톤을 조율하는 마법의 주문은?
톤의 개념과 특성
톤(tone)은 목소리의 높낮이입니다. 프로그램 혹은 각 기사를 끌고 가는 굵은 줄기입니다. 아나운서에겐 아나운싱의 '기둥 혹은 지지대' 같은 개념입니다. 기조라고 해두죠. 톤은 목소리의 크기인 음량(볼륨)과는 다릅니다. 모기 날아오는 소리는 볼륨은 작지만 톤은 높죠? 이런 이치로 톤과 볼륨을 구분하시면 되겠습니다.
톤을 한 번 잡으면 방송 진행 중에 다른 톤으로 대폭 바꾸기 어렵습니다. 한 프로그램 안에서 톤이 바뀌는 경우는 예능 정도입니다. 예능에서는 출연자가 성대모사를 하며 다른 사람의 톤으로 목소리를 변조하거나, 토크를 강조하기 위해 톤을 변주하며 다채로운 묘미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예능에서도 캐릭터를 '톤이 급격히 변하는 설정'으로 잡지 않은 이상, 방송 프로그램을 시작하면 한 번 잡은 톤을 쉽게 바꾸기 어렵습니다.
아울러 캐릭터와 톤은 같이 갑니다. 콧소리가 특색인 현영 씨의 목소리와 가수 임재범의 선 굵은 노래를 생각하면 이해가 편합니다. 캐릭터부터가 극과 극입니다. 현영은 발랄하고 임재범은 무게감이 느껴집니다. 목소리 톤이 캐릭터와 비슷하게 간다는 게 어떤 말인지 감이 오시죠?
톤과 인토네이션(억양)은 다릅니다. 톤이 '기사 한 꼭지 혹은 프로그램 전체' 범위에 해당한다면 억양은 '한 문장' 안에서의 소리 높낮이입니다. 톤이나 억양이나 모두 단 시간 내에 고쳐잡기 힘든 기본기입니다.
제가 즐겨보는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서는 종종 출연자의 말하기 톤에 대한 토크가 등장하더군요. 방송에 일가견을 갖고 있는 개그맨 김구라 씨는 출연자의 멘트 톤이 예능에 맞지 않게 너무 낮거나 지나치게 높을 경우 시청자들이 듣기에 무리없는 톤으로 바꾸게끔 조언을 해줍니다. 생각 없이 예능 보다가 '그렇지, 톤을 저렇게 바꿔야지' 싶게끔 만들더러고요.
아나운서 톤은 '솔'이 기준
아나운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톤을 잡을 때는 '솔'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그래야 목 컨디션이나 방송(혹은 무대) 성격에 따라 목소리 톤을 미세하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도-레-미-파-'솔'-라-시-도
예를 들어 예능은 'high' 톤입니다. 억양도 현실 말투가 툭툭 튀어나옵니다. 예능에서는 주변 출연자들이 소리를 지르거나 크게 웃는 일이 다반사죠. 멘트 주도권을 잡기 위한 기싸움도 치열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멘트를 쭉 이어가려면 캐릭터 자체가 엄청난 아우라를 갖고 있든지, 아니면 적어도 '솔'보다 높은 톤에 큼직한 음량(볼륨)으로 이야기하며 남들의 이목을 잡아끌어야 합니다. 문장과 에피소드의 길이를 제작진이 편집하기에 적당한 수준으로 다듬어주면 완벽하죠.
뉴스나 토론 같은 시사 프로그램에선 톤을 정돈해줍니다. 의도적으로 낮추기 보다는 굳이 높이지 않는다는 말이 적합하겠네요. 깔끔하고 또렷한 음색과 한껏 가다듬은 '솔' 톤으로 낭창하게 소식을 전합니다. 뉴스 한 꼭지 안에서 톤이 현영처럼 높았다가 임재범처럼 낮아진다면 뉴스는 엉망이 될 겁니다. 오디오에 담긴 정보보다는 오디오 자체의 톤 변화에 시청자의 주의가 집중되기 때문입니다. 이게 예능인가 뉴스인가 헷갈릴 지경이 되겠죠. 뉴스에 대한 신뢰도에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뉴스 연습 원고, 자체 제작)
중국에서 이른바 스모그 경제(霧霧經濟)가 급성장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코트라 청두(成都)․충칭(重慶) 무역관 등에 따르면 공기정화와 송풍 기능이 결합된 공기정화송풍기가 2010년부터 매년 30% 이상 판매 증가율을 보였습니다.
스모그 경제란 공기정화기, 마스크 등 대기오염 관련 제품 판매 시장을 가리키며, 대기 오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국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뉴스 단신을 연습할 때는 기본적으로 다음 같은 느낌으로 톤을 변주합니다. 아주 미세하게 톤을 조절합니다.
리드(#) / 세컨(기준) / 피니시(b)
뉴스의 기준음 '솔'을 두 번째 문장에 적용합니다. '코트라 청두~' 이 부분을 자신의 목소리로 '솔'까지 올려서 리딩합니다. 첫 문장은 이것보다 '#(샵)' 정도 음을 올린다고 생각하고 톤을 아주 살짝 올려 지릅니다. '중국에서~'로 시작하는 첫 문장이 해당합니다.
마지막 문장에서는 기존 '솔'음을 최대한 유지하거나 살짝 'b(플랫)'시켜 서서히 하강곡선의 톤을 그립니다. 뉴스가 끝나간다는 신호를 시청자와 제작진에게 보내는 셈입니다. 이러한 변화가 너무 급격하게 일어나지 않도록 수없이 반복해 감을 익힙니다.
MC 멘트는 조금 더 '말하듯이'
(MC 연습 원고, 자체 제작)
월요일은 언제나 즐거워! 안녕하세요. <즐거운 월요일> 아나운서 홍길동입니다.
월요일만 되면 이른바 월요병 때문에 고생하는 분들 많으실텐데요. 여러분, 'Monday Blues'라는 표현 들어보셨나요? 월요일만 되면 일하거나 공부하기 싫고 피곤한 상태인 '월요병'을 영미권에서는 '먼데이 블루스'라고 표현합니다.
동서양을 떠나 월요일은 사람을 참 기운빠지게 하는 것 같은데요. 월요병을 한 방에 날려버릴 소식과 노하우를 만나보면 어떨까요. <즐거운 월요일>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뉴스 기사와 MC 멘트를 비교해보면 내용부터 느낌이 확 다르게 다가옵니다. 신뢰성보다는 친밀감이 느껴지게끔 아나운싱하는 게 중요하죠. 이를 위해서는 '말하듯' 멘트해야 합니다. 작가가 써준 원고를 그대로 읽는 게 아니라 나의 표현과 어투로 바꿔서 애초에 내 생각을 이야기하듯 내용을 들려주는 것이죠.
작가·PD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면 긴밀히 협의해서 아나운서의 생각을 구성에 반영하도록 합니다. 그러면 더욱 '내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아나운싱할 때 내용과 멘트가 쫀득쫀득하게 달라붙습니다. 덧붙여 몸짓 언어 '제스처'는 과하지 않은 선에서 적절히 활용합니다. 멘트 내용과 어우러지게끔 움직이시면 더욱 좋습니다.
톤 변주로 큐사인을 주세요
큐사인(cue-sign)을 제작진이 느낄 정도로 주면 '프로'에 한 발 더 가까워집니다. 큐사인은 멘트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신호인데요. 음성 언어나 몸짓 언어로 신호를 전달합니다. 제작진에게 뉘앙스로 큐사인을 주거나 특정 멘트를 하면 말이 끝나는 것으로 사전 약속을 해 제작진이 다음 순서를 진행할 수 있도록 호흡을 맞춥니다.
큐사인은 톤 변주로 수월하게 줄 수 있습니다. 첫 문장은 톤을 '#' 정도 올려서 시작하는 느낌을 줍니다. 끝 문장은 톤을 서서히 내려주면서 끝나는 느낌을 줍니다. 특히 부조정실, 즉 진행 PD와 화면을 교체하는 TD, 오디오 및 그래픽, 조명 감독 모두가 함께 들어와 있는 스튜디오 옆 조정실에 '내가 멘트를 마무리하고 있어요' 메시지를 반드시 전해야 하는데요. 이걸 대놓고 이야기하는 뉴스 진행자가 가끔 있긴 한데, 보통은 톤을 변주해 뉘앙스 변화로 줍니다.
녹취 구성물을 예로 들면 누군가의 발언이 중요한 뉴스로 다뤄질 때가 있습니다. 그 발언을 길게 들려주기 위해 앵커가 해당 꼭지를 소개하는 앵커멘트를 하는데요. 맨 마지막 소개 멘트를 치면서 'OOO 장관의 말 직접 들어보시죠' 이 말이 나오면 모든 제작진은 '앵커->녹취'로 관심을 옮겨버립니다. 앵커 오디오는 내리고 녹취 구성물의 오디오는 볼륨을 높이죠. 화면도 앵커를 잡고 있던 스튜디오 카메라 컷을 빼고 녹취 구성물 VCR을 재생시켜 생방송 온에어 화면에 집어 넣습니다.
여기서 'OOO 장관의 말입니다', 'OOO 장관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멘트로 녹취 구성물을 소개해도 좋은데요. 반드시 '내 멘트는 끝났어요'라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겨줘야 합니다. 이때 가장 효율적인 기술은 멘트 톤을 확 낮춰주는 겁니다.
톤 조율은 악기 튜닝과 비슷해요
톤을 가다듬는 작업은 악기를 연주하기 전 악기를 조율하는 '튜닝'과 원리가 비슷합니다. 악기와 동격인 우리 몸을 서서히 데워주고 풀어준 후 소리가 잘 나오는지 체크합니다. 소리를 내기 전 목 상태는 아무래도 톤이 떨어지고 울림통도 제대로 풀리지 않았을 가능성이 큰데요.
목을 풀며 톤을 조율할 때는 저음부터 소리를 내 풀어줍니다. '도레미파솔파미레도'를 부른 후 한 음씩 낮춰가며 반복해 불러줍니다. 낮은 음으로 마치 땅 속을 파고 내려가듯 음을 내려줍니다. 목에 큰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목소리를 풀 수 있습니다.
마법의 주문 "스포츠 뉴습니다!"
뉴스는 기본적으로 '-casting' 즉, 던져주는 스피치입니다. 지상파 시대에 널리 소식을 전달했던 'broad-casting', 케이블 가입자 등 특정 타깃에게 제공되는 'narrow-casting', 개인에게 각각 메시지를 전달하는 개송(personal-casting)이란 방송의 시대적 개념을 톺아보면 공통적으로 '-casting'이 들어가 있는 게 보이실 겁니다. 아나운싱은 누군가에게 '정보가 담긴 소리를 던져주는 작업'인 셈이죠.
따라서 뉴스 톤을 제대로 못 잡겠다 싶은 경우 마법의 주문 '스포츠 뉴습니다!'를 외쳐보세요. 전방 45도 각도로 '스포츠 뉴습니다!' 강하게 외쳐준 후 뉴스를 읽어들어가는 겁니다. 톤이 한층 맛깔나게 살아나고 축 쳐진 어깨를 쫙 펴듯 뉴스 분위기가 확 펴지는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오늘의 주요뉴습니다!"를 외치고 읽으셔도 비슷합니다. 다만, 연습할 때 그렇게 하라는 말씀이고 카메라테스트 등 실전에서는 그 느낌만 가져가시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