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기버 Feb 22. 2021

새벽에 들리는 소리

다양한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는 빌라 라이프

매서운 한파가 이어졌던 겨울. 남편은 이직을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새벽기도를 가고 있던 시기였고, 나는 나만의 고요한 시간을 갖고자 미라클 모닝을 하던 때였다. 아직은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 5시 30분. 밖에서 "아저씨~ 아저씨~"하고 부르는 듯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이 새벽에 누굴까 긴장하며 있는데 때마침 일어난 남편이 새벽기도를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빠,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요." "무슨 소리?" "모르겠어요. 무서워서 못 나가겠어요."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아 걱정은 되었지만 차마 밖에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남편이 상황을 알아봐 주기를 부탁했다. 그렇게 남편이 나가고 얼마 되지 않아 "철컹"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계단을 급하게 오르락내리락하며 "아이고~ 아이고~"하는 소리가 들렸다. 숨을 죽인 채 바깥에 온 신경이 집중되었다. 잠시 뒤, 주변이 조용해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었을까. 상황이 궁금하고 걱정되었지만 무서워서 나가보지는 못하고 남편이 돌아올 때만 오매불망 기다렸다. 새벽기도를 다녀온 남편을 붙잡고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상황은 이랬다. 2층 어머님은 매일 새벽 5시가 넘으면 집을 나서신다. 정확한 건 모르겠지만 교회를 다니셔서 아마 새벽기도를 가시는 것 같았다. 그런데 오늘, 어머님은 빌라 출입문에서 발을 헛디디셨고 그대로 넘어지셨다고 한다. 너무나 깜깜한 새벽, 어머님이 도움을 요청하시려 아저씨를 부르셨지만 모두 자고 있을 시간이라 쓰러진 어머님을 빨리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게 일어나지 못하신 채로 누워계시던 어머님을 남편이 발견한 것이다. 남편은 바로 2층 아드님께 이 사실을 알렸고, 아드님은 119에 전화를 하시고 길을 찾지 못하는 구급차를 안내하러 동네 골목을 뛰어다니셨다. 남편은 그 사이 패딩을 벗어 어머님께 덮어드리고 구급차가 올 때까지 곁을 지켜드렸고, 다행히 구급차가 도착하고 어머님은 병원으로 가셨다고 한다.

늘 우리 아이들을 예뻐해주시고 아껴주시던 2층 어머님. 연세도 많으시고 허리도 굽으셔서 걷기가 편치 않으셨는데... 너무 마음이 아팠다. 크게 다치지 않으셨기를 바라며 아이들과 함께 기도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어머님은 돌아오지 않으셨다. 많이 다치신 걸까? 어머님은 좀 괜찮으신지 걱정이되었는데 남편이 아드님을 통해 소식을 들었다. 어머님은 고관절을 심하게 다치셨고 연세가 많으셔서 회복까지 병원에 오래 계셔야 한다고 했다. '내가 무서워하지 않고 조금 더 빨리 어머님을 발견했으면 어땠을까. 좀 나으셨을 텐데...' 자책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저 어머님이 빨리 쾌차하시기를 바랄 뿐이었다.


따뜻한 봄바람이 불고 꽃들이 피기 시작할 무렵. 2층 어머님이 돌아오셨다. 이전과 다르게 보조 지지대를 사용하시긴 하시고 다른 분의 부축이 필요하셨지만 다시 뵙게 되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매일 조금씩 운동을 나가시는 어머님을 만날 때면 아이들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한 달, 두 달이 지나자 어머님은 보조 기구 없이도 혼자 걸으실 수 있게 되었고 표정도 밝아지셨다. 정말 다행이었다.




빌라에 살면서 참 많은 소리들을 접하게 된다. 때론 즐거운 소리, 때론 힘든 소리, 때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소리... 다양한 소리 속에서 어우러져 사는 빌라 라이프. 너무 심하면 괴롭겠지만 가끔 들려오는 소리 속에서 서로의 삶을 나누게 된다면 이것 또한 우리가 이웃과 함께 사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용실 이모는 다 알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