노예였구나. (웃음)
최대한 덜 쓰고 덜 사죠. 내가 이걸 꼭 사야하나? 정말 필요한가? 생각하게 됩니다. 뭘 하나 사려고 하더라도 멀리 나가야 하니까 굳이 안 나가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확실히 도시보다는 충동구매를 덜 하게 됐어요. 도시에서는 어, 그래. 저거 필요해. 사야 돼. 이런 식으로 소비를 자주 했거든요. 불편하니까 자연스레 대체되는 게 많습니다.
최근 소정 씨는 그린피스가 진행한 제로웨이스트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소비자들이 평소 자주 배출하는 플라스틱이 어느 회사 제품인지 조사하는 리서치였다. 300명을 모집해 일주일 간 플라스틱 사용량을 추렸다.
소정 : 제가 시민 조장이어서 얼추 결과를 종합할 수 있었어요. 소비자들이 플라스틱을 다량 배출하게끔 만드는 회사가 다섯 곳 정도로 좁혀지더라고요. 이름만 대면 단박에 알 수 있는 굴지의 식료품 회사들이었습니다. 시장 점유율도 이 회사들이 가장 높았습니다.
과자의 경우 낱개까지 굳이 포장해야 하나 싶더라고요. 플라스틱과 비닐을 분리할 수 없게끔 제작한 생수 제품도 문제였습니다. 재활용 자체를 아예 할 수 없으니까요. 시장 선도 기업들이 이런 문제를 인지하고 조금만 더 환경 친화적으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면 플라스틱 문제가 지금보다는 확실히 달라질 것 같아요.
플라스틱이 생태계 등을 파괴하는 문제 만큼이나 중요한 환경 문제는 바로 기후위기다. 기후 문제는 인간의 건강과 관련 깊기 때문이다. 의사인 소정 씨는 공중 보건학에 관한 전문성을 더하는 중이다.
소정 : 공중 보건은 분야가 엄청 다양해요. 감염병이나 만성질환, 모성, 아동 건강까지 범위가 포괄적이죠. 예전에는 WHO 같은 국제 기구에서 공공의료 정책을 다루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팬데믹을 거치며 다른 나라에서 일하는 게 여의치 않다는 판단을 내렸어요.
한국에서 일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소정 : 맞아요. 특히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의료 시스템 구축에 일조하고 싶습니다. 기후 위기는 의료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거든요. 일단 온난화가 심해지면 열사병 같은 온열질환 환자가 늘어납니다. 프랑스에선 2000년대 초반 엄청난 무더위가 찾아와 많은 노인이 사망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집에서 혼자 살거나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이 당시에 많이 죽었어요.
이같은 기후 이벤트가 발생했을 때 조기에 위기를 경보하고, 의료 기관이 상황을 정확히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핵심적입니다.
https://codachange.org/about-us/
지구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의학 전문가들의 행동 커뮤니티 코다(CODA)
기후 위기를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의사들이 많이 늘었다. 학계에도 끊임없이 그들의 분석이 보고된다. 하지만 환경문제는 보고서 제출로 끝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끝나야 한다는 소정 씨의 포부에서 의미심장함마저 느껴진다.
소정 씨에게 보호란 어떤 의미인가요?
소정 : 음.. 지킨다? 직업이 아무래도 의사이다 보니, 생명이나 환자를 보호하고 지켜야 한다는 개념이 강해요. 미래 세대를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 행동하더라도 늦었다고 봐요.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고 건강을 염려하듯이 지구의 건강까지 살피고 지킬 수 있길 바라봅니다.
Boho works Magazine Team
Editor J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