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사이

텅 빈 친정집에서

더 크게 느낀 엄마의 사랑

by 헬시기버

긴 추석 연휴.

친정 부모님은 칠순을 앞두고 여행을 떠나셨다.

가고 싶으셨던 곳들이 이미 연초에 마감되어 결국 인도로 향하셨다.


그 덕분에 빈 친정집에 부산 여행 삼아 들르게 되었다.

"아무것도 해두시지 마세요, 저희가 편하게 사 먹을게요."

출발 전부터 몇 번이고 당부드렸다.


7시간을 달려 도착한 친정.

깜깜한 집에 불을 켜니, 냉장고에 낯익은 글씨의 메모가 붙어 있었다.


'맥주, 과일, 음료수, 과일, 멸치.'

빈 봉투를 잘라 쓴 엄마의 메모였다.

남편이 그걸 보더니 말했다.

"장모님이 다 사 두시고 가셨나 봐."


냉장고 문을 열자마자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여행을 떠난 집의 냉장고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칸칸마다 음식이 가득했다.


샤인머스캣과 귤 한 박스,

아침마다 과일을 먹는 우리 가족을 위해 준비해 두신 것들이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요플레와 요구르트,

명절에 떡 대신 먹으라고 케이크에

전하느라 고생할 사위를 위한 시원한 맥주까지.


텅 비어 있어야 할 냉장고는

엄마의 부재가 아닌, 엄마의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러지 말라고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감사하면서도 괜히 투정했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사돈 댁에 드리라며 멸치 한 박스와 큼지막한 배 한 상자까지 챙겨두셨다.


딸이 친정에 왔다가 시댁 간다고 하니

빈손으로 보낼 수 없었던 엄마의 마음.


여행 전날까지 일하시느라 본인 짐도 제대로 못 챙기셨을 텐데,

우리를 위해 이렇게 바리바리 챙겨두셨다.


"정말 못 말리겠어..."

투덜거리면서도 결국 그 덕분에 따뜻한 연휴를 보냈다.


딸은 엄마가 힘들까 봐 싫은데,

엄마는 이게 기쁨이다.


매번 "정말 괜찮아요. 준비하지 마세요."라 말하지만

여전히 사위와 손주들까지 생각하며 챙기시는 엄마.


내가 학생일 때도,

번듯한 직장인이 되었을 때도,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키우는 지금도

엄마는 변함이 없다.


엄마 눈에 나는 언제나 챙김이 필요한 딸이다.

'자식은 수염이 허예져도 첫걸음마 떼던 어린애 같다.'는 말처럼,

아마 내가 백발의 노인이 되어도 그럴 것이다.


평생을 티격태격해도 결국은 엄마.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고, 나를 생각해 주는 엄마.


텅 빈 친정집에서 오히려 엄마의 존재를 더 크게 느낀 시간이었다.


말로는 다 못했지만 이 글로 고백해 본다.


엄마,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해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특별한 세컨 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