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병진 Jan 28. 2024

마트를 일요일에 왜 가요?

일요일엔 안 열어요


독일에 살면서 바뀐 라이프 스타일 중 하나가 바로 식료품 구매입니다. 주말이 되면 금요일 혹은 토요일에 무조건 신선식품 장을 보고 온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일요일에 식료품점이 문을 닫기 때문입니다.


베를린이나 함부르크 등 대도시의 기차 중앙역사 안에서 일요일에 문을 여는 대형 식료품점을 이용할 수 있지만, 굳이 시민들은 일요일에 먹을 거 사러 중앙역까지 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한국처럼 24시간 편의점이 있어 토요일, 일요일에도 장을 보느냐 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개념의 편의점 자체가 없습니다.



출처: REWE



독일에서 식료품은 주로 터키인들이 동네에서 운영하는 야채*과일상이나 REWE, EDEKA, ALDI 혹은 Lidl 같은 중형 마트에서 구입합니다. 저희 가족도 최근 PICNIC을 이용해 식료품을 배달시키기 전까지 토요일에는 다음 주 월요일 아침 아이들 도시락 쌀 먹거리까지 중형 마트에 들러 사오곤 했습니다. 그마저도 저녁 8시면 모두 문을 닫습니다.


살다보니, "이게 맞네"


처음에는 불편했는데요. 제가 로마의 방식을 따르기 시작하니 그런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다들 그렇게 사니까요.


특히 개인의 권리와 인권, 자기 사생활을 끔찍이 여기는 독일인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이해하게 되면서 '마트 일요일 휴무'는 너무 당연한 개념으로 다가왔습니다. 제가 마트 사장이라고 가정해보면, 직원들에게 "일요일에도 시민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일하러 나오세요"라고 간 크게 말할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마트 노동자들의 휴식, 소중한 사람들과 일주일에 최소 한 번 여유로운 한 때를 보낼 권리와 식료품 소비자들의 불편, 마트 자본가의 이익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정치인들의 표계산을 따져보면 어떤 방정식이 성립할까요.


마트 노동자들의 휴식과 권리를 없애고 일요일 소비자를 잡기 위해 마트 문을 연다면 마트 오너의 일요일분 이익에서 다음 두 가지를 빼야 합니다. 노동자들의 분노 더하기 일요일 휴무 패턴이 익숙한 소비자들의 어리둥절함, 혹은 일요일에도 장을 보러 나오게끔 인식을 바꾸기 위한 마케팅 비용 말입니다.



출처: ALDI



이걸 정치인의 표계산으로 나눠버린다면 마트 오너에게 남는 순이익은 상당히 적을 것입니다. 노동자의 휴식권과 기본권을 보호하려는 전국노조연합(Ver.di)을 비롯해 좌파당(Linke), 사민당(SDP) 등 진보 정당의 강력한 항의가 이어지고 법정휴무일까지 일을 하면 안 된다는 특별법 논의까지 불거질지 모릅니다.


그러니 그냥 일요일에는 모두들 푹 쉬는 바이브를 유지하는 게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만들지 않는 상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법으로 보호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사실 마트 뿐만 아니라 독일 대부분의 상점들이 일요일에 문을 닫는 건 1956년에 제정된 상점 폐점법에 근거합니다. 2006년 이후 연방 자치주에 권한이 이전되면서부터는 연방별로 영업시간에 다소 차이가 납니다만 일요일에 상점들이 문을 닫는 건 제도적 뿌리로부터 피어나와 자리 잡은 엄연한 독일 문화입니다.


여전히 섬찟한지


한국에서 대형마트 의무휴업 제도가 12년 만에 사라진다고 합니다. 현 정부가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해 월 2회 일요일에 마트 노동자들이 쉴 수 있는 의무휴업을 없애고,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규제마저 철폐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실제 시행되기 전 여론의 반응을 보는 단계로 여론이 우호적이라면 정부가 전격 추진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여전히 한국은 바쁘고, 마트 노동자들의 주말 라이프는 불안하네요. '싫으면 다른 일 하든가'라는 냉소적인 댓글들은 섬찟합니다. 정의(definition)은 비교와 대조를 통해 완성된다죠. 한국 안에서 살 때는 잘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았던 인간의 당연한 권리가 한국 밖에선 선명하게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