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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기버 Feb 16. 2021

미용실 이모는 다 알아

동네 육아의 살아 있는 데이터베이스

우리 가족이 모두 이용하는 미용실이 있다. 일명 동네 미용실. 첫째 아이 머리를 깎이러 가고서부터 남편도 가기 시작하고, 나도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5년 넘게 다니던 단골 미용실이 있었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는 거리도 멀고 비용도 비싸서 저렴하고 가까운 동네 미용실을 선택하게 되었다. 한 번 펌 하는데 10만 원이 훌쩍 넘게 들었던 브랜드 미용실에서 7만 원 정도의 가성비 높은 동네 미용실은 우리 집 가계 상황에 딱이었다. 가끔 둘째를 데려가면 앞머리를 잘라주시는 서비스까지 덤으로 얻는다. 재밌는 건 아이와 아빠의 머리 스타일이 똑같아진다는 사실. 이렇게 아이에서 시작해서 온 가족이 이용하는 동네 미용실 이모는 우리 가족 전담 스타일리스트다.


그런데 우리 가족뿐만이 아니다. 골목 입구에 위치한 이 미용실에는 매번 신기하리만큼 다양한 연령대, 성별의 사람들이 찾아온다. 어떤 날은 중년의 여성분이, 또 어떤 날은 20대 젊은 청년이. 때론 중학생도 있고 젊은 아가씨도 있다. 이렇게 전 연령대가 찾는 곳은 처음이었다. 오랫동안 동네에서 한 자리를 지키셔서인지 가만히 보면 엄마를 따라 어려서부터 왔던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도 '이모' 하면서 편하게 찾아왔다. 동네 미용실이라고 해서 브랜드 미용실에 비해 스타일이 덜 예쁠 거라는 편견도 저리 가라다. 어려서부터 친숙하고 편안한 관계와 여러 세대를 아우르는 미용실 이모의 솜씨에 모두 찾는 게 아닐까.

이렇게 신기한 동네 미용실을 이용하면서 외모도 가꾸지만 동네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는다. 나의 경우에는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육아와 교육에 대한 정보를 많이 물어보곤 한다. 초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이래저래 고민이 많던 시기. 이전 세입자 분들도 그렇고 우리 동네에 대한 좋지 않은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인지 이사를 갈 수 없는 상황임에도 초등학교 진학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이대로 있어도 되는 건지, 무리해서라도 이동을 해야 하는 건지... 머리를 말다 말고 미용실 이모에게 나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 동네에서 괜찮은 초등학교는 어디예요?" 갑작스러운 나의 질문에 미용실 이모는 조금 놀라셨다. "왜요? 어느 초등학교로 가는데요?" "아이가 OO로 배정받을 것 같은데 안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솔직한 나의 이야기에 미용실 이모는 딱 잘라 말했다. "처음부터 이사 갈 거 아니면 그거 다 소용없어요." "네?" 이모 曰, 아예 처음부터 이사를 가서 자리 잡을 것이 아니라면 중간에 이사 가는 것은 소용없다는 것이었다. 그간 많은 아이들을 봐 왔는데 이미 여기 친구들과 친하게 사귄 후 이사 가도 계속 만나서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잘하면 돼요." 듣다 보니 이모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교육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남편에게도 그렇게 말했는데 막상 진학을 앞두고 보니 나도 모르게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던 것 같다. 그런데 미용실 이모의 이런저런 사례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이동을 하지 못할 거라면 여기서 잘 자랄 수 있게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번은 염색을 하러 갔을 때였다. 평소 직장을 다니느라 유치원 어머님들과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 정보가 없었던 나는 이모에게 초등학교 진학 전에 어떤 것들을 하면 좋은지 물었다. 이모는 다 자기가 알아서 하게 두면 된다고 하시다가 나의 몇 가지 사례를 들으시면서 나를 꾸짖(?)으셨다. 그중 하나는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는데 왜 안 해주느냐는 것이었다. 6살이던 첫째가 하루는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엄마, 나는 숫자 책은 친구들보다 빠른데 한글은 늦어요. 한글 공부를 더 해야겠어요." 당시 나는 깜짝 놀랐었다. 마치 큰 아이가 이야기하는 것 같았는데 그저 자기 주도적인 모습이네! 하고 넘겼었다. 그런데 이모 曰, 아이가 부족하다고 생각한 부분이 곧 자신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신호라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부모가 그 부분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하셨다. 듣고 보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싶어 했는데 나는 도와줄 방법을 찾아주지 않은 것이다.


또 하나는 아이가 5살 때 한참 동안 다니고 싶어 했던 피아노 학원을 보내지 않은 것이다. 그 당시 아이는 길을 가다 피아노 소리가 들리면 자기도 배우고 싶다며 노래를 불렀었다. 그래서 학원에 가서 원비도 물어보았지만 5세라 아직 어리다고 생각했고, 한글을 깨치면 보내야지 하고 넘겼었다. 그런데 이모 曰, 아이가 원할 때를 놓치면 배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배우고 싶다고 할 때 가르쳐야 흡수력이 빠르고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 뒤론 아이가 더 이상 피아노 학원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고 관심도 사라졌다.


미용실 이모와 대화를 나눈 후 나는 얼마나 무지한 엄마인지 깨달았다. 무조건 사교육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알아서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돌아보니 나도 어렸을 때 참 많은 것을 했던 것 같다. 학습지에 피아노 학원에 영어 교육까지... 이모와의 대화를 통해 나의 육아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비단 육아만일까. 동네 미용실 이모는 동네가 변하는 과정, 사람 사는 이야기를 속속들이 다 아신다. 어디에 어떤 가게가 오픈하는지. 어느 집에는 무슨 일이 있는지. 사람 사는 이야기 가득한 미용실 이모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우리 동네가 더욱 친숙해지고 생활의 지혜를 얻기도 한다.


이번 주에는 둘째 머리를 자르러 미용실에 가야겠다. 살아있는 동네 육아의 데이터베이스인 미용실 이모와의 대화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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