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의 바로미터는 뭘까요?
제가 재직 중인 회사는 매년 여름과 크리스마스 시즌에 전체 임직원이 참여하는 파티를 엽니다. 최근엔 함부르크 상파울리 축구 경기장의 라운지를 빌려 흥에 겨운 파티를 즐겼는데요. 굉장히 자연스럽고 인상적인 장면을 보았습니다.
파티가 무르익을 무렵, DJ의 강렬한 퍼포먼스와 함께 다들 흥에 겨운 댄스파티를 즐기는 중이었습니다. 저희 직원 중에 휠체어를 타고 온 동료가 있더라고요. 다리에 장애가 있는 동료인데, 신나게 리듬에 맞춰 손을 흔들거나 휠체어를 회전해가며 멋진 춤사위를 보였습니다.
저는 휠체어 탄 장애인이 클럽 분위기가 나는 장소에서 춤추는 모습을 처음 봤습니다. 이게 너무 신선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장애인은 사회적 약자라는 인식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정관념 같기도 하고요. 클럽이라는 공간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음악과 춤을 즐기는 장면은 여느 미디어에도 흔하게 연출되는 장면도 아닙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건데 말이죠.
사실 독일의 모든 클럽들이 장애인이 출입하기에 썩 적합한 구조를 갖고 있진 않습니다. 비좁은 출입구, 계단 같은 허들이 당연히 있습니다. 물론 클럽을 논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장애인 인프라, 선진국 바로미터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 바로 장애인 인프라가 아닐까, 장애인의 자유로운 이동과 일상생활 영위가 바로 선진국이냐 아니냐를 가름하는 바로미터가 아닐까 싶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우리 모두 의도치 않은 이유로 장애를 갖게될 잠재성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장애가 생겼음에도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는 사회가 가장 이상적인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독일의 실업률은 현재 2.9%입니다. 이 안에서 3분의 1 가까운 비중을 장애인 실업률이 차지합니다. 그만큼 독일은 장애인이 노동 시장에 참여하는 비율이 높습니다.
일단 법적으로 장애인의 의무 고용을 보장하고 있는데요. 이를 규정하는 법명은 Schwerbehindertenrecht라고 합니다. 이 법의 골자는 크게 3가지입니다.
1. Beschäftigungspflicht (고용의무): 통상 20명 이상의 고용자가 있는 기업은 장애인을 15%까지 의무적으로 채용해야 합니다.
2. Ausgleichsabgabe (보상금 납부): 기업이 의무적으로 장애인을 고용하지 못하는 경우, 이를 상쇄하기 위한 "보상금"을 납부해야 합니다. 이 보상금은 장애인 고용을 장려하고 지원하기 위해 사용됩니다.
3. Integrationsamt (통합 사무국 설치): 장애인 고용 관련 정책은 독일의 Integrationsamt라고 불리는 특수 기관이 담당합니다. 이 기관은 기업에 조언과 지원을 제공합니다. 또한 기업들이 장애인 고용 의무를 잘 지키는지 감독합니다.
이렇게 독일은 제도적 차원에서 장애인이 사회 생활을 평등하게 영위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시스템을 만들어놓았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이걸 잘 지켜지느냐가 관건이겠죠. 각 기업들이 선한 동기를 가지고 책무를 다하기 위해 지키는 경우도 있겠지만 독일은 대체로 벌금이나 보상금이 강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키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을 추진하는 정당들이 표를 얻어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정치 구조가 확립돼 있기 때문에 이런 법이 논란 없이 발효되고 있다는 점은 장애인이 조금 더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사회적 합의 또한 저변에 잘 깔려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예전에도 한 번 소개해드린 적이 있었는데, 독일에서는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 휠체어를 탄 장애인 탑승객이 승차장에 나타나면, 운전기사가 직접 내려서 탑승을 돕는 게 일상입니다. 그 시간 동안 시민들은 군소리 없이 차분히 기다려 줍니다. 버스나 지하철에 탑승할 때 홈에 바퀴가 걸리지 않도록 접이식 연결 다리를 직접 들고와서 펼쳐줍니다.
독일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장애인 용품 박람회
독일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장애인 재활 및 실버용품 박람회가 매년 개최됩니다.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리는 레하케어라는 박람회입니다. 매년 5만명 이상의 방문객과 1천여개의 업체가 참석합니다.
올해는 9월 14일부터 열리는데, 참가 신청을 받기 시작했고, 국내에서는 장애인 엔터테인먼트 스타트업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파라엔터테인먼트가 참석을 합니다. 제 YTN 앵커 후배이자 SBS '골때녀', MBN에서 테니스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얻은 차해리 대표가 운영하는 스타트업입니다.
박람회에는 한손만 사용할 수 있는 분들을 위한 한손 타자기부터, 최첨단 의족, 의수, 다양한 디자인과 기능을 탑재한 휠체어와 세련된 보행 보조기구까지. 전세계 장애인 용품 산업의 중심 트렌드가 독일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이번에 저도 처음 알게 됐습니다.
장애인의 평범한 일상을 수월하게 해주는 시민사회의 잘 다져진 저변이 독일을 좀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