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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로스 Oct 13. 2023

[ep.4] 거절 할 줄 아는 것도 실력이다.

2020년 네번째 직장생활에서 얻은 교훈 (aka. 드디어 정규직 되다)

매년 2월이면 불티나게 팔리는 졸업식 꽃다발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졸업을 맞이한다. 나의 경우 어린이집,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군대(전역), 대학원 등... 7번 이상의 졸업을 경험했다. 졸업이 주는 의미는 다양하다. 첫째, 지금까지의 과정을 무사히 잘 마쳤다는 것. 둘째, 지금까지의 경험을 가지고 새로운 세상에 나아가는 것. 마지막으로 셋째, 졸업은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매 순간 새로운 문제와 상황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남자의 경우 대학교에 가서 자유를 누릴 수 있지만 그 기쁨도 잠시, 군대에 입대해야만 한다. 원하던 전역을 앞두고 막상 세상에 나가려고 하면, 졸업 후의 취준생활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아무런 경험도 없는 대학교 졸업생이 인턴을 시작으로 사회생활을 하고, 더 나은 환경과 조건의 직장을 찾기 위해 노력을 하게 된다. 이렇게 계속 해서 우리가 경험하는 졸업. 이 졸업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까?


직장생활 4년차, 드디어 정규직이 되다.
정규직 임용장. 벅찬던 그 순간

2017년 공연기획사 인턴으로 시작해, 2018년 극장장 조교, 2019년 계약직 사원 그리고 2020년. 드디어 정규직 신입사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아무리 사소한 합격이라도 기쁘지만, 나 역시 기뻤다. 특히 만 60세까지 보장된 문화재단 정규직 자리였기에 부모님도 좋아하셨다.

 2020년 6월 15일. 입사 동기들과의 첫 만남이 아직도 생생하다. 계약직 때는 없었던 신입사원 교육을 3일 동안 들었다. 다행히 계약직으로 1년 1개월 근무 경험이 있어 회사에 대한 정보가 있었기에 적응하기 어렵지 않았다. 나의 오지랖으로 입사 동기 2명을 데리고  퇴근 후 근교 카페를 가거나 급속도로 친해져 회사와 사람들에 대한 나의 경험을 전달했다. 늘 그렇지만 입사 동기가 있었기에 회사 생활이 외롭지 않았던 것 같다. (feat. 잘 지내십니까?)


정규직은 계약직과 달라요. 다른 의미로...
버스임차 계약 및 지급시 필요한 서류^^

동일한 회사에서 계약직을 경험했던 나는 '업무 환경'과 '사람'만 알고 있었다. 막상 들어와 보니 계약직은 할 수 없었던 그룹웨어 기안을 상신해야 했고, 축제 및 공연 사업 부서로 발령을 받았기에 당장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였다. 관공서다 보니 하나의 계약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서류가 필요 했고, 뭐 하나 쉽게 처리되지 않았다.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같이 입사한 동기들은 '신입'이라는 명분으로 사수들이 차근차근 알려주었지만, 나의 경우 '계약직 경험자'라는 이유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당연히 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내 경우 이전에 말했다시피 위탁운영 사업이라 직접 계약하는 건이 없었다. 심지어 그룹웨어는 계약직이라 휴가조차도 내가 올리지 못했을 정도로 사용 권한이 없었다. 결국 난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물어볼 수 밖에 없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 서툴렀던 그룹웨어 사용과 기안문 작성이 익숙해질 무렵 가을을 맞이했다. 그것도 코로나와 함께….


시키면 시키는대로 해야 한다! 정말? 정말.
2020년 결국 나만의 사업은 하지 못한채 온라인 공연만 했다. 

 2020년 우리는 모두 <코로나19>라는 겪어 보지 못한 일을 겪었다. 매일 약국을 찾아다니며 마스크를 사고, 5부제를 지켰다. 5인 이상 모이지 못하고, 10시 이후 모든 식당가가 셧다운도 당했다. 확진자와 이동 동선이 겹쳤다고 하면 줄을 서서 검사받고 회사 내에서는 식당 대신 도시락을 먹었다. 불과 1년도 채 안 된 지금은 나중엔 영화에서 기억될 법한 일들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난 2020년도 하반기를 잊을 수 없다. 내겐 폭풍 같은 시간이었다.

 내가 맡은 업무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축제'와 '기획공연' 그리고 '홍보마케팅'을 담당했다. 당시 극장 역시 대면 공연이 제한되었으며, 지역 축제 역시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축소 또는 취소해야만 했다.

정부의 지침에 맞게 운영 방식을 바꿔 진행하려고 해도, 행사 당일 시내에 확진자 또는 행사관계자 중 접촉자가 나오기만 하면 바로 행사는 취소 및 무기한 연기가 되었다. TMI지만 나는 전형적인 파워 J로서 내가 계획한 일에 변수가 생기는 것을 굉장히 스트레스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절 나는 차라리 안 하면 안 했지, 매일 변동되는 상황들이 너무 힘들었다.

 모든 축제와 공연이 취소되고 무기력한 하루를 보내던 중 대표이사님이 기획공연 예산이 많이 남았다며,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짜보라고 하셨다. 나는 '뮤직 딜리버리'라는 타이틀로 소규모의 찾아가는 버스킹 공연을 기획했다. 사업계획서부터 홍보물 제작, 학교 및 관공서 섭외 등 모든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수도권 집단 확산으로 다시 상황이 안 좋아졌고, 또다시 사업 취소 결정 여부를 내려야만 했다

팀장: 코로나 상황이 다시 안좋아졌네. 어떻게 프로젝트 진행 계속할꺼니?
   나: (생각을 하다가) 음... 아니요. 어차피 또 취소 될거 포기하겠습니다. (주눅)
팀장: 넌 왜이렇게 사업 의지가 없어?
   나: ... (순간 분노게이지가 100%상승)

그 순간 대표이사가 사무실에 들어왔다. 

대표: 신입! 다음달 부터 야외 무대에서 저녁마다 OO댄스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 짜봐!
        OO가 OO해서 OO 해야되 (배경 설명)
   나: 네? 코로나 인데요?
대표: 마스크 쓰고 하면 되지! 예산은 OO정도로 진행해!
   나: 코로나도 코로나지만 지금 날씨가 저녁되면 춥습니다. (당시 11월 3주)
대표: 옷입고 하면 되지! 안얼어 죽어!
   나: 그래도...
대표: (버럭)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
   나: ... 
팀장: (슬그머니) 준비해 보겠습니다! 

나는 아무말 없이 다음날 연차를 썼다.
돌아왔을때, 팀장이 이틀 전 대표이사가 말했던 사업계획서를 쓰고 있었다.

   나: 팀장님! 저 진짜 궁금해서 그런데 OO댄스 지금 할수 있어요? 코로나가 이렇게 심하고,
        날씨도 이렇게 추운데요? 그리고 (배경 설명)
팀장: 당연히 아니지!
   나: 아니 근데 왜 하시는거예요?
팀장: 어차피 이렇게 해도 결국 취소될거야! 액션이지 (웃음)
   나: (어이없음) ...

사업계획서의 결재가 하루만에 나고, 나는 홍보물 시행을 품의를 올렸다.
하지만 코로나 19 확산 및 이른 한파로 인해 사업은 결국 취소되었다. 

 위 이야기가 실화일지 픽션일지는 알아서 판단하시길 바란다. ㅎㅎ


나는 2020년 12월을 기점으로 내게 주어진 일에 대해서 최선을 다했다. 일이 곧 나의 '정체성'이고 회사에서의 나의 '위치'라고 생각했었다. 기획공연, 기획전시, 축제사업, 공모사업 등... 하지만 남들과 같은 월급에 내 몸만 지치고, 월급루팡 하는 상사를 보면 현타만 왔다. 결국 나는 정규직 입사 1년 만에 번아웃이 왔다.


내가 만약 회사를 다시 간다면?

 4. 거절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만약 지금의 나라면 내가 일을 잘해도 내가 맡은 일 이상의 업무에는 '거절'을 할 것이다. 'OO 씨가 일 잘하니깐' '이 분야의 전문가니깐' '대표님이 oo 하기를 원하시니깐' '수당이 있어요' 등 달콤한 말로 유혹해도일 1개 더 한다고 내 월급이 늘지 않기 때문에 난 거절할 것이다. 물론 이 전제는 당신이 월급루팡이 아닌 충분히 월급의 가치를 하는 사람이라는 전제가 있다.

일을 많이 하고 성과가 좋으면 당연히 회사 내에서 인정받고 당신의 입지가 좋아질 수 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든 번 아웃이 오는 건 당신이고, 그 과정과 결과에 대한 책임은 모두 당신에게 있다. 무엇보다 최고의 사수는 다른 팀 업무가 넘어올 때 '거절 잘하는 팀장' 이다. 비록 그 팀장이 일을 안 하는 팀장일지라도... 최소한 팀원을 지켜주기만 하면 된다.  


다음은

[ep.5 일과 삶을 분리할줄 아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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